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밥상 처음 차린 날 "사람 사는 것 같네요"

일터에서 마련한 마을사업에 어르신들 반색... 더 신나게 놀면서 일하렵니다

등록 2019.06.04 11:11수정 2019.06.0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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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터는 군산지역에서 조금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십 구년 째 일하면서 조금은 알 것 같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비슷하다. 다른 동네와 비교할 때 차이라면 출근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는 어르신과 장애인이 많다. 나이 많고, 몸이 불편하다 보니 일할 곳이 마땅치 않다. 주민들은 자연스레 동네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다. 

우리는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 동네가 조금 더 행복한 동네가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까?". 고민 끝에 우리는 '공동밥상'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이 함께 장을 보고, 요리해서 빙 둘러 앉아 밥상을 마주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마음 따뜻해지는 일 아닌가?
      
우리 동네 아파트는 총 여덟 개의 동이 있다. 동료들은 작년부터 여덟 명의 동 담당을 정하고, 발품을 팔아 사람들을 만났다. "어느 동에 사시나요?", "하루를 어떻게 지내세요?", "뭘 할 때 제일 행복하세요?", "취미로 하는 거 있으세요?", "뭘 좋아하세요?", 시시콜콜한 것까지 물어보고 만났다. 그 결과로 작년에 동료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사업계획서를 내 선정이 되었고 올해부터 '공동밥상' 지원금을 받게 됐다.
 

신나서 음식을 만드시는 어르신들. ⓒ 김혜경

 
드디어 공동밥상 첫날, 아침부터 분주하다. 어제 봐 논 재료를 챙기고, 반찬 담을 통도 씻고, 함께 하기로 한 분들께 연락도 드린다.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신이나 보인다. 이날 하필 나는 다른 일정으로 외출을 하고 와서야 참여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당도했을 때 공동밥상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들어가는 길에 아는 분을 만났다.

"어떻게 재미있게 만드셨어요?"
"네, 너무 재미있고, 신나게 만들었네요."
'"아, 다행이네요. 맛은 있던가요?"
"네, 정말 맛있었어요."


함께 뒷정리를 도왔다. 식당을 쓸고, 닦고, 설거지를 했다. 다들 얼이 나간 표정들,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땠어요?" "한 시간 만에 음식 만들고 먹는 게 끝났어요!" "흐억, 성격 급한 우리 어르신들, 오늘도 속도 엄청 내셨구나!" 싶었다. 약간은 지쳐 보이는 동료들, 함께 하지 못한 나는 미안한 마음에, 음료수를 내겠다고 했다. 동료들은 "앗싸"를 외쳤다.
 

밥상에서 전은 진리다. ⓒ 김혜경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그 작은 커피 가게가 떠나가라고 떠들어댔다. 나는 "사장님, 죄송해요. 저희가 일하는 중에 말을 못해 말문이 터졌네요" 사장님은 "괜찮아요!" 하고 웃으셨다. 착한 사장님 덕분에 우리는 평가회를 거기서 했다.

"오늘 몇분이나 오셨어요?"
"마흔 네분 오셨고, 직원들까지 오십이명이요"
"첫 모임인데도 많이 오셨네요"
"그동안 일 한 보람이 있네요"
"어르신들이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시던가요?"
"엄청 좋아하셨어요. 어르신들이 연륜도 있으시고, 혼자 사는 분도 많으셔서 그런지 성별에 상관없이 잘 만드셨어요!, 봄동된장국도 맛있었고, 냉이무침, 깻잎완자전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먹었습니다. 역시 잔치날은 기름 냄새가 나야 하는 것 같아요. 수육은 따로 준비했는데, 평소 고기 잘 드시지 않던 어르신들도 잘 드셨어요!"
"소박하지만 '마을 밥상 잔치'가 되었네요!" 



한 동료가 말했다. 주민 한분께 문자가 왔어요.

"평소 얼굴은 아는데 인사를 안 했던 동네 주민들과 함께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서로 친해지고 사람 사는 것 같네요."

그 한 마디가 우리들에게는 큰 위로가 됐다. 우리의 목표는 "관계 맺기"다. 관계를 통해 주민 간 '공생성'을 살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문자 메시지는 우리의 첫걸음을 응원하는 희망의 소식이었다.

첫걸음은 언제나 설렌다. 오늘이 그랬다. 앞으로 구 개월 동안 한 달에 한번 이렇게 해야 한다. 다음은 오늘보다 더 잘하리라. 주민들이 더 오래 머물러 담소 나누고, 함께 준비하고 마무리 까지 하기를 기대한다.

고백할 것이 있다. 우리 동료들은 이십대에서 사십대까지다. 세대 차이가 있다 보니 생각도, 행동도 다르다. 하지만 공동밥상으로 하나가 된 것 같다. 가끔은 우리 동료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속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오늘 모습을 보니 그 마음이 쏙 들어갔다.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일을 하면서 예전처럼 마음 맞춰가며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희망이 생겼다. 더 신나게 마을에서 놀면서 일했으면 좋겠다.
#공동밥상 #마을복지 #공동체 #주민조직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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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서로의 약함을 채우며 함께 사는 사회를 꿈꾸는 사회복지사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삶과 사회복지 활동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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