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 아는 일" 채팅앱 그 아저씨는 범죄자야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그루밍 성폭력의 특징과 대처 방법

등록 2019.06.19 16:12수정 2019.06.2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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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미디어나 생활 속에서 궁금한 성이야기를 성교육 강사 심에스더씨에게 묻고 답하는 연재입니다.[편집자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연재도 거의 막바지다. 2018년 4월에 시작했으니, 1년을 꼬박 넘겼다. 고정연재물은 아니었지만, 한 달에 2회는 쓰려고 계획했다. 그런데 사람 일이 어디 계획대로 되야 말이지.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도 말하지 않았나.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라고.

심쌤과 내 상황에 딱 맞는 시의적절한 표현이었다. 계획에도 없는 일이 생겨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연재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원고를 하나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3월 개점휴업이 끝난 뒤로는 매주 원고 마감에 시달렸다. '도대체 기사가 언제 나오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는데 내 마음만 바빴다.


원고 마감을 독촉한 것은 주로 나였고, 독촉과 상관없이 '무계획'으로 일관한 건 주로 심쌤이었다. 역시 고수다. 심쌤을 이해한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질문하는 사람은 그저 앞뒤 안 가리고 일단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답하는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이런 질문은 좀 하지 말라'고 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거다. 쉽지만은 않았을 시간, 어쩌면 심쌤에겐 기사 하나 하나가 도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고? 쉽고 재밌으면서도 의미있는 성교육이 되어야 하니까!

하지만 더이상 지체할 수도 없었다. 출판사와 계약서에 도장을 '꽝꽝' 하고 찍었다(아니 사인이었나?). 우리는 무조건 원고 마감을 향해 달려야 했다. 나의 일방적인 협박과 회유로 점철된 원고는 4월부터 주간 단위로 차곡차곡 쌓여 갔다. 심쌤은 지금도 나만 보면 "나 혼자라면 절대 못했어!"라고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다. 하하하.

여튼 내가 정리한 원고 최종본을 확인차 보내면 심쌤은 거의 대부분은 무조건 좋다고 했다. 그랬는데, 19회 '그루밍 성범죄' 1편 원고를 보냈을 때는 달랐다. 심쌤이 말했다.


"제가 원고에 정우성이 영화 <증인>으로 제5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받을 때 TV 앞에서 입 벌리고 수상 소감을 들었다는 거 썼는데 왜 뺐어요?"
"그 문장만 있고 발언 내용이 없어서 뺐어요."
"정우성이 엄청 중요한 말을 했는데...."
"뭐라고 했는데요?"
"'선입견은 편견을 만들고 편견은 차별을 만든다'라고."


이 말을 듣자마자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내가 납작 엎드렸다. 심쌤은 흥분해서 말했다. 카톡 메시지였지만 음성 지원이 되는 듯했다(아, 근데 전혀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으니 우리 관계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 받으러 정우성이 올라오자마자 이렇게 말했잖아요 '선입견은 편견을 만들고 편견은 차별을 만든다. 인간의 바른 자세를 고민하며 영화를 만드는 감독님과 배우들, 그리고 지난 여름 너무 더운 햇살 아래 고생했던 스태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 영화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의 그림자에 밝은 햇살이 비춰서 앞으로 영화라는 거울이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라고요. 너무 멋지지 않나요? 저희 기사 취지와도 통하는 이야기잖아요. 그러면서 이런 말도 했어요. '향기야, 넌 내 인생 최고의 상대 파트너였어!' 아, 제 이름을 심향기로 바꾸고 싶네요."

심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휴지통을 뒤져 버린 문장을 살려냈다. 내가 이러는 이유는 지난회 제목에서도 밝혔지만 '개념배우 정우성님을 오해해서 미안해서'다. 이렇게라도 굳이 내 마음 속 빚을 갚고 싶었다. 물론 '대인배' 정우성님은 1도 신경 쓰지 않으셨겠지만.  

- 심쌤, 잘 지내셨어요?
"물론이죠(라고 쓰고 사실 주말 내내 독박육아로 힘들었다고요, 독박육아에서 벗어나면 기자님 원고 독촉에 시달려서 힘들었다고요)! 하지만 기자님이 정우성 발언을 살려주셔서 기분이 너무 좋아요!"

- 죄송해요. 원고가 너무 길어져서 줄이려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한 가지, 정우성의 말이 '저희 기사 취지와도 통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그게 정확히 전달이 안 되었나요? 우리가 지금 쓰는 이 기사도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성의 즐거움, 아름다움, 평범함을 비추는 거울=우리가 쓰는 글', 제 말이 너무 거창한가요?"

