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범죄'는 없다, 언론이 정신장애인 혐오 부추겨"

[현장] 정신장애인 언론 보도 문제 성토... “정신건강 보도준칙과 모니터링 필요”

등록 2019.06.05 19:32수정 2019.06.0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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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과장이 6월 5일 오후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마음극장에서 열린 정신장애인 인권증진 정책 간담회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최근 조현병 관련 언론 보도 사례를 들고 있다. ⓒ 김시연

  
"오늘 아침 기사 제목에 '조현병 범죄'라는 신조어까지 뜨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중략) 정신장애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 더 치열하게 얘기해야 한다."(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

지난 4월 경남 진주 방화·폭행 사건부터 최근 고속도로 역주행 사고까지, '조현병'을 언급하는 보도가 늘면서, 언론이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5일 오후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마음극장에서 열린 '정신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연속정책간담회' 첫 번째 주제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언론의 역할'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립정신건강센터, 한국정신장애연대에서 공동 주최한 이날 간담회에서는 최근 '조현병'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정신질환과 범죄 연관성 '추정' 보도해선 안돼"

조근호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과장은 최근 '조현병'을 제목에 언급한 강력 사건 보도들을 열거하면서, "기사 클릭수와 열독률을 높이려고 이런 제목을 뽑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정신질환과 폭력의 연관성을 전달해 대중의 공포심을 극대화하는 보도가)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이고 부적절하며 비호의적인 인상을 줘 환자의 지역사회 적응을 저해하고 정신질환과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확산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과장은 영국, 캐나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비롯한 주요 국가에선 언론보도준칙을 통해 정신질환과 폭력 사이의 연관성을 가정하는 보도나 '조현병 환자'라는 표현 자체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정신건강 관련 언론보도준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도 지난 2017년 정신건강 보도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나 보도준칙으로 발전하진 못했다.

조 과장은 "정신질환자와 관련된 정보가 포함된 경찰이나 수사기관의 추정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보도하면 독자는 그 범죄를 정신질환자의 범행으로 규정하고 확대해석할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범죄와 정신질환의 연관성 여부를 '추정' 상태로 보도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과장은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은 25.4%(보건복지부 2016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로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면서 "정신질환 관련 보도시 당사자와 그 가족의 인권을 중요시해 추가 피해나 마음의 상처를 입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윤영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도 "2004년 자살예방보도준칙을 만들 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어제 '조현병 환자 역주행'이라는 뉴스 제목을 보고 정신질환과 강력범죄가 연관성이 강한 것처럼 암시하는 언론 보도 문제가 정점에 왔고 정신건강 보도준칙을 일찍 만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영화, 드라마 영향력 커져 '미디어 가이드라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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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이 6월 5일 오후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마음극장에서 열린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언론의 역할’ 간담회에서 정신건강 언론보도 권고기준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김시연

 
자살보도권고기준을 만들어 언론 보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보도준칙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론인이 지켜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면서 "언론사나 기자와 논쟁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정신장애인 당사자들 목소리를 언론에 충분히 전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 2017년부터 정신건강 관련 언론 보도를 모니터하고 있는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아래 중앙지원단) 최원화 사무처 팀장도 "최근 정신질환 관련 범죄사건 사고 보도로 정신질환에 대한 혐오와 부정적 인식이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면서 "언론 보도 모니터 결과 조현병 관련해서 중립적 논조라고 해도 독자들에게 공포감과 혐오감 등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팀장은 "언론 보도뿐 아니라 최근 드라마나 영화, 유명인 인터뷰, 예능 콘텐츠 등 파급력이 큰 매체들이 과장된 표현으로 더 큰 혐오와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면서 "미디어 가이드라인 마련과 더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 체계를 갖추고 일부 부정적 표현뿐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장 기자들 사이에서 자성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장애인 전문 인터넷매체인 '비마이너' 강혜민 기자는 "메이저 언론에서 '정신질환자 범죄' 사건을 보도하면서 당사자인 정신장애인 취재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면서 "보도준칙도 필요하지만 언론사에서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주요 언론사에서 장애·빈곤 분야를 전담하는 소수자 부서를 만들어 당사자들 목소리가 많이 나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병 #정신장애인 #정신건강 언론보도 권고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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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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