김소영 아나운서도 피해갈 수 없는 이것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이름이 사라졌다

등록 2019.06.05 13:42수정 2019.06.1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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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가 된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보다 아이의 이름으로 불리는 데 더 익숙해집니다. 엄마는 자신의 고유한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는 걸까요? '나다운' 엄마, 이름을 지키는 엄마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편집자말]
2007년 9월. 나는 심리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다시 느끼는 캠퍼스의 젊은 열정은 소진되었던 나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 넣어줬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동기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자주 토로했지만, 회사생활도 해보고 결혼도 한 나는 오히려 안정감 있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부수적 존재'인 것도, 남편과의 관계에서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간다는 느낌도 잊을 수 있었다. 오롯한 나 자신이 된 느낌이었다.

동시에 우리 부부는 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하던 대학원에 입학했으니, 그리고 결혼한 지 1년도 넘었으니, 당연히 아이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해 10월 중순. 월경 예정일이 며칠 지나서도 소식이 없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임신이었다.

임신, 감동적이면서도 감당하기 힘든 경험
 

임신은 엄청난 축복이었지만, 감당하기 힘든 경험이기도 했다. ⓒ pixabay

   
나는 환호했다. 남편도 행복해했다. 양가 가족 모두가 기뻐했다. 하지만, 내 몸은 호르몬 변화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났고, 음식을 먹으면 곧바로 게워냈다. 구토를 하고 나면 잠시 동안 속이 편안했지만, 곧 속쓰림이 밀려왔다. 먹어도 안 먹어도 항상 불편한 속 때문에 신경쇠약이 올 지경이었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밀려와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현재 임신 중인 김소영 아나운서는 지난 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결혼과 임신, 출산이 행복이라는 확신에 가득찬 말들에 비해 여성들이 겪는 부담에 대해서는 모두가 모른척 하는 것 같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었다. 바로 그거였다. 임신 소식을 접한 모든 이들은 내게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내가 겪는 어려움은 이 커다란 축복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어야만 했다. 힘들어하는 내 자신이 자꾸만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입덧은 태동이 시작될 무렵인 임신 20주차쯤에야 멈추었고 비로소 나는 내가 생명을 품었다는 사실을 다시 축복할 수 있었다. 내 몸 안에서 한 생명이 꼬물거리며 함께 있다는 느낌은 정말 신비롭고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잠시였다. 8개월이 지나고 배가 급속히 부풀어 오르면서 서면 다리가 아프고, 앉으면 허리가 아프고, 누워도 불편해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갔다. 

이렇게 만삭이 되어가면서 나는 대학원의 두 번째 학기를 마쳤다. 언제든 보건실로 가서 쉴 수 있게 배려해준 교수님들, 나를 위해 강의실까지 바꿔주었던 조교, 늘 곁에서 함께 해준 동기들 덕분이었다.

엄마가 됐다, 이름이 사라졌다

2008년 7월 16일. 자궁근종이 있었기에 의사는 처음부터 제왕절개를 권했고, 나는 아기를 낳기 위해 분만실이 아닌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실에 실려 들어갈 때 나는 저 문밖으로 다시 나올 때면 임신중 겪었던 모든 괴로움은 끝나고 예쁜 아기와 함께 있는 행복한 순간만이 펼쳐질 거라 믿었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와 있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를 맞이한 건 극심한 통증이었다. 마치 온 배를 칼로 그어대는 것 같았다. 링거에 달아 놓은 진통제를 계속 눌러댔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간호사가 아기를 안겨줬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출산한 산모가 아기를 안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데, 나는 아파서 눈물이 났다. 젖을 물려보자는 간호사의 말에 내가 도저히 못 움직이겠다고 하자 아기를 데려온 간호사는 말했다.

