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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범 남성-성매매 여성, 삶의 끝에서 만나 발견한 희망

[리뷰] 영화 <갤버스턴>, 절망적 삶에서 작은 빛 지켜내는 이들의 이야기

19.06.14 14:51최종업데이트19.06.1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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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갤버스턴> 포스터 ⓒ ㈜삼백상회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누군가에게서 떠난다는 건 때로 큰 결심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람에게 다가서는 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지만 기존의 인연을 뒤에 두고 떠나는 일은 더 큰 심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떠나야 할 대상이 가족이라면 그건 더욱 큰 결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족을 떠난 사람들은 크게 마음을 먹고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늘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그리고 최대한 새롭게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지키려 애쓴다. 그들 자신도 스스로가 가족들에게서 떠나왔던 것처럼 주변 사람도 갑자기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늘 그들의 마음은 살얼음판 위에 있는 것처럼 불안하다.

보통 집에서 멀리 떠날 때는 동기가 있다. 떠나는 사람이 가정폭력이나 성범죄의 피해를 당한 피해자일 수도 있고 살인이나 폭력의 가해자일 수도 있다. 그런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아주 사소한 일이 집을 떠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떠남을 결정한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기존 문제와는 또 다른 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늘 떠나온 그 자리를 뒤돌아 쳐다본다. 

어딘가에서 떠나온 두 남녀의 이야기

영화 <갤버스턴>은 각자의 상황에서 마음먹고 떠난 남자 로이(벤 포스터)와 여자 라켈(엘르 패닝)의 이야기다. 극 중 로이는 도박판을 기웃거리다 도박으로 빚진 이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건달이고, 라켈은 성매매로 돈을 버는 매춘부다. 로이는 조직에서 일하던 중 보스의 여자와 관계를 맺는다. 로이는 보스의 함정에 빠져 자신을 죽이려던 킬러를 죽인 후, 그곳에서 만난 라켈과 함께 서둘러 그곳을 떠난다. 로이는 폐 질환으로 주어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라켈은 보기에도 앳되어 보이는 십대 후반의 소녀다. 집에서 떠나 혼자 성매매를 통해 살아온 그는 모르는 남자를 의지해 그 지역을 벗어난다.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 ㈜삼백상회

  
로이는 곧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지만, 특별히 그것에 대해 대비하지 않는다. 이미 망가져버린 삶에서 죽음은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죽음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미 40살이 된 로이의 삶은 내일 바로 죽는다고 해도 특별히 달라질 것 같지 않다.

포식자 밑에서 포식자를 흉내 내며 살아온 로이는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기 바쁘다. 그는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갑자기 찾아온 죽음에는 흔들린다. 심각한 질병이라는 말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화를 내는 모습은 희망 없는 삶에 또다시 찾아온 불행에 저항하는 유일한 행동일지 모른다. 갑자기 찾아온 질병을 애써 무시하지만, 다시 한번 찾아온 갑작스러운 외부의 위협에는 최대한 저항하여 그가 자리잡고 생활했던 보금자리를 떠난다. 그렇게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만들어내고 방황하게 만든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주인공들

로이는 주로 폭력을 행사하며 빚쟁이들을 협박해 온 가해자다. 어쩌면 그에게 찾아온 불행은 인과응보처럼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많은 사람을 괴롭혔고, 도박과 술에 빠져 스스로의 시간을 낭비했다. 그런 자에게 삶이란 건 그저 낭비되어 버리고 마는 또 다른 소비재일 뿐이다. 누구나 기억에 남는 과거가 있듯이 로이에게도 사랑스러운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일부러 찾아가는 행복했던 과거는 그를 경계하고 밀어낸다.

꼭 로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 주변엔 이렇게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뜯어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한순간에 가해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나름의 사연이 있고, 그들 자신이 가진 기질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가해자들도 추억할 아름다운 과거가 있고, 현재 잘못을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것을 다시 바로 잡을 시간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지킬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영화는 그런 로이의 삶을 배우 벤 포스터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천천히 전한다.

반면 라켈은 어떤 식으로든 삶을 살아가려 애쓴다. 계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한 그는 집을 나와 먹고살기 위해 성매매를 한다. 최대한 밝음을 유지하려 하지만 아무도 안 보는 화장실에서 늘 흐느끼는 그의 삶은 더럽혀졌다는 수치심으로 늘 어둡다. 여기에 두고 온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이 더해져 그의 얼굴엔 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극 중 라켈은 습관적으로 남자들에게 접근해 그들을 이용해 음식을 얻거나 잠잘 곳을 해결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 먹을 음식, 잠잘 공간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그는 삶의 가장 낮은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삶을 이어가려는 라켈과 같은 여성들도 많을 것이다. 다른 방법들이 있겠지만 라켈은 누군가에게 속아서 성매매를 하기 시작했고, 그 일에서 빠져나오기는 매우 어려웠다.

