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잡으려다 사람까지 잡은 모기약

[이 물건, 언제 생겼지?] 모기약

등록 2019.06.15 19:21수정 2019.06.1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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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생 전쟁둥이인 이입분(70)씨는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부터 프랑스 산 '에비앙'생수까지 모두 맛본 세대다. 그가 온몸으로 통과한 현대생활사를 물건을 통해 되짚어보려 한다. 이입분씨는 내 엄마다. - 기자말


"에에엥~ 에엥~."

모깃소리에 자다 깼다. '웬 모기지?' 하고 생각하니 벌써 6월이다. 밤에 모기가 나타나면 웬만해선 잡고 자려고 한다. 나름 노하우가 있다. 이불을 목까지 뒤덮고서 고개만 내놓은 채 모기가 오길 기다린다. 모기가 얼굴 주변으로 바짝 가까이 왔다 싶으면 재빠르게 손으로 냅다 후려친다. 두세 번 하다 보면 정말 모기가 잡힌다. 다만 손에 맞은 얼굴이나 머리가 좀 아픈 게 부작용이다.

모기장을 꺼내야 할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텐트처럼 생긴 모기장을 사용한 건 3년도 안 되었다. 밤마다 잠을 설치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산 것이었는데, 처음 사용한 날부터 잠을 푹 잤다. 모기장이 꿀잠 필수품이었다니, 그동안 나만 모르고 모기에게 당하고 산 것 같아 약이 올랐다.
 

모기향은 하얀 연기를 한 줄로 피우고 회색 재를 떨궜다. ⓒ Pixabay

 
모기장이 없었던 어린 시절엔 모기를 쫓기 위해 갖가지 약을 썼다. 엄마는 여름날 저녁이면 저녁상을 물린 뒤 온 방에 모기약을 뿌렸다. 식구들은 마당이나 대문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방 안의 모기가 약에 취해 죽기를 기다렸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엄마는 먼저 집으로 들어가 창문을 모두 열고 환기를 시켰다. 충분히 약 냄새가 빠졌을 때 우리는 방에 들어갔다. 그러고도 엄마는 잠을 자기 전 문 앞에 불 붙인 모기향 접시를 놓아 두었다. 모기향은 하얀 연기를 한 줄로 피우고 회색 재를 떨궜다. 날마다 반복하는 일상이었다.

모기약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엄마가 어렸을 때도 모기약이 있었을까.


"그땐 약이 없었지. 모기도 얼마나 많았는지 말도 못 해. 다 시골이니까 풀이 많았잖아. 그런 데서 모기가 사는 거지. 모기가 연기를 싫어해. 방에 화로를 갖다 놓고 아래에 마른 나무를 좀 넣고 불을 붙이고 그 위에 풀을 베서 잔뜩 올려놔. 그럼 풀 때문에 연기가 엄청 많이 나거든. 방문을 닫고 마당에서 기다리는 거야. 방 안에 연기가 자욱해질 때까지. 그리고 또 마당에다 모깃불을 놔. 마른 나무에 불 붙인 다음에 풀을 올리는 거지. 화로나 모깃불이나 방법은 똑같아. 그리고 마루에 앉아서 부채 부치면서 해 질 때까지 기다리지. 한 시간쯤 방에 화로를 놔뒀다가 문을 확 열면 모기가 다 도망가. 그럴 때 빨리 들어가야 해. 방문은 미닫이문인데, 여름엔 창호지를 떼고 모기장을 발랐어. 실로 만든 모기장인데 시장에서 다 팔았어. 둘둘 말려 있는 걸 잘라서 풀을 쒀서 문에 붙이는 거지. 방에서 보면 모기장에 모기가 새카맣게 붙어 있어. 밤에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부채로 막 바람을 내서 모기를 문에서 떨어트려 놔야 해.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방 안팎으로 부채가 항상 여러 개 있었어."

어쩐지 모기를 쫓는 방법으론 그리 탐탁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 모기도 많이 물렸지. 근데 텐트처럼 생긴 모기장을 잠깐 사용하기도 했어. 뼈대는 없고 모기장 천 네 귀퉁이에 끈을 달아서 벽 못에다 붙잡아 매어 놓는 식이었어. 근데 많이는 안 썼어. 여럿이 좁은 방에서 자다 보면 모기장을 치면 불편하거든. 특히 가장자리에서 자는 사람은 모기장에 살이 닿게 되잖아. 그러면 그 부분에 모기가 달려들어서 다 뜯어 먹는 거야. 등잔불을 쓰던 때니까 잘못하면 모기장에 불이 붙기도 하고. 모기장 때문에 사람 죽었단 얘기도 많고 그랬어. 이래저래 불편하고 불안하니까 나중엔 안 쓰게 된 거지."

전쟁과 함께 들어온 모기장과 살충제

방 안에 치는 모기장은 6.25 전쟁 때 미군들이 들여온 것이다. 1960년대 중순부터 1970년대 초까지 모기장을 사용하는 집이 많았다.
 
