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절도범' 혜민이를 거리로 내몬 것은 누구일까

[나는 왜 '나쁜 놈'을 변호했나 11] 1년 만에 재범... 다시는 그와 만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등록 2019.06.18 09:46수정 2019.06.1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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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청소년을 지원하면 언제나 '피해자 지원도 부족한 마당에 왜 가해자를 돕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도대체 가해 청소년들은 왜 지원을 받아야 할까. 전국에서 유일하게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돕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가 만난 청소년들의 사연에서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기사 내용은 실화를 토대로 했으나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을 쓰고 세부 사항도 재구성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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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이로부터 또다시 연락이 왔다. ⓒ pxhere


 "변호사님. 혜민이에요."

1년 전 헤어질 때와 딱 한 마디만 달라진 인사였다.

"변호사님. 고마웠어요"라는 말 이후 1년 만에 온 연락이었지만 반갑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했다.

혜민이의 혐의는 절도였다. 새벽에 주차된 차들의 문을 일일이 열어보며 골목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문이 잠기지 않은 차가 걸리기라도 하면 샅샅이 뒤졌다. 운이 좋으면 몇만 원 정도는 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CCTV 관제실의 모니터 요원은 외진 골목에서 자동차 문을 열어보고 다니는 여성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자동차를 만나는 것보다 경찰이 먼저 도착했다.

범죄 청소년의 사연을 듣기까지

여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범죄 내용이 복잡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처럼 간단한 사건이라도 기록은 수백 쪽에 이른다.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고 혜민이를 만났다. 그런데 혜민이는 계속 다른 말만 했다.

어떤 청소년은 만나자마자 사건에 대해, 성장해온 배경에 대해, 가정에 대해 줄줄 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무어라 물어도 묵묵부답인 경우도 있고 계속 다른 이야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시간밖에는 방법이 없다. 입을 열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원하는 말을 할 때까지 수다를 들어주어야 한다. 혜민이는 딱 봐도 3~4시간은 수다를 떨어야 내면의 이야기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정확했다.

수다 끝에 혜민이는 가정에 대해, 성장 환경에 대해 그리고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혜민이가 왜 집을 나와야 했는지, 거리에서 살아가며 어떻게 생활했는지 그리고 왜 자동차털이를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의견서에 담았다.

그들에게 옳은 처분이란 무엇일까?

의견서 말미에는 청소년에게 어떤 처분이 가장 적합한지에 대해 적곤 한다. 혜민이의 경우는 그 어느 때보다 고민이 컸다. 그에겐 보호받을 가정이 없었다. 생활은 거리에서 했다. 마땅히 돈을 벌 직업도 없었다. 다시 거리로 돌아간다면 재범에 이를 우려가 매우 컸다.

하지만 혜민이는 소년보호시설이나 소년원에 가기를 강하게 거부했다. 비행 내용도 좀도둑질이었다. 아는 언니네 집에서 함께 자취를 하기로 했다며 거리 생활도 청산할 것이라고 했다. 과연 어떤 처분이 혜민이에게 바람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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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갈 곳 없는 아이들, 가출 그 이후> 보도 중. ⓒ KBS

 
의견서 말미에는 최대한 관대한 처분을 원한다고 썼다. 무엇보다도 재범의 우려가 크다는 것은 제3자의 생각일 뿐이었다. 나는 '혜민이는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을 했다. 나의 역할은 혜민이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다. 지금은 그 누구도 혜민이를 믿어주지 않고 있다. 설사 혜민이의 말을 믿어준 결과가 재범이라고 해도 의심보다는 차라리 그것이 낫다.

도움을 얻고자 찾아간 변호사까지 혜민이를 의심한다면 혜민이가 기댈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홀로 외롭게 던져진 혜민이가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혜민이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가능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희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명량하게 떠난 혜민이

그렇게 수백 쪽의 기록을 검토하고 몇 시간 동안의 수다를 들어주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의견서를 작성해 법원에 갔다. 언제나 그렇듯 재판에 소요된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단기 보호관찰 처분이 떨어지고 "돌아가서 보호관찰 잘 받아야 한다"는 판사의 충고가 끝나자 혜민이와 나는 법정 문을 열고 나왔다.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청소년은 법정과 복도 사이에 있는 실무관에게 관련 절차를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 5분 정도 짧은 설명을 들어야 한다. 법정 밖 복도에서 설명을 듣는 혜민이를 기다리면서 무어라 말해줄까 생각했다. 무어라 말해줘야 이제 17살에 불과한 청소년이 우리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까? 5분 남짓이었지만 수백 마디의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정작 혜민이가 나왔을 때 그 고민들은 쓸데없는 것이 되었다.