- 큭큭. 그런 깊은 뜻이. 뭔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심쌤이 이렇게 콕 짚어 설명해주지 않으면 몰랐을 것 같아요. ^^; 저는 지난 시간 질문한 내용 중에 이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어떤 거죠?"

- '전체적으로 바라보되 세세한 기준'이요. 그루밍 성범죄인가 헷갈릴 때 '폐쇄적이지 않은, 주변에 오픈된 관계인가' 따져보는 것도 중요한 팁이었어요.
"잘 기억해주셔서 고마워요. 이전 시간에 그루밍 성범죄를 알아채는 방법에 대해 잠깐 말했는데, 이번 시간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게요."
 

온라인/오프라인 어디든지 간에 성적인 행동을 요구한다면 전조고 뭐고 그루밍 성범죄로 판단하고 무조건 관계를 끊어야 한다. ⓒ Pixabay

 
- 좋아요!
"청소년들의 경우 온라인상에서 그루밍 성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커요. 특히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범죄자가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채팅에서 만난 상대가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해주면서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는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또 앞에서도 말했듯이 비밀을 핑계로 둘의 관계를 주위 사람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전조로 볼 수 있어요. 특히 신체의 어떤 부분이라도 사진을 요구하거나 온라인/오프라인 어디든지 간에 성적인 행동을 요구한다면 전조고 뭐고 그루밍 성범죄로 판단하고 무조건 관계를 끊어야 해요.

작정하고 다가오는 범죄자를 말끔하게 쳐내기란 쉽지 않지만 모르고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조가 느껴졌을 때 관계를 끊어낼 수 있다면 더 좋겠어요. 도저히 구분이 어렵거나 끊으려 해도 상대가 놔주지 않거나 헤어나올 수 없게끔 계속해서 금전적인 보상을 하려고 한다면, 가까운 친구부터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알리면 좋겠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미성년)피해자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까 봐 혹은 심각한지 몰라서 신고를 안 하거나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이에 대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리아 활동가는 피해자 주변에 있는 친구들 그리고 어른들이 안전한 존재, 언제든지 믿고 말할 수 있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고 말했어요. 또한 누구든 어떤 이유로든 그루밍 성범죄의 피해를 겪게 되는 경우, 모든 것은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의 잘못이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어요.

범죄를 미리 예방하고 전조를 알아채는 일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후에 피해자가 안전을 보장 받으며 편견을 두려워 하지 않고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일도 참 중요하다는 의미예요."

- 이쯤에서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그런 '나쁜 어른들'은 어떻게 처벌받고 있나요? 
"외국의 경우 영국은 '그루밍법'을 만들어 채팅 앱이나 온라인 등에서 만 16살 이하 청소년에게 성인이 성적으로 접근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최소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고 해요. 캐나다는 형법상 16살 미만 아동·청소년이 설령 자발적으로 동의를 했다고 해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요. 또한 '성착취' 피해 학생들이 자신도 처벌을 받거나 고소당할까 봐 두려워 하지 않도록 성착취를 한 상대 어른만 처벌하고 있어요. 참고로 캐나다는 아동·청소년의 경우 우리와 달리 '성매매'란 말을 쓰지 않아요."

- 왜 '성착취'라는 말을 쓰는 거죠? 
"
좋은 질문이에요. 말에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과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담겨 있기 마련인데요. '성착취'라는 말을 사용하는 캐나다의 경우,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이 성인과 성적 관계를 가졌다고 해도 그 책임은 우선적으로 성인에게 있음을 강하게 어필한다고 볼 수 있어요. 어른으로서 아동· 청소년을 보호하고, 성숙한 판단과 행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지요.

'매매'라는 말은 '사고 판다'는 뜻이잖아요? 아동·청소년이 대가를 받고 성인과 성관계를 가졌을지라도 어른과 같은 판단으로 자신의 성을 팔았다고 보지 않는 거죠. 아이들의 '동의'를 '동의'로 보지 않는 거예요. 설령 아동·청소년이 성을 파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어른이 옳다구나 하고 성을 사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때문에 '아동·청소년과 성인에게 똑같은 책임이 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성매매'라는 말보다 성인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 '성착취'라는 말을 쓰는 거예요. 성적인 문제에서 성인에 비해 아동·청소년이 더 보호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13세 이상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는 성적인 행동에 대한 자기 의지를 인정하고 있어요. 즉, 13세 이상의 아동·청소년이 성인을 만나 성관계를 가질 경우 저항하지 않거나 동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판단되면 그 '동의'를 '진짜동의'로 봐요. 그리고 청소년과 성관계를 가진 성인을 처벌하지 않아요.

