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의 타깃은 문재인" 김원봉 논란 지켜본 아이의 일갈

[아이들은 나의 스승 164] 가치관이 물구나무선 대한민국에서 '훈장'이란

등록 2019.06.10 13:26수정 2019.06.1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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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색안경'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다시금 깨닫는다.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두고 또다시 '빨갱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애국 앞에 보수도 진보도 없다'는 무색무취한 말조차 '색안경' 낀 야당과 보수 언론엔 현 정부를 욕보이는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이게 다 '김원봉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과 보수 언론은 그의 이름 석 자만 나올라치면 입에 거품을 문다. 대통령 추념사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된 건 딱 한 번뿐이고, 발언 내용 역시 특별할 게 없는 데도 막무가내다. 

'일제강점기 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창설해 일제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후 광복군에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결집했다. 통합된 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이고,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다.' 

주어가 좌우 통합을 이룬 임시정부와 광복군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헌법 전문에서 밝히고 있듯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이 임시정부에 있고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광복군에 닿아있음을 강조한 내용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줄곧 말해 온 그다지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저들은 전후 맥락을 다 지운 채 김원봉을 주어로 삼아버렸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북한의 고위직을 지낸 김원봉을 추어올리며 우리 사회를 분열로 몰아넣고 있다"며 문 대통령을 비난했다. 심지어 같은 당 김영우 의원은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대한민국 정체성에 반한다"고 했다. 이에 질세라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도 "대통령에게 국민통합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거들었다.

이들에게 대체 어떤 구절이 김원봉을 추어올리는 부분인지, 또 어떤 내용이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또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든 현충원에서 국군의 뿌리인 광복군을 언급한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저들이 거두절미 김원봉을 주어 삼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그가 해방 후 월북해 북한 정권 수립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이다. 얼마 못 가 김일성에 의해 권력에서 밀려나 처형되었다고는 하나, 어쨌든 6.25 전쟁 당시 고위직에 있었다는 점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에 큰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남북 분단의 현실 속에 북한 정권 수립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은 일제강점기 그의 전무후무한 독립운동의 족적을 지워버렸다. 그의 월북으로 인해 고향에 남아있던 일가친척들이 우익세력에 의해 무참히 학살되었다는 슬픈 가족사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불세출의 독립 영웅이었던 그는 60년이 넘도록 남과 북 어디에서도 거론되어서는 안 될 이름이 되었다.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지켜본 아이의 일갈

일제강점기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서 여기서 굳이 다시 다루고 싶진 않다. 몇 해 전 영화 <암살>과 <밀정> 등을 통해 그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널리 각인되었다.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나름 잘 알고 있다. 하긴 현충일 이후 하루가 멀다고 그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마당이니 그에 관해 공부하는 건 어느새 우리 사회의 교양이 됐다. 
 

김원봉. ⓒ 위키백과

 
"대통령이 추켜세운다고 위인이 되고 깎아내린다고 악당이 되나요? 사람마다 김원봉에 관한 생각이 있고 각자 나름의 평가를 해요.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게 아니라면 대통령 말 한마디를 꼬투리 잡아 분열과 갈등을 부추긴다고 비난하는 건 황당할 뿐이죠. 따지고 보면 죄다 김원봉보다 문재인이 더 나쁘다는 식이잖아요." 

저들 덕분에 김원봉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는 한 아이의 말이다. 저런 어처구니없는 비난에 현혹되어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놀랍다면서, 정작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건 대통령이 아닌 저들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슬프게도 영화 <암살>과 <밀정>이 그랬듯 20분도 안 되는 대통령의 추념사가 열 교과서보다 낫다는 게 또다시 증명됐다. 

아이의 말마따나 저들의 타깃은 '김원봉'이 아니라 '문재인'이다. 야당은 김원봉과 문재인을 엮어 전가의 보도처럼 '빨갱이'로 낙인찍고, 보수 언론은 국가 정체성을 운운하며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극단적 혐오를 상징하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는 한 김원봉은 저들이 손에 쥔 '꽃놀이패'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듣자니까 단재 신채호 기념 사업회와 운암 김성숙 기념 사업회 등 독립운동 관련 시민단체들이 손잡고 전국 각 지역을 순회하며 '김원봉의 서훈을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한다고 한다. '빨갱이'라는 낙인에 대한 정면 돌파 의지를 밝힌 것이다. 서명운동과 함께 학자들을 초청해 학술대회를 겸할 예정이라는데, 이는 김원봉에 대해 역사적으로 재평가하자는 취지다. 

