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직원이 계산대 밑에 비닐을 숨긴 이유

[현장] 대형마트에 ‘친환경 바람'... 과대포장 등은 여전

등록 2019.06.09 20:11수정 2019.06.0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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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광화문점. 감자 판매대 앞에도 속비닐은 없었다. ⓒ 류승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형마트 신선식품 코너 앞에는 돌돌 말린 투명 비닐이 마련돼 있었다. 비닐 한 장을 찢어 야채를 담으면, 옆에 서 있던 마트 직원이 비닐 위에 바코드 스티커를 붙여주곤 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대형마트의 '흔한 풍경'이었다. 

이제는 그 모습이 낯설어졌다. 대형마트 신선식품 코너에 배치된 속비닐 개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생선을 담는 스티로폼 접시, '트레이'의 색깔도 대부분 흰색으로 바뀌었다. 재활용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대형마트는 또 일회용 플라스틱 비닐을 팔지 않는 대신 소비자들에게 장바구니를 빌려주고 있었다. 한 대형마트에서는 '카트'까지 대여해준다고 했다. 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자가 직접 달라진 대형마트의 풍경을 살펴봤다.

흔치 않은 풍경이 된 대형 마트의 속비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광화문점의 단호박 판매대 앞. 비닐이 놓여있어야 할 자리에는 ‘롤백 줄이기에 동참해달라’는 내용의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 류승연

 
"이 단호박, 어떻게 담아요?"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근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장. 단호박을 담을 비닐이 필요하건만, 그 어디에도 속비닐은 없었다. 비닐이 놓여있어야 할 자리에는 '롤백 줄이기에 동참해달라'는 내용의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매대 앞을 서성이다 계산대 직원에게 질문을 건네자 직원은 그제야 계산대 밑에서 비닐 한 장을 꺼내줬다. '왜 비닐을 넣어두었냐'는 질문에 그는 "속비닐이 낭비되는 것을 막기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 마포구 이마트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육각형의 신선식품 매대 8군데 중 속비닐이 있는 건 두 곳 뿐이었다. 속비닐 두 개는 각각 감자 판매대와 파프리카 매대 앞에 마련돼 있었다. 신선식품을 판매하고 있는 직원 주임옥(53)씨는 "이전에는 6개 매대에 모두 속비닐이 있었다"면서 "지금은 2개로 줄었다"고 말했다.     

속비닐 개수가 줄어든 건 환경부가 지난 1월부터 대형마트 내 일회용 비닐 봉투 사용을 금지한 것과 관련이 있다. 환경부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아래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을 통해 올해부터 대형마트 및 165㎡ 이상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봉투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이 규칙은 3월 말까지의 유예 기간을 거쳐 지난 4월부터 본격 적용됐다.

이에 따라 예외로 인정된 '흙이 묻은 채소'나 액체가 샐 수 있는 '두부·어패류·고기'가 아니라면, 상품을 담는 데 속비닐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일반적인 상품에 대형마트쪽이 일회용 비닐봉투를 제공하다 적발되면,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검은색'이었던 회 접시가 '흰색'으로 바뀐 까닭

수산물 코너에서도 친환경적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수산물은 일반적으로 검거나 알록달록한 알루미늄 접시에 담겨 있었다. 흰색인 수산물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접시는 점차 흰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서울역 롯데마트의 홍어회와 이마트의 갈치가 그랬다. 색이 들어간, 코팅된 트레이는 재활용이 어렵다. 반면 흰색 트레이는 재활용이 간편하다. 이마트에서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는 이희대(43)씨는 "6개월 전부터 구이용 수산물은 흰색 트레이에 담아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4일 이마트 마포점의 수산물 코너. 대부분의 수산물이 흰색 트레이에 담겨 있다. ⓒ 류승연

