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매출 400만원 오르면 1명 더 뽑아요"

[한국의 혁신가들 ④] 노순호 동구밭 대표... 발달장애인들과 친환경 비누 생산

등록 2019.06.13 09:07수정 2019.06.1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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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기업가들을 돕기 위해 만든 글로벌 비영리조직 ‘아쇼카’는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체인지메이커)를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의 관행과 시스템을 바꾼 사람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한 체인지메이커들의 도전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스타트업, 비영리 단체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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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발달장애인 직원들과 함께 채소를 활용한 천연 비누, 입욕제, 물비누 등을 만드는 소셜벤처 기업인 노순호 동구밭 대표를 만나보았다. ⓒ 유성호

 
"그거 지저분하지 않아? 걸레로 깨끗하게 닦고 넣어."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동구밭 제1공장에서는 비누 가공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오전 근무조인 발달장애인 8명은 큰 형틀에서 나온 대형 비누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다듬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들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곱게 다듬어진 파스텔 빛깔의 비누가 상자 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일을 하면서도 장애인 노동자들은 단답식의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취재진의 질문에 약간 수줍어하기도 했지만 다들 밝은 표정이었다.

대패로 비누 깎는 작업을 하던 박준협(23)씨는 "회사 사람들이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며 "지금 일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천연 비누가 향이 좋다"며 자신이 만든 제품 자랑을 하기도 했다.

가공 작업을 총괄하는 김은희 팀장은 "직원들마다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각자가 할 수 있는 업무를 분배해서 하고 있다"며 "(장애인) 직원들이 사회성이 좋아서 대화도 다 잘 된다"고 밝혔다.

"한번 고용한 사람은 끝까지 함께"
 

발달장애인과 텃밭 가꿔 비누 만느는 노순호 동구밭 대표 정규직 발달장애인 직원들과 함께 채소를 활용한 천연 비누, 입욕제, 물비누 등을 만드는 소셜벤처 기업인 노순호 동구밭 대표를 만나 보았다. ⓒ 유성호

  
채소를 활용한 천연 비누, 입욕제, 물비누 등을 만드는 동구밭에는 현재 20명의 정규직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있다. 이들은 비누 가공과 포장, 생산 라인에서 하루 4시간씩 근무하고 있다. 경영이나 관리 등의 업무는 비장애인이 맡지만, 비누 생산은 전적으로 이들 몫이다.

동구밭은 비장애인 노동자들보다 발달장애인 노동자가 더 많다. 월 매출이 400만 원 오를 때마다 장애인 1명을 채용한다는 이곳의 경영 방침 덕분이다. 현재 근무하는 장애인노동자 20명도 모두 이 방침에 따라 채용했다.


노순호 동구밭 대표는 "발달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시작했기 때문에 매출이 오를 때마다 채용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 번 고용한 사람은 끝까지 함께 할 것이고, 이 점을 채용 담당자에게도 명확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표와 발달장애인들의 인연은 지난 2014년 서울 강동구의 한 텃밭에서 시작됐다. 당시 노 대표 등 대학생 동아리 팀원 4명은 사회 공헌 활동 중 하나로 텃밭 가꾸기를 시작했다. 텃밭 농장에 실습을 나온 발달장애인들과 자주 마주치면서 어느덧 친구처럼 지내게 됐다.

노 대표는 친분을 쌓은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지난 2015년 '도시농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장애인들이 텃밭을 일궈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었다. 1년가량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텃밭을 가꾸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없었던 것.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노 대표는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텃밭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발달 장애인들의 발걸음이 계속됐던 것. 텃밭을 가꾸면서 비장애인 친구들과 만나고 사회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즐거움이었다.

"순호씨는 살다 보면 우리 아이를 곧 잊겠지만 우리 아이는 순호씨를 평생 기억할 거예요. 평생 동안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를 어떻게 잊겠어요?"

