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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손흥민을 직접 보다니, 내게 온 두 번의 기적

[이베리아반도 방랑기] 제1탄 : 마드리드에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19.06.05 18:37최종업데이트19.06.0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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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짧고 선명한 종료 휘슬이 울렸다. 환희와 탄식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의 여신은 리버풀을 선택했다. 토트넘의 기적 같은 승리는 손흥민 선수에 대한 기대와 함께 많은 한국 팬들을, 결승전이 열리는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나도 그날, 현장에 있었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축구팬에게 최고의 경험은 무엇일까? 물론 최고의 경기는 '나의 팀이 펼치는 좋은 승부'이겠지만, 축구팬이라면 모두가 손에 꼽는 최고의 경기는 UEFA가 주관하는 유럽 클럽팀들의 대항전인 챔피언스리그, 그중에서도 최고에게만 허락되는 결승전이 아닐까?

매년 열리는 챔피언스 리그이니 언젠가는 기회가 생기겠지,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모두가 원하는' 경기인 만큼 티켓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고, 경쟁률을 그대로 대변하는 티켓 가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몇 년 전에 FC 바르셀로나의 홈에서 펼쳐지는 예선전을 본 적은 있지만, 결승은 그저 '언젠가는'의 리스트에 넣어두고 말이다.

바르셀로나로 가야하나 하는 찰나, 기적이 일어났다
 

▲ 마드리드 중심은 축제가 한창이예요! 솔광장에는 리버풀과 토트넘을 위한 '진짜 축구의 집 (Real Casa del Futbol)'이 생겼더라구요! 평소에도 붐비는 광장이 이 날은 사람들로 터져나갈 것만 같았어요! ⓒ 이창희

  
막연하게 6월 초의 휴가를 계획했다. 희망으로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시작으로 해서 UEFA 국가대항전 (UEFA Nations league) 결승전을 마지막으로 돌아오면 좋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티켓은 추첨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고, 다행스럽게도 국가대항전 결승전은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에 휴가는 원래 일정대로 강행했다.

경유를 몇 번이나 해야 하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마드리드에서 시작하여 포르투에서 마무리되는 일정으로 숙소를 예약했다. 막연히 FC 바르셀로나가 결승에 올라갈 것이라 예상했고, 거리응원이라도 하려면 바르셀로나로 가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기적이 일어났다.

4강 1차전의 승리는 기적처럼 뒤집혔고, '절대 혼자 걷게 하지 않겠다 (You will never walk alone)'는 리버풀과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손흥민의 토트넘이 결승에서 맞붙게 된 것이다.

프리미어리그 팀들끼리 결승에서 만나게 된 것이 몇 년 만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아직 마드리드의 숙소를 구하지 못했던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리버풀은 세계에서 열광적인 팬이 가장 많은 팀이었고, 영국 축구팀들이 맞붙게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영국인들이 마드리드로 몰려올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숙소 예약 사이트를 몇 군데나 뒤졌음에도, 노숙을 면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예약사이트에 나타난, 12인실 호스텔의 침대 하나

"혹시, 마드리드에 숙소 나오면 꼭 얘기해 주세요!"
"큰일이네. 지금 숙소가 없어서 난리예요."


지금 마드리드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긴급 구조를 요청했지만, 난색을 표한다. 방은 물론이고 호스텔의 침대 하나도 쉽지 않다는 거다. 친구들은 침낭을 들고 가라, 차를 빌려서 그 안에서 자라, 며 거들었지만, 영국 축구팬들 사이에서 노숙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했기에 숙소를 구하기에 필사적이었다.

가까스로 예약사이트에 12인실 호스텔의 침대 하나가 나타났고, 간신히 노숙은 면할 수 있었다. 티켓은 여전히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경기장 주변에서 맥주 마시면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출발일은 차근차근 다가왔고, 내게도 기적이 일어났다.
 

▲ 올해의 우승컵과 함께 사진을! 솔광장에는 올해에 수여하게 될 우승 트로피 (빅이어)가 전시되어 있었어요. 한시간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느라, 태양에 녹아버릴 것 같았지만, 이렇게 진귀한 사진을 남겼습니다! ⓒ 이창희

  
"티켓이 한 장 남았는데, 보실래요?"

아! 전생에 무슨 복을 쌓았는지, 내게도 이런 행운이라는 게 오기는 한다. 이번에 대회를 관람하러 가는 지인이 갑자기 메시지를 보냈다. 두 번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무조건 '좋아요!'를 백만 번쯤 외치고, 고맙다는 인사를 수도 없이 보냈다.

나는 앞으로, 이 기회를 준 지인을 '소원을 들어준 은인'으로 대접할 생각이다. 이렇게 내게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티켓이 들어왔고, 솔 광장의 축제를 거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 도착했다.
 