"변호사님. 고마웠어요."

혜민이는 고맙다는 말 딱 한 마디를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사뿐사뿐 법원을 떠나갔다. 떠나가는 혜민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5분간 생각했던 수백 마디의 말들을 나 혼자 되뇌었다. 그것이 혜민이에게 마음으로 전달되기를, 그래서 혜민이가 다시 법정에 서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반갑지 않은 그의 연락 

하지만 그렇게 떠나보낸 혜민이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변호사님. 혜민이에요"라는 한마디에 혜민이에 대한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법정을 나서는 혜민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되뇌었던 수백 마디의 말이 결국 전달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1년 만에 걸려온 혜민이의 전화가 전혀 반갑지 않았던, 오히려 불안했던 이유였다.

혜민이의 죄명은 이번에도 절도였다. 법원에서 나온 혜민이는 아는 언니의 자취방에 들어갔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월세도 나누어 내고 음식도 해 먹으며 살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쪽방이라고 해도 청소년들이 감당하기엔 만만치 않은 월세를 내야 했다. 한두 달 밀리기 시작하던 월세는 서너 달로 불어났고 얼마 되지 않던 보증금이 바닥나자 혜민이와 언니는 다시 거리로 향해야 했다고 한다.

밀린 월세에 쫓겨 나온 집을 뒤로하고 혜민이는 찜질방으로 향했다. 씻고 한참을 잔 후 나올 때 혜민의 손에는 곤히 잠든 손님의 최신형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스마트폰을 중고로 팔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곳곳에 CCTV가 있는 한국에서 이처럼 어설픈 절도범을 잡는 것처럼 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1년 전 새벽에 자동차 문을 열어보고 다니다 잡혔던 것처럼 혜민이는 이번에도 자신을 찾아온 경찰을 만나야 했다.

1년 전보다 혜민이의 수다는 눈에 띄게 줄었다. 3~4시간의 수다 끝에야 겨우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놓은 혜민이었지만, 이번에는 30~40분 만에 내면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도 만난 적이 있다고, 변론을 한 번 해주었다고 한결 수월하게 마음을 내어 주었다.

문제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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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이와 다시 법원에 가야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혜민이의 의견서를 쓰면서 매번 반복되는, 하지만 매번 같은 결론에 이르는 고민에 빠졌다. 선처를 요구해야 할까? 엄벌을 요구해야 할까? 어쩌면 지금 혜민이에게 엄벌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님. 고마웠어요"라며 명랑한 표정으로 떠나갔던 혜민이가 1년 만에 다시 연락을 했을 때는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이 나 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가 엄벌을 청하면 혜민이가 느낄 배신감과 분노는 엄청날 것이다. 배신감과 분노를 안고 중한 처분을 받는다면, 그것을 통해 혜민이가 교훈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이번에도 의견서는 선처를 청하면서 마무리했다. 혜민이에게 정말 필요한 처분이 무엇일까? 어떠한 처분을 해야 혜민이가 다시는 범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혜민이에게 처분을 내리는 판사는 그것을 알고 있을까? 어쩌면 정답은 혜민이를 변호하는 나도, 혜민이에게 처분을 내리는 판사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문제는 '혜민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혜민이를 돌보지 않은 가정, 가정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혜민이를 모른 척한 마을, 상처 입은 혜민이를 울타리 밖으로 내보낸 학교, 월세가 모자란 청소년을 거리로 내몬 우리 사회에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혜민이는 이번에도 시설이나 소년원 행은 면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명랑하게 인사하며 법원을 떠났다. 나는 이번에도 그런 혜민이의 뒷모습을 보며 수많은 말을 되뇌었다. 혜민이와의 만남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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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이며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헌법 쉽게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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