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3천원 아끼자고 밤새 개떼들에게 시달리다니

[유최늘샘의 세계방랑기 29] 그리스에서 만난 난민들

등록 2019.06.27 10:31수정 2019.06.2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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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도착, 화난 개떼와의 캠핑

북마케도니아 게브겔리아에서 그리스 에브조노이로,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걸어다니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양쪽 모두에서 경찰 검문을 받았다. 그리스 국경통제소는 북마케도니아측과 달리 유럽연합 가입국임을 광고하는 팻말이 많았다.


지도만 보고 한 시간 넘게 걸어간 기차역은 승객이 적어서 화물열차밖에 다니지 않았다. 허무하게 왔던 길을 다시 걸을 때, 배낭은 더욱 무거워진다. 종종 승용차와 경찰차가 오갈 뿐 시골길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몇 킬로미터마다 나타나는 마을들에는 예쁘게 장식된 집이 많았지만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덩치 크고 눈이 시뻘건 개들이 달려와 물어뜯을 듯 짖어댔다. 말도 표정도 안 통하니 무서워서 소름이 돋았다. 개를 마주칠 때마다 멀찍이 돌아갔다.

다른 나라에도 거리의 개가 많지만 이렇게 공격적인 경우는 없었다. 밥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배가 고픈 걸까. 그리스의 개들이 원래 난폭할 리는 없으니, 아마도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리라. 그리스에 대한 첫인상이 어두워졌다.

국경 경찰이 없는 곳, 그리고 텐트를 칠 만한 마을로 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한적한 시골인데도 차들은 쌩쌩 지나가기만 했다. 차에 치인 커다란 고슴도치 사체가 많아서 마음이 더 무거웠다. 몇 년 전 뉴스에서 봤던 그리스 경제 위기의 영향이, 시골 개들을 굶주리게 하고 히치하이킹도 어렵게 만든 게 아닐까, 엉뚱한 추측을 할 때쯤 드디어 차가 멈춰섰다.
 

나를 따라다니며 물어뜯을 듯 짖어댔던 그리스 에브조노이 마을의 눈이 빨간 개. ⓒ 최늘샘

  
지친 나그네를 살려준 친절한 막달레나씨는 생존 그리스어 몇 마디를 가르쳐주고 인근 도시 폴리카스트로 터미널에 나를 내려주었다. 멀리 구름에 가린 산 이름을 물었더니 '올림푸스'라 했다. '책에 나오는 그 올림푸스? 신들이 산다는 그 산?' 하고 다시 물었다. 벌판에 우뚝 선 올림푸스의 모습은 특별할 것 없는, 한국의 여느 산과 똑같은 모습이라 오히려 놀라웠다.

"그리스에는 이런 작은 마을들이 엄청나게 많이 이어져 있어. 젊은이들 상당수가 서유럽으로 가서 시골에 사람이 별로 없고 조용해."
"에브가니스또! 무지 무지 고마워요. 막달레나."



대도시 데살로니키행 버스 가격을 알아보고, 외곽 잔디밭에 텐트를 쳤다. 여행 중 날씨 운이 좋은 편이라 텐트를 칠 때는 부슬비도 그쳤다. 주변에 개가 없는지 분명 확인을 했건만, 밤이 되자 개떼들이 텐트 주변에 다가와 미친 듯 짖었다. 혹시 공격 당하면 텐트에 불이라도 붙여야지 싶어서 종이 조각과 라이터를 주머니에 챙겼다.

천만다행히 개들은 주변에서 영역 다툼을 할 뿐 텐트와 나를 물어뜯진 않았다. 참다 참다 오줌을 누러 텐트 밖으로 나가는 순간은 얼마나 두려웠던가. 저기 올림푸스산의 신들이여, 개들로부터 나를 지켜주소서.

새벽 내내 내린 비는 결국 텐트 안에 고였다. 엉거주춤 겨우겨우 텐트를 접고 아침 식량을 섭취한 뒤 버스를 탔다. 마침내 도착한 숙소 창문 손잡이에 젖은 텐트를 걸고 말리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데살로니키는 동유럽보다 물가가 비싸 하루 숙박비가 10유로였다. 만삼천 원 아끼자고 밤새 개떼와 비에 시달리다니, 이게 무슨 바보짓인지. 나는 나를 좀더 보살피며 여행해야 한다.

글을 쓰며 찾아보니 진짜 올림푸스산은 남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옛 그리스인들이 올림푸스로 부르던 산은 터키와 키프로스에도 있다. 막달레나씨가 알려준 산의 현재 이름은 파이코였다.
 

개떼들 사이에서 생존한 텐트 뒤로 올림푸스로도 불리는 파이코Paiko 산이 구름에 가려 있다. ⓒ 최늘샘

  
그리스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청년들

그리스는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바다와 육로를 통해 도착하는 첫 유럽대륙이자 서유럽으로 가는 길목이다. 데살로니키는 아테네에 이어 두번째로 크고 역사 깊은 도시다. 대낮인데도 중심가 곳곳의 건장한 경찰들은 의심가는 사람들을 검문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수갑을 채웠다.
 

데살로니키 도심 곳곳의 경찰들은 대낮에도 검문을 하고 불법이 확인되는 사람들에게 곧바로 수갑을 채웠다. ⓒ 최늘샘

 
부둣가 광장의 청년들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다가왔다. 6개월째 데살로니키의 난민 캠프에서 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었다. 소개를 부탁하자 자기 이름보다 먼저 아버지의 이름을 얘기했다.

조상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한다는 점이 낯설고 특이했다. 어머니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마 오랜 가부장 사회의 차별적인 전통일 것이다. 조심스레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스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 왼쪽부터 아미르 에산 나세리 Amir Ehsan Naseri, 오바이드 울라 알리제이그 Obaid Ullah Alizaig, 팔하드 잔 Farhad Jan, 라흐만 울라 후세인 Rahman Ullah Hussein 씨. ⓒ 최늘샘

  
"너 세계여행 중이면 아프가니스탄에도 가봤니?"
"한국사람은 아프가니스탄 비자를 받을 수가 없어. 이라크, 시리아, 예멘, 리비아,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이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돼 있어."
"나중에 한 번 가 봐. 아름다운 곳이 많아. 탈레반이 전쟁을 벌이는 지역 말고는 안전한 편이야. 우리는 고향에 살 수가 없어서 떠났어. 아프가니스탄이 평화롭다면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겠어?"
"지금은 돌아갈 수 없으니까 서유럽으로 가서 일을 하고 싶어. 그리고 우리 나라 아프가니스탄이 평화로워지면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


다음 날 바닷가에서 다가온 또다른 청년은 자신이 아르메니아 난민이고 캠프에 들어가지 못해 거리에서 잔다고 말했다. 며칠을 굶었다며 빵을 살 돈을 부탁했지만, 나도 저렴한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장기 여행자라 빵 하나 살 동전밖에 주지 못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힘없이 걸어가는 그의 옆으로 지중해식 야외 레스토랑에 가득한 사람들과 기름진 음식이 보였다.

그리스에는 터키 국경까지 가는 기차가 없었다. 며칠 동안 경험한 그리스 물가는 헝가리나 코소보보다 꽤 비싸고 시골의 개들도 두려워서, 길게 머물지 않고 이스탄불로 가는 40유로(한화 51400원) 가격의 직행 버스를 탔다.
 

그리스 데살로니키 전경.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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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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