▲ 드디어 경기장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결승전 티켓입니다. 경기장 밖에서 맥주나 마실 줄 알았는데, 어마어마한 행운이네요. 드디어, 눈 앞에 보이는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 들어갑니다! ⓒ 이창희

  
나는 FC 바르셀로나를 좋아한다. 1등을 응원하는데 인색한 내가 바르싸(Barca, FC 바르셀로나의 별칭)를 응원하게 된 데에는, 스페인 내에서 카탈루냐가 겪어내고 있는 투쟁의 역사와 투쟁의 한 가운데에서 시민들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민구단'의 이야기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카탈루냐에 적대적인 스페인 왕실의 '진짜 (Real, 레알)' 축구팀인 레알 마드리드는 좋아할 수 없었고, 상대적으로 노동자 집단에 기반을 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호감이 있었다. 언젠가 마드리드에 오게 되더라도 레알의 홈구장인 '베르나베우'보다는, 아틀레티코의 홈구장인 '완다 메트로폴리타노'를 찾고 싶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이 이번 챔피언스리그의 결승전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 손흥민 선수가 몸을 풀러 나왔습니다. 아무리 냉정하려고 해도, 손선수가 '우리선수'라는 것은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그것도, 최고 중의 최고가 겨룬다는, 세계 축구 최강의 무대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감동을 넘어서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네요. ⓒ 이창희

 
경기는 생각보다 일찍 맥이 풀렸다. 킥오프 휘슬과 거의 동시에 페널티킥이 선언되었고, 프리미어리그의 득점기계 리버풀 살라의 힘찬 킥은 토트넘 포체티노 감독의 전략까지 모두 집어삼킨 모양이었다.

그동안 기적처럼 토트넘을 끌고 왔던 '젊은 패기'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리버풀 팬들의 야유에 기가 죽었는지, 제대로 된 공격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경기 내내 끌려다녔다. 케인을 투입할 수밖에 없던 감독과 구단의 사정은 있었겠지만, 오랫동안 발을 맞추지 못했던 공격라인은 어쩔 줄을 몰랐고, 답답했다.

케인과 모우라, 손흥민, 마지막으로 요렌테까지 공격 자원을 모두 투입했지만 손발이 맞지 않았다. 초반부터 의도대로 가지 못한 채 지지부진했던 경기는 누구도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했지만, '이기고 싶은' 간절함을 가진 리버풀 클롭 감독에게 첫 번째 빅 이어를 선사했다.

이번 경기가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걸맞은 경기였는지는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문이 든다. 차라리 4강 2차전의 두 경기의 환희가 결승의 무대에 더 적절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대 안의 모든 장치들은,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게 했다. 수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였던 토트넘 서포터들은 응원을 멈추지 않았고, 거의 전 관중석을 채웠던 리버풀 서포터들은 추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며 단호했다. 양 팀 서포터들의 응원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열광이었다.
 

▲ 그대들을 절대 혼자 걷게하지 않겠다! 관중석의 절대다수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리버풀의 팬이었어요. 그들의 선수를 절대 혼자두지 않겠다는 그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언제이고 그들의 팀에 가장 가깝게 닿아있겠죠? 부러웠습니다. ⓒ 이창희

  
오리기가 추가골을 성공시키기 전까지는 경기장의 누구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나는 손흥민 선수가 수비라인을 뚫고 뛰어나올 때마다 긴장했고, 기대하고 있었다. 부진한 케인을 그대로 두는 것이 옳은가를 내가 고민할 것도 아니지만, 좀처럼 리버풀의 '이기는 축구'가 구축한 철통같은 수비가 뚫리지 않으니 안타까웠다.

토트넘보다는 오랫동안 리버풀을 응원해 왔던 나였지만, 손홍민 선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감동하는 것을 보니 그가 '우리 선수'라는 것은 마음으로 인정하고 있는 모양이다.
 

▲ 고개숙인 손흥민선수의 어깨가 안타깝습니다. 경기가 끝났습니다. 이런 무대에선 항상 패배한 팀이 가장 안타까운 것 같아요. 분명히 2등을 한 것인데, 결승의 명암이 극명하게 대비되다보니 어느때보다 더 어두운 2등의 자리니까요. 리버풀 선수들의 우승을 축하하는 기념식을 준비하는 동안, 어깨를 떨어뜨린 손선수의 뒷모습이 안타깝네요. ⓒ 이창희

   

▲ 리버풀 FC에게 우승컵인 빅이어가 전해집니다. 이 날의 모든 경기는 이 무대로 마무리됩니다. 중앙에서 당당하게 빅이어를 높이 들고 환호하는 선수들과 그들과 언제나 함께하는 서포터들이 주인공이죠. 한쪽 옆으로 쓸쓸한 토트넘 선수단의 대비가 극병합니다. ⓒ 이창희

 
축제는 끝이 났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드리드의 밤을 쉽게 보내지 못했고, 특히, 리버풀 팬의 '팬심'은 굉장했다. 표를 구하지 못했더라도 '친구 따라 마드리드에' 도착한 붉은 유니폼의 리버풀 팬들은 서로에게 행운을 빌고 축하를 나누며 하나가 되었다. 리버풀의 전설인 제라드의 유니폼을 입고 다녔더니, 계속 내게도 행운을 빌어줬다. 그날, 마드리드 거리 어디에서든 울려 퍼지던 리버풀의 팀 응원가가 아직도 귀에 남아있는 느낌이다.

누구에게든 '나의 팀'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나의 팀이 최고가 되는 것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이날은 리버풀 팬들에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날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2019년 6월 1일을 함께한 것만으로도, 나도 그들과 나누었던 열광을 잊지 않을 것이다. 
 

▲ 오늘 함께했던 세 시간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아비정전>이었죠? 당신과 함께한 1분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이보다 더 무서운 사랑의 고백이 있을까요? 저도, 모든 축구팬들과 함께했던 이 날의 세 시간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경기장을 빠져나오며 환희를 함께했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와 인사를 나눕니다. ⓒ 이창희

  
당신에게도 당신의 팀이 있나요? 당신의 팀과 함께할 최고의 순간을,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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