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돈 10억원 거부하고 산재 인정 받은 엄마와 딸

[인터뷰] 삼성LCD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와 모친 김시녀씨

등록 2019.06.07 07:35수정 2019.06.0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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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오마이뉴스>는 10년만에 산재 인정을 받은 삼성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를 찾았다. ⓒ 유지영


"내가 산재 맞거든요? 그런데 이제서야 산재 인정을 받았다는 게 너무 웃겨요. 정말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답답했어요."

오래 기다렸다. 10년이 넘는 기다림이었다. 6일 강원도 춘천의 자택에서 만난 삼성LCD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42)씨는 마른 체구에도 우렁찬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산재 맞거든요?"라는 되물음 속에는 삼성과 싸운 10년의 세월이 녹아있었다. 결국 그는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됐다.

예전에 한씨는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면 "내 말을 믿어달라"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팡팡' 쳤다. 한씨의 모친 김시녀(62)씨는 "가슴에 응어리가 져서"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30일 가슴에 응어리가 질 정도로 간절했던 산재 재신청이 마침내 승인됐다. 김씨가 그 소식을 전하자 당시 밥을 먹던 한씨는 밥숟가락을 채 내려놓지도 못하고 대성통곡을 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더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한씨는 한참을 울부짖었다. 한참을 꾸역꾸역 울던 한씨는 10년 넘게 자기와 함께, 때로는 앞서서 싸운 엄마를 보고 웃었다.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 엄마가 말해주더라고요. 밥을 먹으면서 눈물이 나왔어요. 진짜 많이 울었어요. 인정이 되고 나니까 왜 이제야 됐는지를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한혜경)
"그래. 이제라도 됐으니까 감격이 큰 거지." (김시녀)

"(끄덕끄덕) 엄마한테도 너무 고마웠어." (한혜경)
"뭐가 고마워?" (김시녀)

"엄마하테 너무 고마웠고 너무 미안해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울고 나니 웃음이 나대요?" (한혜경)


"저 같은 사람 또 나오면 안 되잖아요"

한씨는 지난 1995년부터 삼성전자 경기도 기흥공장에서 꼬박 5년 10개월을 일했다. 맏딸이고 책임감도 강했다. 한씨는 상고로 진학했고 졸업 후 바로 취업했다. 월급이 세다는 삼성이었다.

그런데 삼성에서 근무하던 5년 사이에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생리가 멈췄고 몸이 안 좋아졌다. 한씨는 결국 퇴사하고 춘천으로 돌아와 마트 아르바이트 등을 했다.

그러던 2005년 10월 한씨가 갑자기 쓰러졌다. 뇌종양이었다. 종양 제거 수술을 했지만 후유증으로 시각, 보행, 언어장애인이 됐다. 그 후로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한씨 모녀는 전국 각지의 병원을 돌아다녔다. 가보지 않은 병원이 없을 정도였다. 

2009년 한씨는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승인되지 않았다. 이후 근로복지공단 심사, 재심사 청구에서도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 행정 소송을 했지만 2015년 대법원에서 결국 패소했다.

춘천에서 서울을 왔다갔다 하는 동안 울기도 많이 울었다. 힘들여서 3~4시간 걸려 서울까지 가면 재판을 받는 시간은 고작 3~4분. "(산재가 아닌) 개인의 질병"이라는 결정과 함께 들리는 판사의 '땅땅땅' 소리에 이들은 발걸음을 돌렸다. 때로는 "너무 화가 나서", 또 "너무 억울해서" 울었다.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권유한 끝에 이들 모녀는 2018년 다시 한번 용기를 냈고 근로복지공단에 재심을 신청한 끝에 지난 5월 최종적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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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CD 피해자인 한혜경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의 일부. 한혜경씨는 지난 5월 30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게 됐다. 2009년 대법원에서 패소한지 10년만이다. ⓒ 반올림

 
지난 4월 한씨가 근로복지공단에 낸 최종 의견진술서는 다음 문장으로 끝난다.
  
"저는 꼭 산재로 인정받아서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최종 의견진술서 10문장을 쓰는 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제가 일할 때에는 비닐장갑도 잘 찢어져서 맨손에 약품이 묻기도 하고 마스크를 껴도 냄새가 다 났어요. 그런 게 위험하다는 건 몰랐어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반도체, LCD 공정에서 뇌종양 피해자가 많이 나왔고 또 명확히 입증 못해도 산재보험 취지상 뇌종양도 산재로 인정되는 분들이 여럿 생겼잖아요. 저에게도 공정하게 판정해주시면 좋겠어요." (한혜경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의 일부)


삼성에서 회유가 들어왔다

모녀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활동가가 다 됐다. 다른 산재 피해자들도 도울 생각이다. 한씨는 주먹을 꼭 쥐고 "투쟁!"이라고 외치면서 "저 같은 사람이 또 나오면 안 되잖아요. 저는 (투쟁)해야죠.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는 데까지 가야죠"라고 말했다. 김씨는 대번 "그럼! 가야지. 하는 데까지 해야지"라고 딸의 말을 거들었다.

지난 2018년 7월 반올림 농성이 1023일로 마무리가 되고 나서 김씨는 한동안 앓아누웠다. 그는 "3년이라는 세월을 지나면서 골병이 든 모양"이라면서 웃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에 김씨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 때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요. 이재용 재판을 참석하면서 태극기부대 사람들을 보았는데, 혜경이한테 '병신이 여기를 왜 왔냐'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사람들 눈에는 혜경이가 병신으로 보이겠지만 그 트라우마는...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김시녀)

2014년 무렵에는 삼성 측에서 10억원을 줄 테니 산재 소송을 하지 말라고 회유해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김씨가 '혜경아, 엄마 너무 힘들어. 그냥 돈 받자'고 하자 한씨는 '엄마, 나중에 나 같은 사람 또 나오면 안 되잖아'라고 대답했다. 김씨는 '아차' 싶었다. 피해자가 계속 나오는 걸 보면서 김씨는 "이 일이 혜경이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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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한혜경씨의 손에 연고를 발라주는 엄마 김시녀씨의 모습. ⓒ 유지영

 
"집안에서 환자가 한 명 나오면 풍비박산이 돼요. 그런데 내가 겪은 일을 또 다른 누군가가 겪는다? 내가 조금만 더 싸우면 되는데? 다시는 실습을 나가서 사망을 당하지 말아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돼요. 저희가 지금은 노동자의 권리를 교육 과정에 넣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삼성 백혈병 문제가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서울로 다니고 있어요. 저희는 힘이 닿는데까지 싸울 거예요."

이들 모녀는 오는 1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산재인정 축하음악회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를 연다. 김씨는 "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워서요. 그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잔치도 파티도 아닌 그런 걸 열기로 했어요"면서 웃었다.

"혜경이랑 노래도 좀 부르고 감사 인사도 하는 자리가 될 것 같아요."

모녀는 서로를 다시 한 번 마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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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품에 안긴 한혜경씨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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