# 2~3년 전에는 면으로 된 모기장이 대부분으로 올이 조밀하여 바람의 소통이 제대로 안 된 것이 시중에 많이 나돌았으나 최근 가느다란 나일론사로 만든 모기장이 면제품 대신으로 대체되어 시중에서 판매된다. (중략) 바람이나 잠결에 모기장이 옆으로 올라갈 경우가 있으므로 방바닥에서 40cm 높이에 끈을 달아 옆으로 벌려 날파리가 못 들어가게 하며 내부 스페이스를 좀 더 넓힐 수 있는 2중 효과를 가져온다. 끈을 옆으로 새로 부착시키려면 모기장천의 안팎으로 천을 받쳐 나일론의 올이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 1971.6.26. 매일경제
 
그러나 엄마 말처럼 이 모기장은 오랫동안 종종 안타까운 사고를 일으켰다. 성주군에선 등불이 넘어지면서 모기장에 불이 붙어 어린이 한 명이 숨지고 세 명이 중화상을 입었고(1958.6.30. 경향신문) 김해에선 역시 호롱불로 모기장이 타 두 자녀가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1975.7.28. 경향신문).

일본의 <대일본 제충국 주식회사>에서 생산한 '계관문향'이라는 모기향이 1930년대에 잠시 국내에 유통되기도 했다. 제충국은 국화과의 풀로 꽃에 피레트린이라는 물질이 들어있다. 피레트린은 냉혈동물인 곤충의 운동신경을 마비시키지만, 온혈동물에는 독성이 없어 가정용 살충제로 적당하다. 당시 일본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이 제충국 종묘를 수입해 살충성분을 추출해내는 데 성공한 후 재배를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제충국 생산, 수출국가가 되었다.
 
모기약을 어떻게 했으면 가장 오래 효과 있게 쓸 수 있느냐는 것을 누가 혹 연구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중략) 누구든지 생각하기를 모깃불을 오래 피워놓으면 모기가 잘 죽는 줄 알지마는 그런 것이 아니오. 모기는 비교적 단시간에 어지러트리는 것이니까 마루나 방바닥에 똑똑 떨어지거든 그만 꺼도 좋으니 이것이 귀찮거든 미리 모기약 끼우는 데다가 얼마 가량 할 것을 내놓고 끼워놓으면 낀 데까지 타고서 저절로 꺼지니까 편리합니다. 어지러트려 떨어진 모기는 즉석에서 없애버리지 않으면 다시 소생하는 것이니까 얼른 쓸어 치워야 합니다. - 1936.8.50 동아일보
 
6.25 전쟁을 겪으며, 전쟁터에서 모기퇴치용으로 사용하던 DDT라는 살충제가 유통돼 각 가정에서 살충과 소독용, 농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맹독성인 탓에 DDT에 중독돼 사망하는 일이 잦아 '죽음의 특효약'이라 불리다가 1972년 전면 판매금지 되었다.

살충제의 대명사 '에프킬라' 등장

국내에서 판매한 최초의 모기약은 1963년 <삼성제약>이 일본에서 수입한 '에프킬라'였다. 액체를 분무하는 형식으로 "빈대, 벼룩, 파리, 모기가 순간에 전멸"한다는 광고로 주목을 받았으나 값이 비싸 부잣집에서나 사용할 정도였다(1995.6.18. 한겨레).

1960년대 후반 <삼성제약>은 <에프킬라>라는 이름으로 현재와 같은 에어졸 방식의 뿌리는 액체 모기약과 불을 붙여 연기를 내는 모기향을 출시했다. 모기향은 제천국을 주원료로 만든 것으로 액체 모기약에 비해 값이 저렴하고 사용이 편리했다.
 
사용상에 있어 장점으로는 첫째 가격 면에서 액체 모기약에 비해 경제적이라는 점인데 시트의 연소시간이 5~7시간 정도여서 한 갑이면 30여 시간은 능히 피울 수 있고 한번 살포하면 문을 닫아야 하는 액체 약과는 달리 야외에서도 마음 놓고 쓸 수 있어 캠핑, 낚시질 등에도 편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액체 모기약보다 결점으로 되어 있는 것은 화재의 위험성이 있고 타고 나면 재가 남아 불결해지기 쉽다는 점이다. - 1968.7.9. 매일경제
 
여름이면 거의 모든 집에서 모기와 파리로 골치를 앓았다. 특히 모기로 전염되는 뇌염에 감염돼 사망하는 어린이가 해마다 전국에서 발생했다. 1966년 서울시에서 발생한 뇌염 환자 수는 150명, 이 중 사망자는 57명이었다. 뇌염은 특효약도, 치료법도 없었고 후유증도 심해 뇌 기능이 저하되거나 언어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는 6월부터 9월까지 뇌염 방역 대책 기간으로 정하고 연막차를 통해 곳곳에 방역작업을 했다. 각 집안에서는 특히 어린 아이들이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모기약은 나오자마자 인기를 끌었다. 특히 모기향은 모깃불과 비슷한 형태여서 대중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졌다.

