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틈새에 빠져 사망한 동생, 의문점 너무 많다"

[인터뷰] 생업 접고 동생 죽음 추적... 공사현장서 사망한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

등록 2019.06.04 17:17수정 2019.06.0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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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청년 김태규. ⓒ 김태규씨 유가족 제공

  
"나는 여전히 내 동생 태규가 어떻게 엘리베이터 틈 사이로 빠져 추락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경기 수원시 권선구 한 아파트형 공장 신축 건설 현장에서 지난 4월 10일 추락해 숨진 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가 눈물을 흘리며 <오마이뉴스>에 건넨 말이다. 김태규씨의 49재 다음날인 지난달 29일, 누나 김도현씨를 수원역 인근에서 만났다.

스물다섯 청년 김태규씨는 5층 엘리베이터에서 폐자재 등을 옮기는 작업을 하던 중 반대쪽에 열려있던 문 옆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문과 벽 사이에 존재했던 43.5㎝ 가량의 틈을 태규씨가 발견하지 못하고 추락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이후 공사현장 소장 등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그러나 태규씨의 가족들은 경찰의 조사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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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씨가 입었던 옷과 안전화 대신 신었던 검은색 운동화 ⓒ 김태규씨 유가족 제공

 
김도현씨는 "사건 당일 동생이 작업했던 5층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면서 "현장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진술이 모두 다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태규의 부검 결과도 듣지 못했다"라며 "태규가 어떻게 죽었는지 재수사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김태규씨는 건설일용직으로 일한 지 사흘째 되던 날 43.5㎝ 너비의 벽과 엘리베이터 틈새에 빠져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함께 일했던 태규씨의 동료는 "태규가 이미 작업 첫날부터 엘리베이터 안쪽에 틈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그곳에서 쉬면 안 된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김태규씨는 사고 당일 안전화, 안전벨트 등을 지급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일에도 현장에서 굴러다니는 하얀색 안전모를 주워 사용했으며, 자신의 오래된 검은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작업하다 변을 당했다. 안전대와 안전망은 어디에도 없었다.

4월 10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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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 ⓒ 김종훈

 
도현씨는 수기로 작성한 공책과 수십 장의 문서를 먼저 보여줬다. 기자가 조심스레 내용을 살피자 그는 "동생의 장례를 치른 뒤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하고 정리한 자료"라고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경황도 없이 동생의 3일장을 치렀다. 단순하게 추락한 줄만 알았다. 동생을 보내고 나니 그제야 어떻게 죽었는지 의문이 일더라. 4월 14일과 15일에 현장을 찾은 이유다. 그런데 현장에 가서 보니 5층에 있어야 할 엘리베이터가 동생이 죽은 1층으로 내려와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김태규씨 사망 후 산업안전보건법에 의거해 사고 현장에 대해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건설시공사인 E종합건설 측은 유족에게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고 1층으로 엘리베이터를 이동시켰다. 태규씨가 추락한 지점 어디에도 그가 남긴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누나의 말이다.

"작업 동선이나 엘리베이터 운행에 대해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이 훼손됐다. 제가 직접 회사에 '왜 엘리베이터를 옮겼냐'고 따져 묻자 '보기가 좋다'라는 말을 했다. 태규가 죽었는데, 어디에도 동생에 관한 흔적은 없다."

사고 현장에서 증인들을 직접 만난 도현씨는 동생이 추락한 경위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생과 함께 사고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 두 명의 증언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5층 엘리베이터에는 3명이 탑승해 있었다. 동생과 용역노동자, 현장지시자인 문 차장. 용역노동자는 '자재 올리는 작업을 다 끝낸 뒤 내려가려고 기다리다 추락했다'고 말했다. 반면 문 차장은 '본인이 지시한 박스를 옮기는 작업을 하다 중간에서 떨어졌다'고 말했다. 누구 말이 맞는 건가?"

같은 현장에 있던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진술을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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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씨가 사망한 공사현장은 현재 작업중지명령이 해지된 상황이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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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씨가 사망한 공사현장 외관 ⓒ 김종훈

 
김태규씨는 왜 추락했을까?

경찰은 실족으로 인한 추락이라고 결론 냈다. 그러나 태규씨 누나를 비롯해 유가족들은 단순 실족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태규씨 사망사건을 접한 뒤 가족들과 함께 사건을 추적하고 있는 박승하 '일하는 2030' 대표 역시 "추락 원인은 기본적으로 안전관리가 전무했던 현장, 화물용 엘리베이터 불법 탑승, 화물용 엘리베이터 출입구 개방 운행"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언급되지 않았던 지게차를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폐자재를 쌓아놓은 (지게차용) 팔레트가 엘리베이터 안쪽 깊숙한 곳까지 밀려있었다. 그런데 팔레트를 옮겨놓는 지게차는 사건 현장에서 보이질 않았다. 폐자재를 1층으로 내려놓기 직전 상황인데, 현장에 있던 작업 인부도 '내려가려고 기다리다 태규가 떨어졌다'고 말했는데, 사고 현장에 지게차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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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트 위에 놓인 폐자재. 엘리베이터는 현재 1층에 내려와 있다. ⓒ 김태규씨 유가족 제공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6일 공사현장의 작업중지명령을 해제했다. 가족들에게 통보는 없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작업중지명령 해제는 (고용노동부) 심의위원회에서 향후 남은 잔여 공정에 대한 안전작업 계획 적정성 여부와 재발방지 등을 따져 결정한 것"이라면서 "이 사고에 대해서 산업안전보건법에 의거해 수사했다"고 강조했다.

김태규씨의 어머니는 "사람이 죽은 장소이고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현장인데 고용노동부가 공사재개를 허가한 건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면서 "고용노동부 근로담당관과 담당형사가 제대로 수사해줄 거라 믿은 내 자신이 너무 화가 난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유족들의 재수사 요청에 대해 수원 서부경찰서 담당 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수차례 취재요청을 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수백 명 죽어나가는 건설 현장...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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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씨가 사망한 현장 ⓒ 김태규씨 유가족 제공

 
지난 2일 정부가 발표한 2018년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현장 사고로 가장 많은 노동자가 희생된 직종은 건설업이다. 총 485명이 숨졌으며, 이 중 376명이 김태규씨처럼 추락사했다.

그러나 산재 사건에서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될 경우 대부분은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끝난다. 업무상 과실치사의 벌금 액수가 수백만 원에 불과하다.

지난 19일 청주지법은 아파트 공사장에서 근로자 추락 사망사고를 낸 건설사 등에 업무상 과실의 책임을 물어 건설사 대표에게 벌금 700만 원, 원청 건설사 현장 소장에게는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지난해 9월 부산지법은 안전망을 설치하지 않아 추락사를 막지 못한 원청에 벌금 500만 원, 하도급업체 대표에게는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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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 ⓒ 김종훈

 
김도현씨는 "제가 동생의 죽음을 알아가면서 가장 크게 생각한 건 '일용직이나 힘없는 사람들이 죽으면 정말로 제대로 수사도 안 하는구나'라는 것이었다"면서 씁쓸해했다.

"동생 태규가 납골당에 잠들어 있다.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질 때까지는 동생의 얼굴을 보지 않을 거다.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나서 동생을 다시 만나러 갈 것이다."
#김태규 #김도현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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