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와 수박으로 만든 퓌레, 그 맛은?

등록 2019.06.03 14:19수정 2019.06.0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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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푸석한 사과로 잼을 만든다. 요즘 사과는 저장했다 공급한 것이어서 대개 푸석하다. 주스를 만들고 남은 사과로 잼을 만들려다 관둔다. 설탕 넣는 게 싫어서다. 나는 빵순이어서 잼 대용으로 빵에 발라 먹을 게 필요하다. 퓌레(야채나 고기를 갈아서 체로 걸러 걸쭉하게 만든 음식 : 네이버 사전 인용) 만들기를 살짝 비틀면 어떨까. 체로 거르지 않고, 즙과 당도를 내면 된다. 토마토와 수박이 떠오른다. 잘 익어 새콤한 토마토와 달디단 수박이 냉장고에 있다.


잠깐 멈칫한다. 그냥 먹어도 맛있을 비싼 생과일로 괜한 짓을 하는 건가. 특히 수박은 익혀서 좋을 게 없는데... 생으로 충분히 먹고도 남을 분량임을 확인하고 별미에 쓰기로 한다.

사람도 여러 일을 하며 살지 않는가. 한 분야에서 걸출하더라도 설거지나 화장실 청소 같은 일도 해야 온전한 삶을 사는 게다. 당도 높은 수박에게 달리 먹힐 공덕의 기회를 주자. 
 

사이비 퓌레 빛깔이 곱다. ⓒ 김유경

 
재료 준비는 간단하다. 형식과 모양은 건너뛸 참이다. 토마토 중간 크기 두 개와 큰 사과 두 개를 껍질 깎아 대충 작게 썬다. 씨 뺀 수박도 대강 잘라 한 공기 준비한다. 물기가 쉽게 생겨 냄비가 타지 않도록 바닥을 토마토로 채운다. 그 위에 사과를 얹고 맨 위에 수박을 놓는다. 제일 약한 불로 10분 정도 끓이니 수분이 제법 고인다. 그때부터 중간중간 숟가락으로 위아래를 섞는다.

토마토와 수박은 쉽게 얼크러진다. 사과는 고집스레 물크러지기를 거부한다. 관계에서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사람 같다. 어우러지게 하려니 숟가락으로 저으면서 대충 으깬다. 사실 그냥 두고 씹는 맛을 느끼며 먹어도 괜찮다. 어쨌거나 설탕의 엉김이 없어 졸기 쉽지 않다. 된 죽처럼 걸죽해지기까지 잼 만들기보다 20분 정도 더 걸린다.

완성된 '사이비 퓌레' 빛깔이 곱다. 입에 넣으니 새콤 사각하고 중간치 단맛이다. 물론 설탕 졸임이 아니어서 끈기는 없다. 냉장 보관해도 며칠 이내로 다 먹어야 한다. 나 먹기는 좋은데, '보기 좋은' 걸 선호하는 이웃은 줘도 마다할 수 있다.

과거의 나도 그랬으리라. 내 방식만을 고집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제 잘난 멋이 한때인 줄 모르고 역지사지는커녕 상대에게 매정하던 순간들이 꽤 긴 파노라마를 이룬다.


어제 어머니 아랫니와 윗니 6개가 사라졌다. 발치 중에도 마취제가 여러 번 쓰였다. 의자에서 일어서며 아뜩해하는 모습이 안쓰러운데, 손이나 잡아줄 수 있을 뿐이었다.

부모 자식 간에도, 혹 더 가깝다는 사이라 할지라도 개체 간 도움에는 한계가 있다. 문득 자문한다. 퓌레에 당도를 더하고 형체 잃은 수박만큼 나는 관계에 얼크러진 적이 있는가. '나'를 떼 놓는 게 여전히 어렵다.

빵을 꺼내 퓌레를 두툼하게 바른다. 좋아하는 슬라이스 치즈를 얹어 한입 문다. 괜찮은 맛의 샌드위치다. 며칠 전 송도 나이로비 커피점에서 얻은 '케냐AA'로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곁들이니 더할 나위 없다. '케냐AA'는 30여 년 경력의 이신동 바리스타가 직접 수입해 로스팅한 에스프레소 원두다. 벌써 두 번째 냉큼 받아오는 내 원두 사랑이 맘에 걸리는데, 입에는 참 좋다.
덧붙이는 글 https://brunch.co.kr/@newcritic21/10
#사이비 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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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종류의 책과 영화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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