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오라잍124화

고독형, 대화형, 눈물형... '혼술'에도 유형이 있다

[혼술하는 중년] 자신을 위한 위로의 술 한잔...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

등록 2019.06.19 16:13수정 2019.06.1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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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혼술... 더이상 1인 가구 이야기가 아닙니다. 혼술하는 중년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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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운영하는 음악 카페를 찾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동행이 있지만, 혼술러들도 꽤 있다. ⓒ unsplash


(* 기사에 나오는 이름은 전부 가명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혼자 술을 마시는 행위를 '혼술'이라 하고, 그런 사람을 '혼술러'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내가 운영하는 음악 카페를 찾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동행이 있지만, 혼술러들도 꽤 있다. 그들을 유형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고독형. '고독맨'이라고 불리는 건철씨는 늘 혼자 이곳을 찾는다. 언제나처럼 창가 테이블에 앉는다. 와인을 주문한다. 지난 1년 동안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늘 혼자였다.

그는 프로그레시브록을 좋아한다. 핑크 플로이드의 긴 음악을 신청해 놓고 술잔을 기울인다. 그는 술을 주문할 때 외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인사를 건넬 때도 그저 목례로만 응대한다. 자신의 곁을 내주지 않는다. 동석을 제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에 관해서는 이름도 그 무엇도 알지 못한다. 건철씨는 철저히 혼술러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우리 카페는 사연과 함께 신청곡을 받는데, 그가 적은 음악 신청 메모지에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앞면의 사연란이 부족해서 뒷면까지 이어진다. 말하는 것으로 따지면 길고 긴 수다에 가깝다. 

DJ가 멘트를 통해 사연을 소개하고 음악을 들려주면 건철씨는 또 긴 사연을 적는다. 첫사랑 이야기, 어머니 이야기, 직장 이야기 등 소소하고 평범한 사연들이다. 그렇게 신청 메모지와 DJ의 멘트로 한참이나 대화가 오간다.

건철씨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 같다. 마음 속에 하고픈 얘기들이 있지만 누군가에게 말하는 일이 쑥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신청곡 사연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우리 가게를 애용하는지도 모르겠다.


카페를 나설 때는 언제나처럼 말없이 미소를 짓는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라는 말에도 그저 미소만으로 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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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요.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계속 사람들이랑 부딪히고 얽혀 살잖아요. 이런 시간이 없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이 정말 좋아요." ⓒ unsplash

 
두번째는 대화형. 재즈를 좋아하는 가영씨는 독한 술을 마신다. 그녀가 처음 혼자 왔을 때 당연히 일행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편견이었다. 

그녀는 유쾌하다. 초등학생 엄마의 삶, 그리고 직장인의 삶이 쉽지 않다고 고백하면서도 늘 밝게 웃는다.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부탁하거나 아이가 1박 2일로 어딘가 간 날에 혼술 하러 온다. 어렵게 얻은 시간을 지인들과 보내지 않고 왜 혼자 보내냐고 물은 적이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요.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계속 사람들이랑 부딪히고 얽혀 살잖아요. 이런 시간이 없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이 정말 좋아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나는 얼른 자리를 뜨려 했지만, 가영씨는 괜찮다며 대화를 청했다. 그러고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자신에 관한 얘기들을 쏟아냈다.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어려움, 같이 사는 친정엄마와의 이야기, 그 외의 사는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털어놨다.
    
한 시간 거리의 다른 도시에 사는 형주씨도 비슷하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오는 그는 훗날에 음악 카페를 차리고 싶어 하는 이십대 후반의 음악 마니아다.

1960~1970년대의 스탠더드 팝에서부터 소울, 블루스, 재즈, 모던록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신청한다. 단지 유명한 히트곡만이 아니라 음악 지식을 쌓는 과정에서 찾아낸 숨은 명곡들로 나를 놀라킨다.

음악 외의 다른 영역에 관해 대화하는 것도 좋아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양한 면에서 박학다식하면서도 합리적이다.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의 아픈 역사에 대해서도 이해력과 공감력이 높다. 언젠가 긴 시간을 대화하고 나서 미안한 마음에 물은 적이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내가 너무 뺏은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사장님이랑 얘기하는 게 정말 좋습니다." 


그가 혼술러인 것은 맞지만 철저히 혼자가 되기를 원하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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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오는 혼술러들의 모양새와 속내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혼술러지만 혼자이기만을 원치는 않았다. ⓒ unsplash

 
세번째는 눈물형. 대운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맥주 다섯 병을 시킨다. 그러고는 술이 도착하기 전에 다섯 곡의 음악을 신청한다. 자신의 신청곡 한 곡이 나오면 거기에 맞춰 맥주 한 병을 마신다. 다섯 곡의 신청곡을 다 듣고 나면 다시 맥주 다섯 병을 시킨다. 그러고는 또 다섯 곡의 음악을 신청한다. 

여섯 번째 신청곡이 나올 때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노래를 제법 부른다. 그러다가 어느 때쯤에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운다. 나는 그가 실컷 울 때까지 음악을 들려준다. 

카페를 떠날 때 배웅하는 나를 보며 그는 해맑게 웃는다. 

"오늘도 실컷 잘 울었습니다."
"잘하셨어요."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됐지만 나는 한 번도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가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울었는지, 어느 것 하나도 아는 것이 없다. 
        
세 유형 외에도 카페를 찾는 혼술러들은 더 있다. 직장 때문에 가족을 떠나 카페 근처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는 지웅씨, 부부싸움을 하는 날이면 집을 나와 카페로 찾아오는 진규씨, 남편과는 별도로 다른 날에 혼자 오는 진규씨의 아내 희경씨, 영업 실적을 올린 날이면 칭찬해 달라고 자랑하는 지희씨도 있다. 

카페에 오는 혼술러들의 모양새와 속내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혼술러지만 혼자이기만을 원치는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가족에게, 가까운 지인에게는 말하기 어려운 속내를 털어놓을 대상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이른 초저녁 또는 늦은 시각에 카페로 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상태이거나 적잖이 취한 경우가 많다. 손님이 한참 많을 시각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안주를 거의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오롯이 술맛을 느끼고 싶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술을 많이 마시기 위해서인지. 그래서 안주는 맞은편에 있는 내가 먹는다. 

그렇다고 결코 내게 술을 권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 대화를 해도 술을 권하는 일은 없다. 얘기 나눌 대상을 필요로 하기는 해도 술을 마시는 것만큼은 철저히 혼술러이기를 원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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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된 심신을 달래기 위해 혼자 술을 마시는 이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진심으로 바란다. 혼술을 통해 삶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기를, 살아가는 데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 unsplash

 
내가 만난 혼술러들은 다양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 살고 있다. 고독한 솔로이거나 누군가에게 속해 있거나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속절없는 외로움을 차마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어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귀속된 까닭에 힘이 들고 갈등이 커서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 나서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짐에 압도돼 어깨를 늘어뜨린 채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것 아닐까. 

이유나 상황이 어떠하든 혼술러들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창가에 있는 테이블에서 낯선 손님이 홀로 술을 마시고 있다.

오늘도 고된 심신을 달래기 위해 혼자 술을 마시는 이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진심으로 바란다. 혼술을 통해 삶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기를, 살아가는 데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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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도시에서 음악감상카페를 경영하는 DJ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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