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기록까지... 그들은 정말 '찍힌' 판사들이었다

[사법농단-양승태 4차 공판] 인권법연구회 핵심 회원들 '특별관리'... 사실상 블랙리스트 존재

등록 2019.06.13 16:06수정 2019.06.1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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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세 차례 걸친 자체 조사마다 법원은 '판사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은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국제인권법 연구회 회원들을 공식인사기록에서 '특별관리'하고 있었다.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농단' 4차 공판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의 검찰 조사 내용이 처음 드러났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이 증거로 신청한 양 전 대법원장 피의자신문조서의 조사를 진행했다.

검찰에 따르면, 사법부에는 '법관인사관리시스템'이 있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차장, 인사총괄심의관만 접근가능한 이 시스템에는 메모란이 있다. 양승태 대법원은 국제인권법 연구회 회원 가운데 주요 인사 36명의 경우 메모란에 인권법, 인권법 간사, 인사모(연구회 내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활동 등을 표시했다.

대법원 반대한 그들, '눈엣가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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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변호사로 거듭난 이탄희사법농단 사태를 세상에 알린 이탄희 전 판사(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지난 5월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긴급조치 피해자 원상회복 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 ⓒ 남소연

  
국제인권법 연구회는 법원 내 학술모임으로 사법농단의 출발점이 된 곳이다. 양승태 대법원은 적극 추진해온 상고법원(대법원과 별도로 3심 사건 처리하는 법원) 설치에 반대하고, 대법원장 한 사람이 모든 법관의 인사권을 틀어쥔 현실을 비판해온 국제인권법 연구회를 특별관리했다. 수시로 동향을 파악하고 '중복 가입 해소'란 이유로 판사들의 탈퇴를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연구회 소속이며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심의관 발령이 난 이탄희 전 판사는 이러한 일이 자신의 새 업무라는 사실을 알고 사표를 냈다. 그럼에도 양승태 대법원은 줄곧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다, 국제인권법 연구회를 부당하게 견제한 적 없다'고 했다. 2017년 4월 꾸려진 법원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도,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두 차례 걸쳐 이뤄진 추가조사에서도 결론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사실상의 리스트는 존재했다. 13일 재판에서 드러난 내용은 양승태 대법원이 핵심 회원들의 가입, 활동 사실을 공식인사기록에 기재할 정도로 국제인권법 연구회를 견제했음을 뜻한다.

법관인사관리시스템 메모란에 다른 법원 내 연구회 가입여부를 기재한 사례는 없었다. 지난해 사법부 스스로 공개한 2016년 3월 10일자 <국제인권법 연구회 대응방안 검토> 보고서에는 "인사모는 문제 상황의 집약체이자 핵심"이란 표현까지 등장한다. 이 문건은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작성했다. 검찰은 보고서 완성 후 법관인사관리시스템 메모가 추가됐다고 본다.

국제인권법 연구회와 별개로 '찍힌' 판사들도 있었다. 양승태 대법원은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판결을 비판한 판사, 세월호 특별법 개정 촉구 칼럼을 게재한 판사도 인사조치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조사에서 "물의야기법관이라고 해서 인사안을 만들어오면 그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건 제가 맞다"고 말했다.

기억 없다는 양승태, 기록 사라진 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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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첫 재판 출석하는 양승태, 박병대, 고영한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개입 등 '사법농단' 피고인 (왼쪽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이 29일 오전 첫 재판을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하지만 그는 과도한 인사나 행정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조사에서 중복 가입 해소 조치 등은 국제인권법 연구회를 와해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연구회 제도가 오래돼서 좀 진부한 것 같다고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말했다"고 했다. 또 2017년 국제인권법 연구회가 추진한 법관인사제도 관련 학술대회 개최를 무산하려고 했다는 의혹은 "정치권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으니 내부행사로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고 반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국제인권법 연구회 소속이라고 메모란에 기재한 것도 "전혀 본 기억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처음엔 법관인사관리시스템을 모른다고 했으나 검사가 프로그램을 설명하며 접속기록을 제시하자 "그런 것은 확인한 적 있고 이름과 학력, 경력을 본 것 외에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편 검찰은 법원행정처에 현재도 법관인사관리시스템 메모란에 국제인권법 연구회 관련 내용이 남아 있는지 문의했다. 지난해 11월 15일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은 "현재 시스템 메모 검색 기능을 사용해보니 '국제인권법'을 검색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답변을 보냈다. 검찰은 2017년 3월 사법농단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 법원행정처가 '판사 블랙리스트' 존재를 감추기 위해 기존 메모를 삭제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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