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라는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으리"

[디카시로 여는 세상 시즌3 - 고향에 사는 즐거움 28] 이운진 디카시 '나비의 꿈'

등록 2019.06.10 16:28수정 2019.06.1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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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진 ⓒ 이상옥


꽃밭의 바깥에서
나를 만난다

꽃이라는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으리
- 이운진 디카시 <나비의 꿈>


디카시는 SNS 환경에서 영상과 문자의 멀티 언어 글쓰기, 즉 보고 찍고 쓰는 글쓰기가 일상화된 가운데 그것을 예술적 글쓰기로 끌어올린 것인 바, 관건은 얼마나 일상을 예술의 영역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느냐에 있다. 디카시가 순간 포착, 순간 언술, 순간 소통을 지향할지라도 그것이 시라는 예술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디카시는 영상과 문자의 이질적인 기호가 융복합하여 이뤄지는 멀티 언어 예술이기 때문에 문자시의 텍스트성과는 다르다. 문자만의 완성된 텍스트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영상과의 조합으로 제3의 텍스트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이운진의 디카시 <나비의 꿈>은 제5회 디카시작품상 수상작이다. 오는 6월 22일(토) 오후 3시 제12회 경남고성 국제 디카시페스티벌 개막식에서 시상을 한다. 디카시작품상은 2015년부터 매년 그해 최고의 디카시작품 한 편을 선정하여 상금 300만 원과 상패를 수여하는 디카시로서는 최고 영예의 상이다.

제1회는 공광규 시인의 <몸빼바지 무늬>, 제2회는 김왕노 시인의 <길의 꿈>, 제3회는 송찬호 시인의 <비상>, 제4회는 리호 시인의 <투영>이 선정되었고, 올해 수상자로 이운진 시인의 <나비의 꿈이> 선정되었다.

이운진의 디카시 <나비의 꿈>은 꽃밭이 아닌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은 나비 한 마리와 짧은 3행의 언술로써 먼저 영상기호가 강렬한 임펙트를 제시한다. 이 영상기호는 대뜸 조향 시인의 시 <바다의 층계>에 나오는 "나비는/ 기중기(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라는 시구를 연상케 한다.

조향은 "서정적인 사물들과 기계 문명적인 사물, 그리고 서구적인 사물들의 병렬을 통하여 1950년대의 황폐화된 정신세계와 분열된 자아, 나아가서는 자연과 문명의 갈등 등을 형이상학적으로 형상화하였다"라는 평가를 받는 전위적인 시인이다.

조향의 <바다의 층계>의 나비가 꽃밭이 아닌, 기중기의 허리에 붙어서 새롭게 세계를 인식한다면 이운진의 나비는 꽃밭이 아닌 콘크리트 바닥에 붙어서 자아의 실존적 의미를 궁구한다. 꽃밭이 아닌, 콘크리트나 기중기의 낯선 환경과 나비의 병치는 조향의 말을 빌리면 '데뻬이즈망' 기법이다. 데뻬이즈망은 관계없어 보이는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장자의 사유를 빌려, 꽃은 나비의 감옥으로 언표

이운진의 디카시 <나비의 꿈>은 문자 언술을 통해 데뻬이즈망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며 한 걸음 더 진전시킨다. 장자의 '호접몽'이 그것이다. 이운진은 장자의 사유를 빌려, 꽃은 바로 나비의 감옥이라고 언표함으로써 자아와 세계의 균열상과 존재의 각성을 심층적으로 투영한다.

이운진의 디카시 <나비의 꿈>은 순간 포착한 영상과 짧은 문자기호가 어떻게 영상과 문자의 지평을 넘어 광활한 제3의 텍스트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한 덩어리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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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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