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단의 이단아, 중국 최고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

중국 최고 전시회에 참가한 인천 출신 이관수 화백

등록 2019.06.07 16:01수정 2019.06.0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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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연히 그 길을 걸었네', 장지에 수묵담채 작가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면서 이번 전시회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다 ⓒ 이상구

 
하가영 등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인민화가들이 총출동하는 전시회

지난 5월 14일부터 나흘간 중국 베이징의 산수 미술관에서는 제13회 '전승과 경전 계열전'이 열렸다. 매년 그 해의 최고 화가 20명씩을 선정해 개최하는 이 전시회는 '산수문원집단'이라는 민간 기업이 주관하지만 그 의미나 규모면에서 단연 정상급 전시회다.


그런데 이번 산수전시회는 우리 화단에 각별한 의미가 있는 이벤트로 기록 될 만하다. 전시회 사상 최초로 국내 화가가 초청작가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중국 최고수들도 작품 걸기 어렵다는 이 전시회에 깜짝 등장한 화제의 주인공은 인천 출신 이관수 화백(56)이다.

사실 국내 화단에서 그의 존재감은 그다지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 미술시장은 일찍이 그를 한국의 대표작가로 인정하며 크게 주목하고 있다.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화단을 노크하기 시작한 그는 지난 2016년 웨이하이시에서의 첫 개인전을 필두로 다양한 현지 활동을 전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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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창당 기념 우표 이관수 화백은 지난 2016년 부터 중국 공산당 창당 기념 우표와 옆서에 자신의 작품을 싣고 있다. ⓒ 이상구

 
특히 중국 정부 측의 요청으로 공산당 창당 95주년 기념 우표 및 엽서에 자신의 작품을 실었는데, 이 역시 한국인으로는 처음 있는 '대사건'이었다. 올해까지 4년 연속 자신의 작품을 제공하고 있다. 웨이하이시 미술협회가 그를 최초의 외국인 회원으로 받아 줄 정도로 중국에서 이관수 화백의 입지는 독보적이다.

얼마 전 성황리에 전시회를 마치고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5일 인천 선학동에 있는 그의 아뜰리에를 찾았다. 전시회 소식부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전시회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와 깜짝 놀랐죠. 반신반의하며 중국으로 날아가 전시회장에 가보니 이건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거예요. 산수문원집단이라는 중국의 기업이 미술과 전통을 테마로 아예 하나의 타운을 조성했는데, 거리 이름마저 산수미술대도였어요. 그 거리의 중심에 산수미술관이 있어요. 어마어마해요. 총 만평이 넘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3백 미터가 넘어요. 전시 방식도 재밌었죠. '작품을 몇 점 걸어라' 그런 식이 아니라 '작가 1인당 35미터씩의 벽을 내줄 테니 알아서 해라' 뭐 이런 식이었어요."
 

인천 출신 화가 이관수 중국 북경에서 열린 제13회 '전승과 경전 계열전'에 한국인 최초로 초대된 이관수 화백을 그의 아뜰리에에서 만났다. ⓒ 이상구

 이관수 화백은 아직도 전시회의 감동과 흥분에 젖어 있는 듯했다. 목소리는 다소 들떠 있었고, 표정도 상기돼 보였다.

"그럼요.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그게 얼마나 대단한 전시회인지 몰라요. 어떻게 보면 중국 미술계의 '슈스케(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 K'의 약어)'라고나 할까? 당대 가장 실력이 출중하고 인기 있는 작가를 엄선해 초대하거든요. 내로라하는 중국 화가들도 그 전시회에 초대받는 게 지상최대의 과제일 정도죠."


그는 이번 전시회에 모두 17점의 작품을 걸었다. 그가 천착하고 있는 인물화를 중심으로 산수화도 함께 선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동양화 재료를 베이스로 서양화의 기법을 접목한 독자적인 화풍을 보여 준다.

"서양화 전공으로 대학에 갔는데, 동양화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어요. 나중엔 전공을 바꿨죠. 서양화의 기법 중에 스푸마토란 게 있는데, 그걸 동양화에 적용시켜 밨어요. 나름 괜찮더라구요. 그걸 여기선(한국) 크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거기(중국) 사람들은 엄지를 치켜세우더군요."

스푸마토(sfumato)란 '연기와 같은'이란 뜻의 아탈리아어로 사물이나 인물의 윤곽을 선으로 표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번지듯 그리는 기법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동양화인듯 서양화스럽고, 눈에 익은 듯 낯선 느낌을 받게 마련이다.

