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화장실을 남자가 청소하라면 괜찮을까요?

[쓸고 닦으면 보이는 세상 ③] 청소에서의 '여자의 일'과 '남자의 일'

등록 2019.06.02 20:28수정 2019.07.1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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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작업에는 '여자의 일'과 '남자의 일'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가장 기본적으로 여자는 건물 내부의 일, 남자는 건물 바깥의 일을 한다는 대원칙이 존재했다. 하지만 남자에게도 얼마간의 내부 일이 할당되었는데 기계를 다뤄야 할 경우 남자가 하도록 되어 있었다. 반면 여자의 일은 모두 직접 손으로 하는 일이었다.


나는 날마다 '여자의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남자의 일'도 목격하게 되었다. 남자가 다루게 되어 있는 흡진기를 가져다가 직접 사용해보기도 했고, 일명 '돌돌이'라고 불리는 바닥광택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지켜보기도 했다.

일을 시작한 지 두어 달쯤 지나자 바깥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곧 '여자의 일'과 '남자의 일'을 구분한 원칙과 그 이유가 과연 합리적인가를 의심하게 되었다.

이쯤에서 나는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먼저 밝히고 싶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우주 만물의 생명 원리인 음과 양으로서 엄연히 존재하고, 사람은 누구나 여성성과 남성성 양쪽을 다 갖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여자는 여성성을, 남자는 남성성을 더 많이 갖고 있다고 본다. 과연 여성성은 무엇이고 남성성은 무엇이냐를 이야기하자면 그 자체로 너무 방대한 얘기가 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지만, 여자와 남자의 서로 다른 본성이 잘 발현되어서 적절하게 쓰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곳 미화반에서 여자와 남자의 업무 구분은 애초에 누가 어떤 기준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여성성과 남성성의 차이를 반영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청소에서 구분된 '여자의 일'과 '남자의 일'
  

강한 육체의 힘이 필요한 일은 외곽 청소가 아니라 내부 청소다 ⓒ 최명숙

 
가장 먼저, 여자는 건물 내부를 청소하고 남자는 건물 외곽을 청소한다는 대원칙은 아무리 생각해도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혹시 집을 벗어나면 맹수와 거친 자연으로부터 위협받던 원시 시대의 관습을 21세기에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건물 외곽 청소는 내부 청소에 비해 결코 육체적 힘을 더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외곽에선 쓰레기를 줍고 낙엽과 먼지를 쓸어내며 가끔씩 고압세척기로 물청소를 해준다. 광을 내거나 티 없이 닦아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몸에 힘을 주어서 일하지 않는다. 고압세척기는 연결된 호스를 잡고만 있으면 강한 물줄기가 알아서 청소해주기 때문에 그만큼 쉽고 빠른 청소법은 없다.

반면 내부 청소는 얼룩과 때를 제거해야하기 때문에 힘이 필요하다. 물걸레의 봉을 단단히 잡고 바닥으로 체중을 실어가며 힘있게 닦아야 한다. 그러니 오히려 강한 육체의 힘이 필요한 일은 외곽 청소가 아니라 내부 청소다.
  

여자 화장실을 남자가 청소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 남자 화장실을 여자가 청소하는 것 역시 비상식적인 일이다. ⓒ 최명숙

 
게다가 이 근거 없는 대원칙은 여자 화장실과 남자 화장실 청소를 모두 여자의 일로 만들었다.

화장실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사용하는 사람이나 청소하는 사람 양쪽 모두가 타인의 존재에 굉장히 민감해지는 공간이다. 그러니 남자 화장실은 남자가, 여자 화장실은 여자가 청소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남자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소변기 앞에서 성기를 꺼내기도 하고 얇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아랫도리를 벗기도 하는 화장실을 여자에게 청소하라고 하는 것은 명백한 정신적 폭력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물론 여자 미화원은 청소를 하다가 남자가 화장실로 들어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나가서 기다리지만, 이러한 번거로움은 부수적인 문제일 뿐이다.