사건 사고 많은 모기약
 

모기장이 없었던 어린 시절엔 모기를 쫓기 위해 갖가지 약을 썼다. ⓒ Pixabay

 
모기약이 각 가정의 필수품이 되고 보니 사건 사고도 많았다. 1978년엔 살충제가 뿌려진 과자를 사먹은 어린이 다섯 명이 심한 복통을 일으켜 네 명이 숨지고 한 명이 입원하는 사건이 일어났고(1978.7.21.경향신문) 1980년엔 강원도에서 어린 세 남매가 살충제를 음료수인 줄 잘못 알고 마신 뒤 두 시간 만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1980.1.26.경향신문).

특히 폭발력이 강한 프로판, 부탄가스를 충전제로 사용한 분무식 살충제는 여기저기서 폭발과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송인기씨 (인천시 남구 주안4동)는 지난 7월 새벽 4시경 송씨의 부인이 재래식 화장실에 파리와 모기가 많아 S제약의 에프킬라를 분사한 후 2시간 반쯤 지나 화장실에서 담배에 불을 붙인 뒤 불붙은 성냥을 변기에 넣자마자 불길이 치솟아 양쪽 허벅지와 팔 얼굴 등에 3도 이상의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중략) 또 박정은 부인(서울 강남구)은 지난 7월 어느날 저녁 준비를 하려고 가스레인지로 음식을 끓이던 중 벽 주위로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을 보고 T화학의 모노탄에프를 뿌렸는데 순간 살충제가 가스불에 인화, 가스레인지 주변 벽에 불이 옮겨붙어 큰불이 날 뻔했다고 소비자연맹에 고발했다. - 1985.9.2.동아일보
 
모기향의 화재 위험과 재를 치워야 하는 불편함, 액체 모기약의 냄새와 폭발 위험에 소비자들이 부담을 느끼자 업체는 이에 빠르게 대응했다. 전자모기향을 출시한 것이다. 전자모기향은 모기약을 고체로 만들어 훈증하는 방식으로, 약효가 다하면 파랗던 고체약이 하얗게 변해 교체 시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편리했다. 1979년 출시 직후엔 다른 제품에 비해 값이 비싸고 전기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1980년대 중반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외환위기로 '에프킬라' '홈키파' 외국회사에 넘겨

1990년대 들어 대중은 모기약의 안전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1992년 소비자보호원에서는 "(가정용살충제) 제조업체들이 광고 등을 통해 안전하다는 점을 너무 부각시켜 소비자가 기본적인 주의마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잘못 유도하고 있다"며 "인체독성 등을 고려해 만든 성분이기는 하지만 모기의 신경계에 작용하듯 인체에도 다소 자극을 준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1992.6.16.동아일보)

이에 삼성물산은 1994년 "국내 최초로 인체에 무해한 천연살충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해 내년 5월부터 생산에 나설 계획"임을 발표했다. 이 제품은 야생국화 추출물을 사용했고 알레르기 유발 성분과 색소를 제거한 것이 특징이었다. 살충제 시장은 여전히 굳건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모기약 업체들도 뒤흔들었다. 살충제의 대명사로 불리던 에프킬라로 독보적인 국내 1위 판매량을 지키던 삼성제약, 그 뒤를 뒤쫓던 '홈키파'의 동화약품이 자금난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1998년 삼성제약은 에프킬라 상표권과 성남공장을 미국 존슨에스시 사의 한국 지사인 한국존슨에 매각했고, 동화약품도 홈키파 상표권과 안산공장 등 살충제 사업 부문 전체 판권을 미국 회사에 팔았다.

어렸을 때 여름이 오기 전 낡은 모기장을 창문마다 새로 다는 일은 부모님의 연중행사였다. 엄마나 아빠가 나무 창틀에 파란 모기장을 못이나 압정으로 고정할 때, 옆에서 시중을 드는 건 내 몫이었다. 지금은 창문마다 금속으로 된 방충망이 달려있으니 딱히 신경 쓸 일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번도 모기약을 사본 일이 없다.

모기장에 새카맣게 달라붙었다던 모기떼는 야외로 놀러 가서야 겨우 만날 수 있다. 편해진 건 분명하다. 그런데 가끔 가족들과 저녁 어스름 속에 한적하게 동네를 거닐던 장면이 떠오른다. 집안의 모기가 죽기를 기다리는 동안 동네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부모님 곁에서 하루살이 떼를 손으로 잡으려 펄쩍펄쩍 뛰던 내 모습도 생각난다. 나는 그 시절의 무엇을 그리워하는 걸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인천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모기약 #물건이야기 #모기향 #에프킬라 #홈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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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글쓰기 강의를 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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