삶의 깊은 늪에서 고통받던 그는 로이를 만나면서 그 삶을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그런 절망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라켈을 연기하는 건 이제 막 성인으로 성장한 배우 엘르 패닝이다. 영화 속 그의 모습은 시종일관 불안과 후회를 담고 있다.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 ㈜삼백상회

  
로이와 라켈의 만남은 두 절망적인 삶이 만난 것이다. 그들은 각각 가해자와 피해자의 삶을 살았지만 영화 속 몇 가지 사건 이후 두 사람 모두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가 된다. 이런 상황은 두 사람의 삶이 일반적인 시선에서 얼마나 도덕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라켈이 자신의 여동생 티파니(애니스턴 프라이스)를 폭력을 일삼는 계부에게서 찾아오면서 그들은 유사 부부 혹은 유사 부녀의 형태로 돌아다니게 된다. 로이는 처음으로 그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라켈은 처음으로 믿을 만한 어른을 만난다. 그들의 관계는 다소 어색하다. 그들은 이전에 그런 정상적인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 그들이 맺은 그 관계는 다르게 보면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삶 중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주 작은 희망의 빛을 만난다. 

두 절망적인 삶이 만나 찾은 작은 희망

한 사람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한 사람은 죽음으로 향하는 사람에게 의지해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라켈은 온전히 로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를 믿는다. 그래서 늘 그가 자신과 여동생을 버리고 떠날까 두려워한다. 그 자신이 여동생에게서 훌쩍 떠난 것처럼 믿을 만한 어른이었던 로이 역시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무 말 없이 떠날까 두려워한다. 로이 역시 라켈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늘 다가오는 라켈을 일부러 밀어낸다. 기어이 그는 라켈과 티파니를 버려두고 떠나지만 자꾸 뒤를 돌아보던 그는 이내 그들에게 다시 돌아온다. 

어느 순간 로이는 라켈의 삶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그가 죽기 전, 라켈과 그의 여동생에게 미래라는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들이 갤버스턴의 바닷가를 찾아가 놀면서 휴식을 취하는 장면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아주 따뜻하게 비춘다. 처음 바다를 방문하게 된 티파니는 물론이고, 로이와 라켈 모두 평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깨끗하고 따뜻한 한 순간을 기억이 카메라에 담긴다. 실제로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같이 기억하는 순간은 갤버스턴의 바닷가에서 보낸 시간뿐이다. 

로이와 라켈의 삶은 절망에서 비켜나지 못했지만, 그들은 더 어린 티파니에게는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노력한다. 그 아이를 지킴으로써 그 둘의 삶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영화는 로이와 라켈의 만남과 그들이 겪는 심리적 갈등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들이 겪는 고난들이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결국 그들이 지켜낸 작은 희망은 다음 세대로 옮겨져 빛을 보게 한다. 그들은 자신이 있던 곳에서 큰 마음을 먹고 떠나는 삶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상대방에게 정착하여 그것을 지켜냈다. 뒤를 돌아보고 다시 돌아가 아이 티파니를 데려왔고, 그리고 그에게 미래를 선사했다. 그래서 그들이 영화 내내 겪는 절망이 조금은 따뜻하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 ㈜삼백상회

  
서로가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리고 가족

영화 속 로이가 펑펑 울며 자신을 자책하는 라켈에게 이야기한다. 

"넌 아무 잘못 없어."

라켈이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가 여동생을 떠나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 비난의 화살은 잘못을 저지른 어른들을 향해야 하는 것이 맞다. 로이는 죽음으로 가는 자신보다는 라켈을 챙김으로써 라켈을 다시 원래 10대들의 삶 속으로 끌어당기려 노력한다. 결국 로이도 라켈도 가족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건 유사 가족이지만 그래도 삶의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가족이기도 하다.

영화의 후반부엔 꽤 묵직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리뷰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호칭과 내용 등을 다 적지는 않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본다면 영화가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희망을 담고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따뜻한 갤버스턴 해안가의 풍경과 그 속에 담긴 희망은 보는 관객들의 마음속에 꽤 오래도록 담겨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갤버스턴 벤포스터 엘르패닝 가족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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