 
대형마트의 '장바구니 대여 서비스'에서도 또다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익숙했던 일회용 비닐봉투를 더 이상 매장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대형마트는 이 서비스를 만들었다. 롯데마트는 2017년부터 전체 매장에 '대여용 장바구니'를 마련해두고 있다. 3000원의 보증금을 내면 계산대에서 빌릴 수 있다. 롯데마트는 2017년 9월부터 1년여에 걸쳐 36만개가 넘는 장바구니를 대여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장에서는 장바구니를 넘어 '카트'까지 빌려준다고 했다. 지난해 6월부터 홈플러스는 옥수점과 구월점 등 전국에 있는 주요 10개 매장에서 접을 수 있는 쇼핑카트를 대여해주고 있었다. 시범적으로 카트 대여 서비스를 운영하는 몇 개 지점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매장에서도 카트를 어렵지 않게 빌릴 수 있었다. 광화문 근처 홈플러스 슈퍼마켓직원에게 '카트를 빌리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신분증을 맡기면 빌려갈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형마트에 왜 갑자기 '친환경 바람'이 불었을까 

이같은 변화들은 비교적 최근에야 이뤄졌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대형마트에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는 걸까. 이는 작년 4월 '쓰레기 대란' 이후 정부의 재활용 쓰레기 대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중단하면서 재활용 업체가 쓰레기를 수거해가지 않는, 이른 바 쓰레기 대란이 벌어졌다. 환경부는 2차 쓰레기 대란을 막기 위해 지난해 5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양을 50%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후속조치로 마련된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에는 과대 포장 억제나 1회용품 줄이기 등 유통 시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도 친환경 물결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5일 롯데마트 서울역점의 수산물 판매대. 이들이 판매하고 있는 홍어회 중 절반은 흰색 트레이에, 또 절반은 검은 트레이에 담겨 있었다. ⓒ 류승연

 
물론 대형마트의 친환경 움직임에도, 아직 아쉬운 점은 있었다. 수산물 트레이가 대표적이다. 롯데마트가 판매하고 있던 홍어회의 절반은 흰색 트레이에 담겨 있었으나 나머지 절반은 코팅된 검은 트레이 위에 있었다.

이마트에서도 횟감은 여전히 검은 트레이 위에 놓였다. 이중 포장도 여전했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이마트 모두에서 이같은 포장이 발견됐다. 여섯 개 과자를 묶어 판매하기 위해, 더 큰 비닐봉투 안에 넣어두는 식이다. 

또 소비자들의 인식이 여전히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역 롯데마트에서 신선식품을 판매하고 있는 이미옥(53, 가명)씨는 "소비자들이 속비닐을 너무 쉽게 뜯어간다"며 "비닐 때문에 소비자와 직원이 싸운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이마트 고객센터 담당자는 지난 4월 지구의 날을 맞아 자신들이 마련한 플라스틱 회수함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마트는 소비자들이 다 쓴 플라스틱을 가져와 회수함에 넣으면 이를 '업사이클링(Up-cycling, 재활용품에 활용도를 더해 가치를 높인 새로운 물건으로 재탄생시키는 것)'해 지역 사회에 기부하겠다며 수도권 29곳 매장에 회수함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소비자의 수는 아직 미미하다. 

이마트 고객센터 김연희(49, 가명)씨는 "손님이 회수함에 플라스틱을 넣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작 확인한 플라스틱 회수함 안에는 갓 마시고 버려진 듯 보이는 요구르트 한 병과 홍삼 한 병이 전부였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본격적으로 법을 시행하기 전이었던 작년, 대형 마트들과 합의해 앞으로 얼마나 속비닐을 줄일 수 있을지 예상해 본 적이 있었다"며 "당시 데이터로는 매장에 있는 속비닐의 70%가 줄어들 거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대형마트가 플라스틱 줄이기에 나선 후 그 효과가 작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어 이중포장이 여전한 것과 관련해 환경부쪽은 "과대 포장 문제에 공감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불필요한 포장을 금지하는 제도를 마련 중이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관련 내용에 대해 관계부처에서 심사중이며, 빠르면 7월 혹은 8월 중에 시행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마트가 지난 4월 지구의 날을 맞아 마련한 플라스틱 회수함. ⓒ 류승연

#환경의날 #세계환경의날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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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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