발달장애인의 한 학부모가 한 말을 노 대표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이 사람들(발달장애인들)이 갈 데가 없는데 돈은 억만금을 벌어봐야 의미가 없다"며 "사회 적응 능력이 취약한 사람들이 비장애인과 소통하고 사회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들과 오랜 기간 함께 하면서, 수익도 낼 수 있는 모델을 고민했다. 텃밭 채소를 써서 친환경 비누를 만들기로 했다. 친환경비누를 대량 생산하는 업체는 많지 않은 반면, 수요는 꾸준하다는 '틈새'를 노린 전략이었다.

품질로만 마케팅... 5성급 호텔·홈쇼핑에도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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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밭 소속 정규직 발달장애인 직원이 16일 오전 서울 성동구 제1공장에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며 활기차게 비누 가공 작업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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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밭 소속 정규직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성동구 제1공장에서 비누 가공 작업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몇 달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동구밭은 2017년 1월부터 친환경 비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가꿈 비누'라는 이름도 붙였다. 당신의 몸과 마음을 가꾸고, 관계를 가꾸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하라는 메시지를 담아 온라인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판로를 뚫으면서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장애인이 생산한 제품이니까 몇 개 사줄 테니 가라"는 식으로 응대하는 곳도 많았다. 의무적으로 사줘야 하는 물건으로 평가된다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장애인 생산 제품'이란 마케팅 요소를 버렸다. 제품의 강점만을 활용해, 판로를 뚫기로 했다.

저온 숙성하면서 글리세린이 자연 형성돼, 보습 효과가 탁월하다는 '가꿈 비누'의 장점을 알렸다. 비누를 테이블 위에 놓고 "누가 생산했는지 생각 마시고, 써보고 말씀하시라"라고 했다. 비누 품질 면에서는 자신 있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그 결과, 지난해 8월 그랜드워커힐과 비스타워커힐 등 5성급 호텔을 비롯해, 30여 개에 달하는 화장품 회사와 납품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중국과 일본 등지에 20만 불에 달하는 수출 실적을 올렸다. GS·롯데 홈쇼핑 등 제품을 까다롭게 보는 홈쇼핑 업계에도 진출했다.

2017년 당시 2000만 원 수준이었던 월 매출도 올해 2억 원 수준으로 10배가량 뛰어올랐다. 발달장애인 직원도 2016년 말에는 1명이었지만, 어느덧 20명으로 늘어났다. 회사의 빠른 성장에는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의 성실함도 한 몫을 했다. 노 대표는 발달장애인이 생산한 제품은 그 자체로 품질이 보증된다고 했다.

그는 "발달장애인들은 지켜야 할 매뉴얼은 확실히 지킨다, 철두철미하고 중간이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발달장애인과 일을 못한다"라고 말했다.

노 대표는 "좋은 비누는 정해진 정량을 넣고 정해진 온도를 지키면 좋은 제품이 나오는데, 발달장애인들은 이 부분에서 철저하게 매뉴얼을 지키기 때문에, 불량 제품이 나오지 않는다"며 "그런 부분이 업체와 신뢰도를 쌓는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동구밭에 근무하는 발달장애인 노동자는 모두 최저임금 노동자다. 그런데도 동구밭에서 채용을 하려고 하면, 많은 장애인들이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발달장애인들을 고용하면서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못하는 회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노 대표는 "우리 회사가 최저임금을 주는 게 사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희만큼 대우해주는 곳도 없는 것 같다"며 "(발달장애인들에게) 좀 더 좋은 회사들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그쪽으로 이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동구밭을 국내 1위 화장품 제조업체로 만들고, 보다 많은 장애 사원을 안정적으로 정년을 보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라며 "외국의 발달장애인들도 동구밭에 와서 이민 오고 싶게끔 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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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밭 소속 정규직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성동구 제1공장에서 직접 만든 비누를 취재기자를 향해 들어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동구밭 #혁신가 #사회적기업 #발달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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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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