또한 13세 이상의 미성년청소년이 금전적인 대가를 받고 성관계를 가진 경우, 자기 의지에 따른 결정이라고 판단해서 돈을 주고 성관계를 가진 성인과 동일하게 죄라고 인정하죠. 그래서 '성매매'라는 말을 쓰고요."

- 아, 그런 속사정이 있었구나.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13세 이상의 청소년인 경우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고 판단이 되면 '성착취' 어른과 동일한 죄인으로 보고 처벌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피해 학생'일지라도 돈을 받았거나,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될 경우 신고를 하기 어려워요. 오히려 '너도 걸리면 벌을 받게 된다'는 협박에 시달리며 '성착취'의 악순환에 시달리기 쉽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투표 등 '권리'에 있어서는 19세 이상부터 가능한데 상대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성착취' 문제에 있어서는 13세 이상부터는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많이들 비교하는 게 담배예요.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이 담배를 살 경우 담배를 구매한 아이들뿐만 아니라 판매한 어른들을 처벌하잖아요.

그런데 '성착취'를 당했을 경우에는 어른과 동일한 선에 놓고 판단을 해요. 이런 상황에서 아동·청소년을 성착취 범죄로부터 제대로 지킬 수 있으려면 아동·청소년을 보호하는 동시에 성적자기결정권 역시 존중해 줄 실질적이고 섬세한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말이 좀 헷갈리는데요. '자발적 성매매의 경우, 성착취 어른과 동일한 죄인으로 보고 처벌을 하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이때 피해자도 성적자기결정권을 갖고 행동한 거라고 볼 수 있지 않나요? 실제로 이런 관점에서 가해자의 형량이 낮아지고, 피해자는 공격하는 판례를 뉴스에서 많이 본 것 같아요.
"중요한 지적이에요. 꼭 필요한 질문이고요. 아동·청소년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건 먼저 아이들이 성적인 존재인 동시에 성적인 욕구를 가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인정한다는 의미일 거예요. 그 인정이 처음이자 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시작이구요. 이 말은, 아이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책임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이 권리를 제대로 발휘하고 책임까지도 질 수 있는 '성적자기결정능력'을 키워 줄 의무가 저희에게, 이 사회에 있다는 뜻이에요."

- '성적자기결정능력'을 키워 줄 의무요?
"네, 아이들이 자기 몸에 대해서, 건강한 성적 가치관에 대해서, 안전하고 인격적인 성관계 등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이에요. 물론 "애들이 무슨 성이니 섹스니 욕구니 이런 망측한 이야기를 해! 떽!!" 하던 시대에 비해 '성적자기결정권'을 말 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권리에 알맞은 '능력'을 키워 줄 제도와 교육이 아직 부족한 것도 사실이에요. '성적자기결정능력'에 필요한 좋은 교육과 안전한 보호장치 없이 '성적자기결정권'만 이야기한다면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용당하는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부작용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동·청소년이 될 거구요. 권리를 인정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능력'을 키워줄 의무가 우리 어른들에게 먼저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13세 이상의 청소년인 경우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고 판단이 되면 '성착취' 어른과 동일한 죄인으로 보고 처벌을 하고 있다. ⓒ Pixabay

 
- 우리에게는 영국이나 캐나다처럼 아이들을 보호할 법안이 없나요?
"아아, 드디어 올 게 왔군요. 복잡한 법 이야기를 좀 할게요. 머리가 좀 아프지만 알아두면 꼭 필요한 상식이 되는 부분이니까 이번 기회에 꼭 알고 넘어가도록 해요.  먼저 우리나라에는 아동·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명 아청법이 있어요. 13세 이상부터 만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거나 성폭력 행위 등을 하는 사람을 강력하게 처벌하고자 만든 법이에요.

직접 성을 사지 않아도 아이들의 성매매를 연결해주거나 아동·청소년이 나오는 음란물을 만들고, 유통하는 사람 등도 처벌하고 있어요. 범죄자의 신상도 공개하고 있고요. 하지만 '성착취' 범죄의 경우 아이들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호처분'을 내리고 있어요. 또 아이들이 저항하지 않고 '동의'했다는 판단이 인정되면 쌍방의 합의로 받아들이고 상대 성인에게 죄를 묻지 않는 경우가 매우 많아요.

또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있어요, 이 법 안에는 13세 미만 아동에게 저지르는 성행위나 성범죄는 어떤 경우에도, 아이의 동의 여부와 전혀 상관없이, 최대 10년까지 무조건 처벌을 받는 법이 들어가 있어요.

