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없이 읽었다가 '꼰대' 되기 딱 좋은 이분의 말

[서평] 맹자를 읽다, 조윤제의 '이천 년의 공부'

등록 2019.06.01 11:47수정 2019.06.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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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는 두 글자는 나에게 무거운 숙제처럼 다가온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꼭 해야 할 것 같은 숙제.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하염없이 미루게 되는 숙제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내 손에 들어온 책, <이천 년의 공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표지가 멋지다. 까만 밤 하늘을 닮은 표지에 금박으로 새겨진 글자가 빛난다. 마치 깜깜한 세상에 길을 비추는 달빛을 닮았다.

고전을 읽는다면, 원전이 좋을까 아니면 조금 더 쉽게 해설해 주는 해설서를 보는 것이 좋을까? 나는 적당한 해설서가 있다면 해설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굳이 어려운 한자들이 난무하는 원전을 붙들고 씨름할 필요가 있을까. 해설서를 읽고 마음이 동하면 그때 원전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윤제의 <이천 년의 공부>는 맹자에 입문하기에 좋은 책이다.
 

<이천 년의 공부>, 조윤제 지음, 위즈덤하우스(2019) ⓒ 박효정

 
<이천 년의 공부>의 저자 조윤제는 고전연구가다.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마케팅실, 삼성영상사업단 ㈜스타맥스에서 근무했다. 이후 출판계에 입문해 오랫동안 책을 만들었으며 지금은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다산의 마지막 공부>, <논어 천재가 된 홍팀장>, <천년의 내공>, <적을 만들지 않는 고전 공부의 힘>,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말공부>, <인문으로 통찰하고 감성으로 통합하라> 등이 있다.


맹자는 지금으로부터 2천3백 년 전, 전쟁이 일상인 '전국시대'의 지극한 혼란한 시대를 살았다. 이 책에서 맹자가 어떻게 당시의 온갖 무도함을 이겨내고 난세를 돌파했는지 읽을 수 있다.

맹자는 공자의 영향을 받았기에 이 책에서는 공자의 가르침도 함께 배울 수 있다. 자연히 맹자와 공자의 사상을 비교하며 보게 된다. 맹자를 배우러 왔다가 얼떨결에 공자도 배운다. 꿩 먹고 알 먹고. 일석이조인 셈이다. 조선 후기의 유학자 양응수는 "<논어>는 한 구절 한 구절 침착하게 읽어 나가야 하고, <맹자>는 전체의 맥락을 생각하며 차분하게 읽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논어>와 <맹자>를 끝까지 읽기는 어렵다. <논어>는 일종의 잠언집이다. 짧은 문장과 단락이 한 권의 책을 이루고 있다. 제자의 질문에 공자가 답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보니 연속성이 떨어진다.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읽을 동력 찾기가 어려운 책이다. <맹자>는 한 단락이 <논어>보다 훨씬 길고 서사적 흥미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맹자가 살았던 시대의 복잡한 상황을 알아야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며, 그걸 넘어섰다 해도 장광설에 가까운 맹자의 집요한 언어를 견뎌야 하는 또 다른 장벽이 있다. 책의 성격이 다른 만큼 읽는 방법도 다르다. 나는 <논어>는 놀이하듯 즐겁게, <맹자>는 공부하듯 진지하게 읽었다. (설흔, <공부의 말들>, 유유)

<이천 년의 공부>를 읽는 좋은 방법을 하나 소개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어 내려가기보다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나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에 한 꼭지씩 천천히 꼭꼭 씹어 읽는 편이 좋다. 그렇게 천천히 맹자의 말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과연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오래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가만히 그렇게 나를 돌아보고, 좋은 어른이 되고자 다짐해보는 시간들이 참 귀하고 유익했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맹자의 모든 말에 공감할 수는 없었다.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여자인 나에게는 거북하게 다가오는 부분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면 "남자가 관례를 할 때는 아버지가 훈계하고, 여자가 시집갈 때는 어머니가 훈계하는데 문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네 집에 가면 반드시 공경하고 경계해야 하고, 남편을 거스르지 마라.' 이처럼 순종을 바른 것으로 삼는 것은 여자의 도일 따름이다" 같은 말들. 실제로 <맹자>를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고 아무런 비판 없이 읽었다가는 꼰대 되기 십상이다.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는 비판적 독서가 필요하다. 맹자도 이점을 우려하고 있다.
 
서경을 맹신하는 것은 서경이 없는 것만 못하다.
盡信書則不如無書
진신서즉불여무서
-≪맹자≫ <진심 하>

<서경>은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로, 중국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다. 유교의 시조인 공자가 편찬한 책으로, 중국 인문학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다. (중략) 아무리 훌륭한 책, 권위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내용을 무조건 맹신해 받아들이는 자세는 결코 좋지 않다. 좋은 가르침은 생각과 적용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구심이 드는 내용은 반드시 비판적 검증을 거쳐야 한다. 비판적 검증 역시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혼자 결론을 내리는 독단이 아니라 철저히 묻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304~305쪽)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음에도 옛 선인들의 말이 이천 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전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고전에는 시공간을 관통하는 삶의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고전이 전하는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고전을 재료로 삼아 각자 새로운 지(知)의 편집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 가는 것이야말로 고전을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일 것이다.

사실 나는 맹자의 가르침보다, 맹자에게 가르침을 구했던 양혜왕과 제선왕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 그들은 각자 한 나라의 왕이었음에도 겸손한 자세로 맹자에게 가르침을 구했고, 그것이 비록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닌 쓴소리라 하여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맹자의 말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지난 대통령을 비롯해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의 행태가 떠올라 씁쓸했다.
 
양혜왕은 국가를 부흥시키기 위해 추연, 순우곤, 맹자 등 천하의 뛰어난 자들을 초청해 스스로를 낮추고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비록 국력이 쇠퇴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자세를 국가의 부흥을 꿈꾸는 기틀로 삼으려 했다. (69쪽)


맹자가 만난 여러 명의 왕 가운데 제선왕과의 대화가 가장 길었을뿐더러 품격도 있었다. 그 이유는 맹자가 대화를 잘 이끌기도 했지만 제선왕이 다른 왕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품과 지적인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제선왕은 다양한 학파의 현자들을 불러 모아 자유롭게 쟁론하고 뜻을 펼치게 함으로써 문화 융성기를 만들었다. (81쪽)

이 책을 높으신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유다. 지위와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측은지심을 갖고 널리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 해준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는 좋은 어른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인성을 가꾸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숨만 쉬며 속절없이 나이만 먹을 수는 없다.
 
맹자의 성선설은 하늘로부터 받은 선한 본성인 네 가지 마음을 근본으로 한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바로 인仁의 실마리인 '측은지심'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이 곧 인이며, 인은 사랑이라고 정의된다. 맹자는 사랑은 곧 사람이며, 그 사랑만 있으면 천하를 얻을 수도 있다고 했다. 오늘날도 당연히 마찬가지다. 사랑이 가장 강하다. (117쪽)

이천 년의 공부 -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필요할 때, 맹자를 읽는다

조윤제 (지은이),
위즈덤하우스, 2019


#이천 년의 공부 #조윤제 #위즈덤하우스 #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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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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