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태어난 고려인 '문 스베틀라나'

[고려인의 길 ⑩]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만난 고려인

등록 2019.06.10 18:09수정 2019.06.1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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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김진석 사진작가가 지난 2월 26일 '고려인의 길' 취재에 나섰다. 우즈베키스탄을 시작으로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 카자흐스탄을 거쳐 고려인의 기차 이동 경로를 거꾸로 달려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예정이다. 이후 모스크바, 우크라이나, 조지아, 벨라루스를 거친 뒤 러시아 사할린과 캄차카의 고려인을 만날 예정이다. 김진석 작가의 '고려인의 길' 연재기사는 <오마이뉴스>에 단독으로 게재한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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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스베틀라나와 남편 엘만의 결혼 당시 사진.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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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태어난 고려인 문 스베틀라나. ⓒ 김진석


지난 2월 26일 시작한 고려인의 길을 취재 나선 지 100일이 지났다. 지금은 코카서스 3국 가운데 '불의 나라'로 불리우는 아제르바이잔에 와 있다. 수도는 '바쿠'로 카스피 해를 끼고 아름다운 해안가와 야경을 가진 도시다.

바쿠에서 지금까지 취재했던 고려인과는 조금 다른 고려인을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문 스베틀라나. 한국 이름은 문영순씨다. 올해 63세인 스베틀라나는 북한 평양 인근에서 태어났다. 

스베틀라나의 아버지 문태우씨는 일제 강점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 그 후 모스크바 대학에서 지질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려인 2세인 부인을 만났다. 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1950년대 중반 부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전공을 인정받아 광산에서 관리자로 일하게 된다. 슬하에는 스베틀라나를 비롯해 1남 3녀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생활이 순조롭지 않았다. 1965년 1남 3녀 가운데 2명을 먼저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로 보내고, 3년 후에 스베틀라나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을 러시아로 보냈다. 그리고 본인 자신은 북한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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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스베틀라나와 남편 엘만.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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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문 스베틀라나. ⓒ 김진석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베틀라나는 모스크바대학 식품학과를 입학한 뒤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남편은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레즈긴 민족 - 기원 전 2세기경에 수립된 캅카스 알바니아왕국을 구성했던 캅카스 민족 가운데 하나이며, 주로 러시아연방 다게스탄 공화국과 아제르바이잔에 거주한다 - 의 엘만이다. 남편과 함께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다닌 스베틀라나는 결혼한 뒤 1983년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이주했다.

바쿠로 이주한 스베틀라나와 엘만은 전공을 살려 소시지공장에 관리자로 들어간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고 아제르바이잔이 독립되면서 소시지 공장을 그만뒀다. 

"소련 시절에는 화학적인 첨가물 없이 천연재료만 했는데, 소련이 해체되고 나니 경쟁과 이익 때문에 소시지에 여러 가지의 화학 첨가물을 넣기 시작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둔 뒤 남편 엘만은 영국계 BP석유회사의 하청업체에 취직해 식당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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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언제나 남편 엘만과 함께 준비한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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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문 스베틀라나.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올떄는 눈시울이 불거진다. ⓒ 김진석

 
이야기를 한참 들으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부인과 자식을 러시아로 보낸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 러시아 이주 후 아버지에 대한 소식은 알고 있나.
"러시아에 있을 때 수없이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회신은 네다섯 번 정도였다. 어느 시점 이후로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98년에 3년 전인 1995년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건너건너 전해들었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밝고 웃음이 많았던 스베틀라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난 더이상 묻지 않았다. 아니 묻는다고 해도, 스베틀라나는 더이상 알고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스베틀라나와 엘만은 2명의 아들을 두었다. 둘다 러시아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아들 둘은 각각 3명의 자녀를 두었다. 스베틀라나는 손자만 6명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난 많은 곳을 거쳐 이곳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살고 있다. 가장 기억이 많이 남는 곳은 어린시절 살았던 평양 인근의 집이다. 어려서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행복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부모님이 함께 계셨고, 동생들과 산이며 들이며 뛰어놀던 생각이 난다."

12살까지의 일이었지만, 스베틀라나 추억의 방에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난 고려인이다. 지금까지 살았던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나에게 좋은 문화와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나의 정체성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우리'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 주변의 그 어떤 사람들도 '우리'를 욕하거나 손가락질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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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러시아로 휴가를 다녀왔다. 러시아에는 어머니가 친척들과 함께 살고 있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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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떠날 때까지 배웅해주고 있는 부부.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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