만일 여자 화장실을 남자가 청소하도록 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자 화장실을 여자가 청소하는 것 역시 얼마나 어이없고 비상식적인 일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좀더 섬세한 구분이 필요한 일, 청소
  

인간이 힘들이지 않고 노동할 수 있게 고안된 것이 기계라면 남자보다는 여자가 기계를 사용하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 최명숙

 
이에 못지않게 불합리한 일은, 기계를 사용하는 청소는 남자가, 수작업으로 하는 청소는 여자가 하도록 되어 있는 구분이다. 행여나 이런 구분을 만든 누군가가 여자는 기계를 다룰 줄 모른다고 생각한 게 아니기를 바란다. 기계란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다. 인간이 힘들이지 않고 노동할 수 있게 고안된 것이 기계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육체적 힘이 약한 여자가 기계를 사용하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나도 여러 차례 흡진기를 사용해봤지만 힘든 점은 하나도 없었다. 전원을 연결하고 먼지가 있는 곳에 흡입구를 갖다 대기만 하면 된다. 극장 안을 청소할 때에도 남자는 흡진기를 바닥에 대서 끌고 다니기만 하면 되지만, 여자는 850개의 객석 의자를 허리 굽혀 닦고 좁은 틈에 박힌 먼지를 일일이 빼내기 위해 팔과 손목이 아프도록 힘을 주어야 한다.

허리와 팔의 단단한 근력이 필요한 일은 흡진기가 아니라 손걸레질이다. 바닥광택기도 얼마든지 여자가 사용할 수 있다. 어쩌면 여자가 더 섬세한 눈썰미로 광택을 고르게 내고 뒤처리도 깔끔하게 마무리하여 더 나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잘 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일은 폐기물 적재소의 재활용 분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폐기물 적재소가 남자의 작업 영역이 된 이유는 아마도 폐기물을 다루는 일이 거칠고 험하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인 것 같은데, 나는 그 생각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폐기물을 다루는 일은 거칠거나 험해서는 안 된다. 지극히 섬세해야 할 일이다.
  

재활용품 분류 작업은 작은 데까지 신경 쓰면서 세세한 손길에 사랑을 담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져야 할 수 있다 ⓒ 최명숙

 
쓰레기를 놓으러 갈 때마다 그곳을 내가 좀 어떻게든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일반 쓰레기 비닐 속에 마구 뒤섞인 페트병과 종이와 캔과 유리병을 볼 때마다 몹시 안타깝다. 적재소 앞에는 '재활용품 분리배출, OO(해당지역이름) 사랑의 실천'이라는 표어가 붙어있다. 정말 그렇다. 지역 사랑 뿐 아니라 인간사랑 그리고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재활용품 분류 작업은 정말이지 사랑의 마음이 필요한 일이다. 작은 데까지 신경 쓰면서 세세한 손길에 사랑을 담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져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나서 버린 일회용 컵 하나도, 남은 음료나 안에 버려진 오물을 비워내고 컵홀더와 컵을 분리시켜 각각 종이쪽에, 뚜껑은 벗겨내어 플라스틱 쪽에 크기 별로 차곡차곡 모아서 정리해야 재활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의 물건에 여러 소재가 조합되어 있는 경우엔 붙어있는 고리를 빼주기도 하고 일부분을 자르거나 벗겨내기도 해야 한다. 특별한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남자도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 더 마음을 써서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여자와 남자는 동등한 인권을 가졌지만 아주 다른 존재다. 신체조건도 다르고 정서와 심리도 다르며 사고방식은 화성인과 금성인처럼 다르다. 남녀의 일을 구분할 때 누구에게 어떤 일을 맡겨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다각도로 생각하고 더 깊이 고민해 볼 수는 없을까?
#미화원 #빌딩청소 #재활용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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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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