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있는 곳 여기뿐인데..." 청주시, 아파트 장애인쉼터 철거 통보

용암주공아파트 내 '사랑의 쉼터'... LH 관계자 "이행 안 하면 과태료, 어쩔 수 없다”

등록 2019.06.14 11:32수정 2019.06.1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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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용암동 주공임대아파트에 위치한 장애인 이용시설 '사랑의 쉼터'. 청주시는 지난 달 해당 건축물이 불법시설에 해당한다며 9월 10일까지 철거하라고 요청했다. ⓒ 충북인뉴스


"이곳은 친정 같은 곳이에요. 여기 아파트는 매우 좁아요. 집에만 있으면 되게 답답해요. 이곳에 나와 안부도 묻고 시간도 보내고요.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갈 곳은 아파트에 여기밖에 없어요"(이송자‧78세‧독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80~90%는 노인과 장애인들이에요. 독거노인도 많아요. 사람이 죽어도 잘 몰라요. 한 달 만에 발견되기도 하고요. 우리는 여기서 서로 돕고 살아요. 전동휠체어도 고쳐주고 이‧미용 봉사활동도 하고요. 이곳이 없어지면 공동체가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에요"(김관응‧60) 


13일 오후 청주시 상당구 용암주공아파트 106동 맞은편 '사랑의쉼터'엔 10여 명의 장애인이 모여 들었다.

쉼터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4~5평 남짓의 컨테이너로 된 방과 지붕으로 차단된 그늘이 전부였다. 그늘 경계를 벗어나 햇빛이 비추고 있는 자리에 한 장애인이 고개를 떨 군채 잠이 들었다.

잠들기 전 그 자리는 그늘이었지만 태양이 속절없이 정해진 시간에 따라 이동해 버린 듯했다.

컨테이너로 된 방에선 4명의 장애인이 수박을 나눠 먹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시 지붕 및 그늘막에 모여들었다. 모두 다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개소한 사랑의 쉼터
 

사랑의쉼터 내부. 4~5평 정도의 컨테이너로 만들어졌다. 용암주공아파트 내 유일하게 전동휠체어가 통행할수 있다. ⓒ 충북인뉴스


지난 5월 청주시는 용암주공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아파트단지 내에 설치된 불법 건축물을 철거하라고 공문을 보내왔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단지내에 설치된 '사랑의쉼터'와 자율방범대 사무실등 컨테이너로 된 시설물이 허가받지 않은 불법건축물에 해당돼 6월 10일가지 철거하라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청주시와 협의해 일단 시기는 9월 10일까지로 연장했다"며 "이 기간에 철거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주시가 쉼터를 철거하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 이곳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행복한 용암동 만들기 모임. 사랑의 쉼터' 민영의 대표. 그는 2010년에 개소한 사랑의 쉼터를 만든 주역이다. 민영의 대표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 아파트엔 전동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는 통로조차 없었다. 아파트 내에 있는 복지관엔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아파트 곳곳엔 턱이 높아 전동휠체어가 다니기에 매우 불편했다"고 했다.

민 대표는 "이런 현실을 깨닫고 모임을 만들어 관리사무소에 요청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하나 하나 개선했다"며 "사랑의쉼터도 그 연장선에서 설치됐다. 동사무소, 시의원도 동참했고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만들어진 곳"이라고 설명했다.

민 대표는 "그런데 갑자기 민원이 제기됐다는 이유로 철거하라고 한다"며 "이곳 장애인들에겐 꼭 필요한 시설이다. 1000여 세대 중 90% 가까이가 노인이나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 큰 아파트에서 장애인들이 갈수 있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 김광주씨가 만든 '쉼터 10년 동영상'엔?
 

청주시 용암동 용암주공아파트에 거주하는 김광주(48)씨는 사랑의쉼터 10년의 기억이 담긴 영상을 제작했다. ⓒ 충북인뉴스


청주시가 쉼터를 철거하라는 요청을 들은 장애인 김광주(48)씨는 동영상을 제작했다. 김광주씨는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고 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김씨가 만든 영상에는 2010년 사랑의쉼터 개소식 사진부터 최근까지 이곳을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장애인들은 이곳에서 모여 회의도 하고 이발도 하고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다. 단순히 도움만 받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의쉼터에 모인 장애인 회원들은 논의를 통해 봉사모임을 꾸리고 거리 청소를 하고 전동휠체어 수리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동영상에 담긴 사랑의쉼터는 하나의 작은 공동체였다. '사랑의쉼터'는 이름 그대로 지역사회의 사랑이 듬뿍 담겨있었다. 2010년 개소식 당시 후원내역을 살펴보면 관리사무소, 입주민대표자회의, 시의원, 동장, 상가번영회 까지 동참했다. 심지어 아파트 주변 과일노점을 하는 상인도 동참했다.

'사랑의쉼터'에서 전동휠체어 수리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관응(60)씨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어 했다.

자신도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인 김관응씨는 "쉼터를 중심으로우리끼리 서로 돕고 살았다. 개소식 할 때는 모두 축하해 줘 놓고 이제 대안도 없이 철거하라고 하면 다인가. 우리는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축복 속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했다고 하는 미담의 주인공이였던 '사랑의 쉼터'. 9월 10일 어떤 결과로 남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장애인 #청주 #장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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