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수사 뭉갰다' 의심받던 곽상도, 무혐의 받은 이유

동영상 보고 여부 진술 달라... '김학의 임명 책임' 아무도 없나

등록 2019.06.04 20:01수정 2019.06.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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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이 3월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나경원 원내대표의 공개발언을 듣고 있다. ⓒ 남소연


4일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검사장)이 2013년부터 성접대 의혹을 받아온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뇌물죄로 기소했다. 성폭력 혐의는 아니지만 김 전 차관이 아예 법망을 피해갔던 과거에 비하면 나름 성과를 낸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찜찜함이 남는다. 곽상도 전 민정수석(현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초기 경찰수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 수사 결과를 보면 이번 수사가 절반의 성공인지, 절반의 실패인지 모호하다.

수사단은 청와대가 '김학의 동영상'의 존재는 의심했지만, '정확히는 몰랐다'고 결론 내렸다. 곽상도 전 수석 등이 동영상이 있다는 걸 알았는데도 경찰 수사를 방해했고, 부당한 인사조치를 하는 등 경찰에 압력을 줬다는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와 다르다.

① 청와대는 동영상 존재 알았나 → 경찰이 제대로 보고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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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수수, 성범죄 의혹을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5월 9일 오전 서울 송파구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수사단에 따르면 2013년 3월초부터 김 전 차관 내정 발표 전까지 청와대가 여러 번 경찰에 묻거나 보고받았지만 계속 "동영상을 확보하지 않았고, 현재 내사나 수사단계는 아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경찰은 3월 13일 김 전 차관 내정 발표 당일 '동영상이 있을 것 같다'고 구두보고했다고 하지만,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은 소환조사 때 '보고받은 적 없다'고 진술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말이 다르다. 당시 경찰청 범죄정보과 팀장은 2013년 3월 초 여성 B씨가 가진 동영상을 봤고, 3월 4~8일 B씨의 이메일 진술서 세 통도 받았다. 팀장은 조사 때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상급자들은 몰랐다고 했다. 수사단은 엇갈린 진술을 규명하기 위해 경찰청과 대통령 기록관도 압수수색했으나 이미 오래된 일이라 전혀 자료가 남아있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경찰 보고에 문제가 있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경찰은 사건번호를 부여한 단계부터 내사라고 하지만, B씨 진술서 같은 자료가 확보된 때도 내사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수사단은 "이런 내용(B씨 진술서 확보)은 중요사항이라 보고됐어야 하는데 보고되지 않았다, 만약 보고받았다면 청와대에 보고했어야 한다"는 당시 경찰청 수사국장 진술도 공개했다.

② 그래서 수사 방해했나, 인사 불이익 줬나 → 없었다,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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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 권고 관련 수사단의 여환섭 단장(청주지검장)이 4일 오전 서울 동부지검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 씨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검찰은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친 수사에서 특수 강간 등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김 전 차관과 윤씨를 함께 구속기소 했다. ⓒ 연합뉴스

  
그런데 보고시점이 김 전 차관 내정 후라고 해도 곽 전 수석이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은 따져봐야 한다. 경찰 수사는 2013년 3월 21일 김 전 차관 사퇴 후 본격화했고, 대규모 경찰 인사는 4월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4일 결과는 '수사 방해와 부당 인사는 혐의 없음'이다. 수사단은 당시 첩보를 수집하거나 수사를 맡았던 경찰들이 외부로부터 질책이나 부당한 요구 등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고, 2013년 4월 인사는 신임 경찰청장 취임에 따른 것이라 시기와 규모, 내용 모두 부당하다고 볼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이미 경찰에 김학의 동영상 감정 결과를 알려준 뒤에 청와대가 감찰 차원에서 국과수에 문의했을 뿐이라며 수사 개입 의혹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수사권고의 출발점으로 알려진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 진술도 바뀌었다. 여환섭 단장은 "검찰 과거사진상조사단 면담에서 박 전 행정관이 '경찰이 질책 당하고 외압 받았다고 들었다'는 진술을 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불러 조사했는데 '그런 얘기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며 "조사단이 삼은 근거 자체가 없는 상태고, 외압 관련 자료도 나오지 않아서 그 부분은 직권남용이 없는 걸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세민 당시 경찰청 수사기획관 등 경찰 지휘라인이 김학의 사건 수사로 좌천됐다는 부분도 '혐의 없음'으로 정리됐다. 여 단장은 "당사자들은 섭섭하게 보직 변경됐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게 (근무기간이) 짧게 바뀐 게 있나 봤는데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새 정부 들어서 청장이 바뀌는 상황이었다"며 "인사 규모나 형태를 보면 잘못된 인사라고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당사자 진술이나 관련 자료에서 별 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한 수사단은 곽상도 전 수석을 직접 부르는 대신 한 차례 서면조사한 뒤 최종결론을 냈다. 누구도 불이익 당하지 않았고, 누구도 김학의 전 차관 임명에 책임이 없다는 결론만 남긴 채 6년 만의 재수사는 막을 내렸다.
#곽상도 #김학의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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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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