"사실 제가 이번 전시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어요. 하가영이 나온다는 거예요. 하가영이 누굽니까. 인물화로는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대가 중 대가예요. 사마란치가 후원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제가 중국에 처음 나갔을 때부터 제 작품이 하가영하고 많이 닮았다는 소릴 많이 들었어요. 꼭 한번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 바람이 이뤄진 거죠."

 

자신의 전시장 앞에선 이관수 화백 이번 전시회가 열린 산수미술관은 자그마치 1만평이다. 여기에 초청된 작가들은 한 사람당 35M씩을 책임져야 한다. 자신의 전시장 앞에 선 이관수 화백의 모습 ⓒ 이상구

 하가영은 현재 중국미술협회 부주석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고 있는 중국 최고의 인민 화가다. 그의 작품은 호당 4백만~5백만 원 이상에 거래된다. 중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화가다.

"전시회 준비 도중 하가영을 만났는데, 자기 화풍하고 많이 닮았다고 하면서 제 작품을 호평해 주더군요. 그런 대가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주니 어깨가 으쓱했죠. 전시회 첫날부터 관람객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어요. 하가영 작품하고 제 작품을 번갈아 보면서 감탄하기도 했죠. 그렇게 비교해 보려면 100미터 이상을 뛰어다녀야 하는데 말이죠."

중국 매체들도 이 화백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인터뷰 요청도 많았고, 실제 방송이나 신문에 보도도 많이 됐다.

"솔직히 판매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그러나 중국 미술의 심장인 북경무대에, 그것도 지금 활동하고 있는 중국의 대표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게다가 한국인 최초로 초대받아 내 작품을 내 걸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죠. 참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였구요."

그는 앞으로도 국내 화단보다는 해외 시장에 더 주력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음 달 7월 싱가포르 초대전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예정이다.

돈으로 예술하는 게 싫어 한국을 뜨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죠.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미술계는 취미생(취미로 그림을 배워 현역 작가로 데뷔한 화가)들이 주도하고 있어요. 주로 돈 많은 집 사모님들이죠. 신인들의 공식 데뷔무대라 할 수 있는 아트 페어 같은 데도 돈 없는 작가들은 아예 출품도 못해요. 수백만 원의 참가비가 없어서죠. 그런데 그런 분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턱턱 제 돈 내고 그림 걸고 데뷔했느니 어쩌고 하는 거죠."

해외진출에 전념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목소리 톤부터 달리했다. 한이라도 맺힌 사람처럼 격정적으로 많은 말을 쏟아냈다. 사실 그는 어떻게 보면 한국 화단의 은둔자 심지어 이단아라 부를 만했다 그만큼 국내활동이 없었다. 아예 외면했다는 표현이 맞았다. 작가들의 실력보다 재력을 중시하는 풍토에 질려서였다.

"무엇보다 실력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작가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탄생하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 거듭나는 거예요. 그건 가장 기본적인 진리죠. 그런데 우리들은 그 기본을 잊고 있어요. 눈앞이 이익 때문이죠. 실력있고 재능있는 후배들은 아예 명함도 못 내미니 전체 미술시장 수준은 한없이 추락할 밖에요."

이관수 화백은 근 50여 년을 그림에 매달렸다. 학창시절은 물론 청춘과 중년까지 모두 작품에 바쳤다. 그러면서도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런데 16억 인구의 중국이 그를 인정한 거다. 그래선지 그는 인터뷰 내내 '다시 시작'이라는 표현을 자주 언급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죠. 지금까지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시야로 예술을 봤는데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어요. 더 용맹정진하고 실력을 닦아야겠다는 결심도 했구요. 하가영을 비롯해 이번에 만났던 중국의 대가들도 보통 하루 10시간 이상을 그림에 매달린다고 하더군요. 혹독한 자기연마와 피나는 수련 만이 답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말하는 '다시 시작'은 일종의 자기주문이었다. 지금의 각오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표현이었다.

"갈수록 젊어지시는 것 같아요. 작품이 나날이 여유로워지는 것 같거든요. 예전에 없던 위트와 해학도 종종 보이구요. 이관수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고나 할까요?"

마침 그 자리에 동석한 동료화가 김숙연(50)씨의 평이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 화가, 나날이 젊어지는 열정의 예술가 이관수. 지금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을 잊지만 않는다면 자신의 버킷 리스트 맨 상단에 있는 뉴욕과 파리 진출의 꿈도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처럼 보인다. 
#이관수화백 #산수미술관 #중국대가들 #하가영부주석 #전승과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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