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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장면 없이 영화에 비극적 역사 담기, '김군'이 해냈다

[리뷰] 역사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영화, <김군>(2019)

19.06.08 18:50최종업데이트19.06.0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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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군> 스틸 ⓒ 영화사 풀


역사를 영화로 재현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 그 자체도 완전한 객관성과 진실성을 담보할 수 없고, 그것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시선 역시 창작자 주관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재현한 영화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존재하고 있는 물질들이 다시 한번 창작자 주관의 시선에 의해 포착되는 허구의 이미지다. 사실의 이야기가 허구의 이미지로 환원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비틀리고 뒤집힌다. 그리고 위험해진다. 특히나 비극의 역사를, 그것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숨 쉬고 있는 동시대의 역사를 영화화하는 건 더욱 그렇다.

나는 기본적으로 역사를 재현하는 모든 영화에 회의적이다. 자크 리베트가 <천함에 대하여>에서 피력했듯 역사를 재현하는 영화는 필연적으로 관음증과 포르노그래피를 벗어날 수 없다. 카메라에는 태생적으로 비윤리적인 측면이 있다. 신군부에 의해 학살당하는 광주 시민들과 일본군에 의해 몹쓸 짓을 당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설령 그것이 허구일지라도)을 영화관에서 관람의 형태로 응시한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의 역사를 현재화하는 감독들이 있다. 그들의 영화적 소명은 무엇일까.

강상우 감독의 <김군>에는 역사가 없다. 여기서 '없다'란 문자 그대로의 없음(無)이 아니다. 역사가 영화의 전면에 나서서 서사를 진두지휘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의 없음이다. <김군>에서 역사는 그 역사를 견딘 사람들에게 영화의 중앙 무대를 기꺼이 내어준다. 평범한 일상들의 나열과 집합으로서의 역사. 역사와 개인이 부딪혔을 때 일어나는 스파크. 그것이 <김군>을 추동하는 동력이다. 단적인 예로 영화에는 5.18 재현물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80년 광주 영상이 등장하지 않는다. 감독은 '그 순간'이 필요하면 사진을 활용한다. 카메라는 사진 위를 천천히 미끄러지며 현재의 광주를, 오늘의 '김군'을 포착하는 데 주력한다.

잔혹한 장면 없이 역사의 비극을 담은 <김군>
 

영화 <김군>의 한 장면 ⓒ 영화사 풀

 
<김군>은 일종의 사진극의 형태로 80년 광주를 재현하며 관음증과 포르노그래피를 일정 부분 극복한다. 잔혹한 장면 하나 없이 역사의 비극을 묘파한다. 다큐멘터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서스펜스의 효과를 적절히 살려 장르적 긴장을 도모한다. 특히 청문회와 인터뷰 장면을 교차 편집한 시퀀스는 역사의 비극으로 인한 개인의 비애감을 감각적으로 표출한다. 

여기서 강상우 감독의 태도가 드러난다. 그는 위로의 방법을 알고, 역사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역사를 재현한 영화에서 고증(考證)만큼이나 중요한 게 시대와 인간을 바라보는 감독의 태도다. 올바른 태도로 조각된 이미지들은 관객들로부터 일종의 당위성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강상우 감독이 역사를 대면하는 태도는 무엇인가.

<김군>의 초점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의 광주가 얼마나 참혹했는 가에 있지 않다. 그게 중요했다면 총과 쇠방망이가 필요하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무수한 '김군'들이 등장해야 한다.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비극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낸(혹은 본의 아니게 살아남아 죄책감에 허덕이는) 익명들의 안부를 묻고 또 묻는다. 그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괜찮다고, 이제 그만 아파하라고 위로한다.

역사를 재현하는 영화에 역사보다 현재가 더 많이 등장하는 이유가 이와 맥이 닿아있다. 영화 후반부 금남로의 분수대에서 찬연하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그 주위를 자전거 타는 아이들. 내겐 그 엔딩 시퀀스가 혈흔이 낭자했던 80년의 금남로보다 더 아팠다. 흰소리와 왜곡이 판치는 작금의 상황에 비춰볼 때, 역사의 비극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비극은 역사에 포획된 정물이 아니라 개인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생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통 그 자체가 아닌, 고통 이후의 시간들에 더욱 천착해야 한다. 그들이 '당했던' 시간이 아닌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보듬어야 한다. '그때'가 아닌 '지금'을 물어야 한다.

진압군에 의해 물고문을 당해 이발관에서 스스로 머리를 감는다는 아버지. 당시의 트라우마 때문에 아직도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어머니. 80년 광주를 겪지 않은 우리들의 초점은 거기로 향해야 한다. GV에서 양희 작가는 <김군>의 상영관 수가 적어 언제 내릴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나는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극장에서 상영됐으면 좋겠다. 그건 정말 우리의 몫이다.
 

영화 <김군>의 한 장면 ⓒ 영화사 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송석주의 브런치(https://brunch.co.kr/@cinesong)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김군 영화 강상우 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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