물론 이 역시 아동의 저항이 없었거나 '동의'가 있다고 판단되면 가해자의 형량이 확 줄어드는 경우가 많지만요. 어쨌든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그 처벌을 더 무겁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는 있지요. 그런데 사전에 방지하는 법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어요.

위에서도 소개했듯 구체적인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에게 제재를 가하는 외국의 법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법에는 아직 그루밍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상황이라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법적인 생각의 변화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좀 반가운 소식이 있어요. 2019년 1월 15일에 기존의 아동·청소년의 성범죄에 관한 법률에 변화가 생겼어요!"

- 뭐죠?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먼저 첫 번째!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 7조 5항 : '위계 또는 위력'으로 13세 미만의 사람을 간음하거나 추행한 경우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13세 미만의 아동 청소년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렀다면, 공소시효 없이, 처음 사건이 일어났을 때로부터 시간이 얼마가 지났든 걸리면 언제든 처벌할 수 있다는 법이에요.

원래는 공소시효(법이 정한 기간 안에 범죄 사실이 밝혀져야 처벌 대상이 되는 것, 시간이 지나면 처벌할 수 없는 유효기간 같은 거예요)가 있었지만 2010년에 한 번 법이 바뀌어서 공소시효를 없앴어요. 그런데 그때 '위계나 위력'을 사용한 성범죄의 경우에는 공소시효를 남겨두었어요.

즉, 나보다 높은 자리에 있어서 내가 쉽게 저항할 수 없는 사람, 나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크게 미치는 사람이(선생님이나 목사님 등) 폭력이나 협박 없이도 13세 미만 아동에게 성폭력 등을 한 경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처벌을 할 수 없었지만, '위계나 위력'을 사용한 성범죄도 걸리면 언제든 처벌할 수 있다고 법을 바꾼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범죄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걸 더 크게 받아들이고 기존의 법을 보완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럼 이번엔 두 번째!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 8조 2(13세 이상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에 대한 간음 등)
➀19세 이상의 사람이 13세 이상 16세 미만인 아동·청소년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해당 아동·청소년을 간음하거나 해당 아동·청소년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간음하게 하는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➁19세 이상의 사람이 13세 이상 16세 미만인 아동·청소년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해당 아동·청소년을 추행한 경우 또는 해당 아동·청소년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추행하게 하는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쉽게 말해 궁박한(정신적, 심리적, 경제적 등을 모두 포함하여 어려운 상황) 상황에 처한 13세 이상에서 16세 미만인 아동·청소년을 이용해서 성폭력을 저지르거나 성폭력을 저지르게 하는 경우에도 처벌을 하겠다는 뜻이에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원래 우리 법은 13세 이상일 경우에 자기가 '동의'해서 성관계를 했다고 판단이 되면 범죄자를 처벌하기가 어려운 한계가 있어요. 그런데 이번 법의 개정을 통해 아동·청소년의 상태를 악용해서 신뢰를 쌓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동의'한 것처럼 보여도 상대 어른을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이 생긴 거예요.

물론 이 개정이 모든 그루밍 성범죄를 다 해결해 줄 수 없고 여전히 여러 판단의 과정을 통해 법을 적용해 가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 있다고 해요. 변화된 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피해 아동·청소년의 관점에서, 피해자가 처했던 두려운 상황, '동의'나 '합의' 뒤에 보이지 않는 힘, 피해 아동·청소년과 가해어른 사이의 권력 관계 등을 자세하고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 혹시라도 주변에서 그루밍 성범죄를 당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누구든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고, 성범죄에 대해 편견없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일만큼 실질적인 대처도 중요해요. 하지만 그루밍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심리적인 의존을 하게 만들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자칫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한 듯 보여 가해자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해요. 가해자가 미성년 피해자와 연인 사이를 주장하며 무죄를 받는 일이 드물지 않은 이유예요.

명확한 증거가 부족한 경우 그루밍 성범죄는 피해자의 명확하고 일관된 진술이 재판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피해 당사자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해요. 또 증거를 모으는 일도 중요한데 온라인에서 그루밍 범죄가 이루어진 경우 채팅 내용이 지워졌다 해도 당시 사용했던 기기를 가지고 있으면 최대한 복원이 가능하다고 해요. 피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최대한의 증거를 살리고 모아서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을 피해자 혼자 감당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관련 단체나 기관을 찾아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의 편견 없는 지지와 지속적인 격려가 가장 큰 힘이 되어 줄 거예요! 그 길에 심쌤도 늘 함께 하겠습니다!"
#심에스더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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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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