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때도 왔던 북한 조문단, 이번에도 올까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경색 국면에도 조의 표하고 특사 역할... 이희호 여사 사회장 참석?

등록 2019.06.12 10:59수정 2019.06.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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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희호 여사의 빈소 제단에 무궁화대훈장이 놓여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10일 별세함에 따라, 북한이 조문단을 파견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1일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기자들에게 "오늘 오전에 장례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부고를 (북한에) 전달했다"고 말한 뒤, 북한의 조문단 파견을 긍정적으로 기대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아직은 기다리고 있다"고 대답했다.

외신에서는 북한이 조문단을 파견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12일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을 통해 "북한이 이희호 여사 조문을 위해 국무위 부위원장급 인사를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된 발표가 나온 건 없다.

국가 지도자나 유력 인물에 대한 조문 문제는 과거에는 훨씬 더 민감한 사안이었다. 왕실들이 역사를 주도하던 왕조시대에는 특히 더 그랬다. 세계 곳곳을 지배하는 왕실들은 '동업자'인 이웃나라 왕실이 겪는 상사(喪事)에 슬픔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국제적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1882년 임오군란이나 1894년 동학혁명 사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웃나라에서 민중반란이 일어나면 주변 왕조들이 가급적 군대를 보내주곤 했던 것은, 평소에 구축한 그 같은 동업자적 유대 관계에 기반한 것이기도 했다.

왕건의 신라 통일에도 '조문 외교'가 있었다

왕조시대 국가들은 황제국 입장인 강대국에 불행이 생길 때는 물론이고, 신하국 입장인 약소국에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도 조문단을 보내거나 조의를 표시했다. 일례로 조선의 경우에는, 황제국인 명나라뿐 아니라 신하국인 대마도나 여진족 부족들로부터 부고를 받을 때도 그렇게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적대 국가에도 조의를 표할 때가 있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신라 초대 군주인 박혁거세는 적대 관계인 마한왕이 세상을 떠나자 "지금 그의 죽음을 틈타 침공하면, 그 나라가 어렵지 않게 정복될 것입니다"라는 신하의 건의를 물리치고 "남의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하다"며 조문단을 마한에 파견했다.

고려 태조 왕건도 조문 외교를 잘 활용했다. 그가 통일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도 바로 그것이다. 그는 927년 후백제 견훤에 의해 비참하게 죽은 신라 경애왕을 위해 조문단을 파견했다. 그 뒤 후백제의 내정간섭에 시달리던 신라 경순왕을 방문해 위로를 표시하면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신라본기는 말한다.

신라를 어떻게든 압박하고 제재하려는 견훤과 달리, 신라 왕실의 아픔을 위로하려고 애쓴 왕건의 태도는 신라의 호족(지방 세력가)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왕건이 신라를 손쉽게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신라 왕실은 물론이고 지방 호족들로부터도 인심을 샀기 때문이다. 조문 외교가 왕건의 이미지에 긍정적 작용을 했던 것이다.

이 같은 조문 외교는 오늘날까지도 국제 정치에 영향을 주고 있다. 북한 역시 예외가 아니다. 통일 운동을 했거나 북한과 인연이 깊은 남한 인사의 별세에 대해 조의를 표시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남북관계 푸는 특사단 역할까지 한 북한 조문단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전을 보내 슬픔을 표시했다. 이때는 조문단을 파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핵실험을 준비하던 상태에서 노 전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했고, 이틀 뒤인 25일 제2차 핵실험이 단행됐기 때문이다.

석 달 뒤의 김대중 대통령 국장 때는 조문단 파견이 수월했다. 북한은 김정일의 조전을 보냄과 별도로,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등이 포함된 조문단을 파견했다. 비서는 노동당 내에서 일종의 국무위원 같은 직책이고, 통일전선부는 노동당 내의 통일부 같은 기관이다.

이때 방문한 북한 조문단은 특사단 역할까지 수행했다. 현인택 통일부장관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도 만나고 돌아갔다. 제2차 핵실험 이후의 긴장된 국면 속에서 조문 외교가 남북관계 개선에 일정한 기여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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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특사 조의방문단의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지난 2009년 8월 21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 평화센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 장의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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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지난 2009년 8월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서울에 온 북측 특사 조의방문단 김기남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장, 원동연 아태위원회 실장과 면담하고 있다. ⓒ 사진제공 청와대

북한의 조문 외교는 통일운동가들과 관련해서도 수행됐다.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고문 자격으로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통일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문익환 목사. 그가 1994년 1월 18일 세상을 떠나자, 김일성은 이튿날 유가족에게 조전을 발송했다. 제1차 북·미 핵위기가 진행 중이던 때였으므로, 조문단을 파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북한은 문 목사 10주기인 2004년에는 7명의 대표단을 파견했다.

통일운동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의 표시는 그 후에도 있었다. 2000년 1월 26일 김양무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상임부의장이 별세했을 때, 2005년 3월 5일 신창균 범민련 공동의장이 별세했을 때 북한은 조전을 발송했다.

통일운동가에 대한 북한의 조문 문제로 남북 간에 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다. 1995년 김일성 1주기 때 평양을 방문하고 6.15남북공동선언실천을위한통일연대 공동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통일운동가로 활약한 박용길 장로가 별세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박용길은 1995년 평양을 방문한 뒤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다. 김영삼 정권에는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그런 방법으로 그는 남편 문익환 목사를 연상시키는 당당함을 보여주었다.

그가 2011년 9월 25일 별세하자, 북한은 문익환 때처럼 조의를 표시하고자 했다. 북한은 남쪽 장례 관계자들과 개성에서 만나, 절차 문제를 협의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통일부가 장례 관계자들의 개성 방문을 거절함에 따라 무산되고 말았다.

그해 10월 1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방송에 출연해 "이번에 저지른 반인륜적 망동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단단히 계산할 것"이라며 통일부를 비판했다.

이희호 여사의 사회장, 북한은 어떻게 조의를 표할까
 

방북 뒤 판문점으로 귀환하는 박용길 장로. 1995년 8월 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박용길의 사진. ⓒ 동아일보

북한은 남북경협과 관련해서도 동일한 패턴을 보였다. 경협에 기여한 남한 기업인들의 별세에 대해서도 슬픔을 표시했다.

'현대그룹 창업주'나 '1992년 대선 출마' 못지않게 '남북경협'과 '소떼 방북'으로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정주영. 그가 2001년 3월 21일 세상을 떠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바로 다음날로 유가족에게 조전을 발송했다. 3월 24일에는 송호경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4명의 조문단이 빈소를 방문해 김정일의 조화를 전달했다.

2년 뒤 끔찍한 일이 있었다. 정주영의 뒤를 이어 금강산 관광 사업을 주관하던 중에 대북 송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8월 4일 서울시 종로구 계동의 현대 사옥 12층 회장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7일 뒤 금강산에서 열린 추모 행사 때 송호경 부위원장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대통령이나 통일운동가 또는 남북경협 기업인들한테만 북한이 조의를 표시한 것은 아니다. 북한 어린이들의 결핵 치료를 지원한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2006년 5월 22일 별세하자, 북한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WHO장으로 열리는 장례식장에 이철 제네바 대표부 대사를 파견해 조의를 표했다.

박용길 장로 때의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북한은 대미·대남 관계가 경색 국면에 들어갔을 때도, 또 남한 정권이 대북 적대적 태도를 견지할 때도 남한 인사에 대한 조문이나 조의를 가급적 표시하는 관행을 보여왔다.

그런 관행이 이번 이희호 사회장 때는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된다. 그에 더해, 북한이 취할 입장이 남북관계나 북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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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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