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의 운명, 사람의 운명과 닮았다

[김창엽의 아하! 과학 10] 처음엔 차이 없지만 시간 흐르면서 제 갈길 정해져

등록 2019.06.07 09:48수정 2019.06.07 09:48
0
원고료로 응원
하나의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되고, 산모의 자궁에서 수정란의 세포가 분열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마치 포도알과도 같은 세포 하나하나의 '운명'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장차 이들 중 어떤 세포는 눈이 되고 귀로 변한다. 또 어떤 세포는 심장이 되고 간을 구성하는 등 각각 제 갈 길을 간다.

세포의 이른바 '명운'은 생물학계를 넘어서 과학 전반에 걸쳐서도 가장 신비한 현상 중의 하나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세포의 명운과 관련해서는 규명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미국 하버드 의대, 오스트리아의 빈 의대, 스웨덴 칼로린스카 연구소 등 7개국의 공동연구팀이 최근 세포의 명운이 결정되는 기전 가운데 일부를 밝혀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학자만도 30명에 육박한다. 소속 기관은 17개다. 그리고 과학 학술지로써 영향력이 큰 '사이언스' 7일 자에 그 논문이 실려 더욱 주목을 받는다.
 

처음에 생성된 세포들(작은 알갱이 모양)은 특색이 없이 비슷하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특징들이 혼재하게 되다가, 결국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다른 쪽을 버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세포들(그림에서 보라색과 하늘색)로 확연하게 나뉘게 된다. ⓒ 하버드 의대 등

 
공동연구팀은 '뉴럴 크레스트'라 불리는 생쥐의 신경세포를 통해 미분화된 하나의 세포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생체 조직 혹은 기관으로 변하는지를 관찰했다. 사람이 엄마 뱃속에서 막 나왔을 때는 비슷비슷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모습에 다른 직업을 갖는 등 각자의 인생 여정을 거치듯, 세포 또한 배아 세포 상태에서는 서로 차이가 거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역할이나 기능, 생김새 등이 다른 세포로 바뀌는 것을 추적했다. 

연구팀의 이번 관찰과 실험은 세포 하나하나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주목하고 그 변화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핵산(DNA와 RNA) 등의 발현을 정밀하게 살펴봤다는 점이 특징이다. 연구팀이 이런 과정을 통해 알아낸 것은 세포가 일종의 '경쟁'과 '선택'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이다.
 

반도체 칩. 숫자 0과 1로 표시되는 이른바 이진법 원리에 따라 0과 1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세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함으로써 역할 혹은 기능을 달리하는 세포로 분화하는 경로를 밟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 위키커먼스

 
거칠게 말하자면 예를 들어 뉴럴 크레스트 세포가 심장 근육 세포가 될 수도 있고 얼굴 근육 세포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즉 경쟁 상태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일단 어느 한쪽으로 선택이 이뤄지면 그쪽으로 속칭 '몰방'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나 수학의 알고리즘에서 '예' 혹은 '아니오'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방식과 유사하게 세포의 분화 경로가 정해진다는 얘기다.

연구팀을 이끈 하버드 대학의 피터 카첸코 교수는 "우리의 이번 연구가 세포의 운명 그리고 세포가 분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잘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세포의 분화 과정에서 뭔가 잘못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암세포의 증식을 꼽을 수 있다.
 

막 태어나 엄마 배 위에 올려진 아기. 태어났을 때 사람은 비슷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모습을 하게 되고 또 서로 다른 직업과 사건을 겪는 등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삶 자체가 경쟁과 선택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세포의 명운과 비슷한 면이 있다. ⓒ 위키커먼스

 
경쟁과 선택을 통해 세포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결론을 끌어낸 이번 연구는 그러나 그러한 경쟁과 선택을 이끄는 외부 환경 규명을 여전히 숙제로 남겨 뒀다. 세포가 처한 상황, 즉 어떤 외부 여건이 세포가 특정한 운명을 선택하도록 하는 거로 짐작되지만 그 같은 여건 혹은 조건들에 대한 탐색은 이번 연구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세포 #운명 #분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4. 4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5. 5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