분명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자칫 충돌이 일어날까 두렵기도 하다. '빨갱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태극기 부대'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5.18 민주화운동 추념식이 있던 날에 학살의 현장인 금남로에까지 원정을 가서 광주시민들 앞에서 신명 나게'부산 갈매기'를 불렀던 이들 아닌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최고의 현상금을 내건 약산 김원봉의 서훈은 독립운동가들이 흘린 피로 되찾은 대한민국의 당연한 책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빨갱이'라는 말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그깟 훈장 따위에 목매달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업적을 담아낼 만한 훈장은 적어도 가치관이 물구나무선 대한민국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주는 훈장, 격이 떨어지는 이유

우리나라의 수훈 현황을 들여다보면 몇몇 황당한 사실이 눈에 띈다. 특히 조국의 독립과 건국에 뚜렷한 공적이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건국훈장의 경우,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적지 않다. 거칠게 말해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건국훈장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수차례의 상훈법 개정 과정을 통해 현재 5등급으로 나뉘어 있다. 대한민국장으로부터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순이다. 최고 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2019년 현재 모두 31명이 수훈 되었는데 그중 다섯 명은 쑨원과 장제스 등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중국인이다.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건 이승만과 임병직의 수훈 사실이다.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하며 임시정부의 분열을 초래하고, 해방 후 친일파를 중용하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획책하는 등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좋은 평가를 받긴 힘든 인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최고 등급 훈장을 받았다는 것 자체를 몽니 부리고 싶진 않다. 

문제는 서훈 시기다. 정부 수립 후 대통령령에 따라 '건국공로훈장령'이 제정 공포되었는데 그 첫 번째 수훈자가 바로 이승만 자신이었다. 최고 등급 훈장을 혼자 받는 게 멋쩍었는지 당시 부통령인 이시영을 수훈자 명단에 함께 올렸다. 말하자면 '셀프 훈장'이었던 셈이다. 

임병직의 경우엔 수훈 사유가 어처구니없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자들의 면면을 보면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나 임시정부 요인, 국권 피탈 전후 의병 활동과 의열 투쟁들 전개했던 분들이다. 대개는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익숙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임병직은 이름조차 생소할뿐더러 그의 공적은 국내외적으로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수훈 사유 역시 미주에서 활동했다는 정도만 언급돼 있다. 이승만이 독립공채를 발행하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설립한 구미위원부의 위원이라는 직함이 사실상 공적의 전부다.

과연 이승만을 보좌하는 개인 비서였다는 이유만으로 최고 등급의 훈장을 받은 것일까. 그의 수훈한 때는 그가 사망한 1976년이다. 이승만 집권 시절엔 외무부 장관과 UN 대표단장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고 이후 5.16 군사 정변을 일으킨 박정희를 지지하며 한국반공연맹 이사장까지 지냈으니, 훈장은 반공을 국시로 한 권력에? 굴종한 대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훈장 등급으로만 보면 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하면 누구나 대번에 떠올리는 신채호나 여운형, 이동녕, 홍범도, 이봉창보다 위대한 인물인 셈이다. 

이러니 대한민국 정부가 주는 훈장의 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치 숱한 친일파들이 버젓이 묻혀있는 국립 현충원이 대표적인 현충 시설로서의 의미가 훼손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김원봉은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선 독립운동가
 

교과서 236쪽. 임시정부 요인들 사진을 실으며 김구와 김원봉만 강조하고 있다. ⓒ 교육부

 
훈장만 없을 뿐 이미 김원봉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얼추 끝났다. 3.1운동 직후 그가 조직한 의열단의 이름을 따서 그의 고향 밀양에서는 생가터에 의열 기념관이 섰고, 그의 공적을 기리는 현양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기념관을 가로지르는 길 이름부터가 '독립운동의 거리'다. 

그를 아꼈던 고향의 선배들과 그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수많은 후배, 심지어 전장에서 죽은 그의 아내까지도 모두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받았다. 올해로 설립 100주년을 맞는 의열단은 해마다 대입 수능에서 출제될 만큼 대표적인 독립운동 단체로 기억된다. 오로지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훈장을 받았으니 독립운동에 있어서 그의 공적은 충분히 인정받은 셈이다.

최근 진보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종편에 나와 '김원봉의 서훈은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걸 듣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 좌우의 이념 갈등이 완화된 뒤라야 논의될 수 있다는 말에 어이가 없어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남과 북이 모두 꺼리는 김원봉의 서훈을 논의하며 이념 갈등을 극복하자는 것인데, 되레 이념 갈등이 끝나야 서훈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니 말이다. 

남과 북이 통일된 뒤 서훈하자는 건 '김일성에게도 훈장을 줄 셈이냐'는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의 비아냥거림과 별반 다르지 않다. 김원봉의 공적은 전혀 달라질 게 없는데 자꾸만 시기상조라고 회피하는 건 비겁한 행동이다. 만약 추후 서훈할 때가 오면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옳다'고 눙칠 텐가. 감히 부탁하건대 그깟 훈장 하나로 김원봉을 욕보이는 짓을 당장 멈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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