"엄마, 엄마가 됐잖아요. 그러니 이 정도는 참고 아기 젖을 물려야 해요"

'엄마'. 이 단어가 참 어색하게 들렸다. 분명 수술실에 들어갈 땐 "이름이 뭐예요? 송주연씨 맞죠"라고 물었는데, 수술실에서 나오자 모든 간호사와 의사들은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소독하고 실밥을 풀 때도 "엄마, 조금 따가워도 참으세요", 수유하러 오라고 부를 때도 "엄마, 수유하러 오세요"였다. 수유실에서 여러 명의 산모가 함께 수유를 할 때에도 우리는 모두 그냥 '엄마'라고 불렸다. 우리는 '엄마'였을 뿐, 개성을 가진 개인이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이름 대신 엄마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퇴원 후 집에 돌아와 진짜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곧 알 수 있었다. '엄마'로 불린다는 것은 나 자신의 삶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함을 말이다.

엄마가 된 나는 먹고, 자고, 싸고, 씻는 나의 모든 생리적 욕구를 아기에게 맞춰야만 했다. 처음 몇 달은 아기의 신체리듬에 맞춰 밤에도 2~3시간마다 깨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아기가 5시간 이상 연속 자게 된다는 '100일 기적'을 기대하며 버텼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매우 예민한 기질의 아이였고 '100일의 기적'과 함께 '100일의 낯가림'을 시작했다.

밤에 잠을 조금 더 잘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아이에게서 내 몸을 뗄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갈 때도 아이를 아기 띠에 메고 들어갔고, 밥을 먹을 때도 아기 띠에 아기를 안고 서서 먹었다. 민감한 아이의 등 센서 덕분에 아기를 안은 채 자는 날도 많았다. 내게 꿈이 있었다는 것,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 복학할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 따위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엄마'였다.
 

아기를 낳고 수술실에서 나온 순간, 나의 이름은 사라지고 없었다. ⓒ unsplash

  
아빠가 됐다, 달라질 건 없다

남편은 달랐다. 그는 아빠가 되었지만, 3일간의 출산 휴가 후 곧바로 출근을 했고, 회식을 포함한 모든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했다. 물론, 내가 이전처럼 챙겨주지 못해 불편했을 터이고, 밤에 잠을 푹 자지 못하고,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해 피곤했을 것이다. 아빠라는 책임감에 어깨도 무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정체감이 다른 정체감을 모두 압도해버린 나에 비하면 남편에게 '아빠'의 정체감은 기존에 그가 가지고 있던 정체감에 플러스가 된 정도였다.

그래도 남편은 또래 아이를 키우던 나의 이웃들에 비하면 아빠의 역할에 충실한 편이었다.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아이의 목욕을 시켰고, 아이가 아무리 보채도 한 방에서 잤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이웃과 친구들은 대부분 출산 후부터 남편과 방을 따로 쓴다고 했다. 힘들게 일하고 온 남편들이 충분히 쉬어야 다음 날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엄마들이 연속 4시간 자보는 것이 소원인 그 시기에 아빠들은 홀로 편안히 잠을 자며 자신의 커리어에 집중했던 것이다.

이웃들은 우리 남편을 '대단히 가정적인 멋진' 남자라고 추켜세웠다. 하지만, 남편은 같이 잠만 잘 뿐, 자다가 깨서 수유를 하는 것도, 젖병을 소독하는 것도 아니었다. 왜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아빠가 아이를 돌보는 건 '대단한' 일인지 어딘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피곤함은 왜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는 건지 화가 났다. 아빠의 일에서의 정체감은 그토록 지켜주면서, 왜 엄마는 오로지 '엄마'로만 살아야 하는지 부당하게 느껴졌다.

물론, 아이를 품에 안고 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리학자 라이언과 데시가 삶의 의욕을 갖게 되는 기본조건으로 명명한 '기본심리욕구-자율성(스스로 자신을 삶을 가꿔가는 느낌), 유능감(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느낌), 연결감(세상과 연결됐다는 느낌)'조차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당시 나는 나의 생리적 욕구조차 자유롭게 처리할 수 없었고(자율성 상실), 엄마로서 무능력하다고 느꼈고(유능감 상실), 아이와 둘이 종일 집에서 지내면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연결감 상실) 있었다. 한숨만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소리를 죽인 채 멍하니 TV를 틀었다. TV에선 아픈 아이를 돌보는 한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난 이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멍한 상태서 깨어났다.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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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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