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 박사가 알려주는 '심리적 심폐소생술' 하는 법

[제정임의 문답쇼, 힘] 정혜신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등록 2019.06.15 17:22수정 2019.06.1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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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방송 SBSCNBC는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 2019 시즌방송을 3월 14일부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1시부터 1시간 동안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영상과 주요 내용을 싣는다. - 기자 말
 

정혜신 박사는 “외환위기와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면서 ‘각자도생’의 심리가 확산했다”고 진단하고, 그 속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연대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 SBSCNBC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보면) 쌀이 없어서 죽는 게 아니고, 쌀이 없을 만큼 우리 삶이 이런데 이 고통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내 삶 내 고통과 세상과의 연결이 끊겼다, 이것이 절망이고 죽음이었던 거죠... (반대로) 세월호 유가족의 예를 보면요, 그 피해자들이 건사가 된 것은 거대한 시민들의 연대, 거대한 자원봉사의 연대였거든요. 지난 5년 동안 자원봉사자들이 넘쳐났어요. 국가는 (희생자와 유족들을) 버렸지만 그런 개별적인 시민들이 떠받치는 힘들이 있었죠."

쌍용차 해고 노동자를 위한 심리치료공간 '와락'과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위한 '치유공간 이웃' 등을 만든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정혜신(56) 박사가 13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사회적 재난 피해자와 함께 한 경험을 털어 놓았다. 그는 전문의가 된 후 30여 년 간 1만 2천여 명의 마음을 치유했고, <당신이면 충분하다> <당신이 옳다> 등의 베스트셀러를 내기도 했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목숨 살리는 건 '손 내미는 이웃'

정 박사는 1997년 외환위기와 세월호 참사 후 우리 사회에는 '내가 알아서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자신과 가족만을 챙기는 '각자도생'의 심리가 확산했다고 진단했다. 이런 사회에서 절망과 고립 속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위기에 처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를 보여주는 '연대'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처음엔 저도 의심했어요. 프락치냐 뭐냐, 의사면허증 내놔봐라. 우리랑 아무 일면식이 없지 않냐. 근데 왜 생업을 접고 여기 와서 이러느냐... 그런데 나중에 말해요. 자기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다. 우리 가족 우리 식구만 알고 살았다. 근데 아이를 잃고 난 이후 안산이나 팽목항에서 생면부지 사람들이 와가지고 울고 손잡고 함께 해주고...나는 이렇게 산 적이 없는데 이렇게 사는 삶이 있구나, 이거를 확인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월호 피해자 중에 지금 누군가를 돕거나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돕거나 하는 부모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정 박사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자기 주변에 있던 자원봉사자 몇 명을 통해 세상이나 사람에 대한 신뢰를 전체적으로 다시 회복했다"며 "한 개별적 존재가 그 사람에게는 한 세상이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시민들이 달고 다닌 '노란 리본'도 세월호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다며 자녀를 잃은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했다. 길에서 천근만근 무거운 걸음을 옮기던 어머니가 지나가던 여학생들의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자 '그 리본이 방석만큼 크게 보이면서' 갑자기 힘이 나더라는 얘기다. 정 박사는 "방석만큼 크게 보였다는 것은 우리가 달고 다닌 리본이 가진 어마어마한 치유력을 말하는 것"이라며 "그 사람에게는 정말 생명줄, 동아줄이 내려오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도구화하는 사회에서 깊어지는 청년 우울증

"지금 아이들에게 희망이 없는 것의 핵심은 사람을 도구화하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좋은 직장이라고 해서 들어가도 자기의 존재를 인정해주거나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사회구조거든요. 이건 취직을 하느냐 못하느냐를 떠나 그냥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공기인 거 같아요. 모든 사람이 소외되고, 모든 사람이 상처받고, 모든 사람이 우울하죠. 집에서도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봐 주는 게 아니라 좋은 직장, 성적, 결혼 이런 조건이 먼저잖아요."

우울증을 호소하는 20대가 많아지면서 우울증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는 현실에 대해 정 박사는 '가정과 사회가 사람 자체를 주목하지 않고 도구로 보는 풍토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사람이 불안해지면 자격증, 학력, 통장 잔고 등 확실한 것에 매달리게 된다"며 "이런 불안을 없애려면 사람의 존재 자체에 눈을 포개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들이 '이 나이에는 이래야만 한다'는 '슈드비(should be)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존재에 주목하려면 섣불리 충고, 조언, 평가, 판단(충조평판)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의 마음에 주목하지 않고 스스로 '충조평판'하는 것이 슈드비 콤플렉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박사는 "훌훌 털고 배낭 매고 떠나고 싶은데 '내 나이에 이러면 안 되지'하고 억제하는 것은 존재의 개별성으로 가는 것을 차단하는 일"이라며 "그런 마음이 드는 데는 이유가 있으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혜신 박사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먹을 때는 항상 이유가 있다”며 “판단, 평가, 충고, 조언 대신 먼저 그 마음에 주목하고 공감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 SBSCNBC

 
그는 또 고통을 겪는 사람을 대할 때 가족이나 친구 등이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인정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신과 등 의사에게 외주를 주는 대신 누군가의 고민에 집중하고 공감해주는 '적정 심리학'으로 일상스트레스의 70~80%는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이 살다가 어떤 마음을 먹더라도 항상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그 마음은 옳다'고 하는 것이죠. (죽고 싶은 사람, 우울한 사람에게) '그런 마음은 틀렸어' 하며 무작정 먼저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니? 그랬구나, 그런 마음이었구나. 고통에 주목하고 고통 자체에 내 눈을 포개는 행위, 이것이 공감이고 심리적 심폐소생술이에요."

은퇴자는 교도소에서 막 나온 장기수
 

정혜신 박사는 직장에서 은퇴한 후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는 증상은 ‘교도소를 나온 장기수’처럼 당연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 SBSCNBC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은퇴 후 긴 시간을 우울과 불안 속에 살아가는 중노년층이 늘고 있다. 정 박사는 "은퇴를 한다는 건 장기수가 어느 날 출소해서 교도소 문을 나서는 모습과 같다"며 "정해진 규칙대로 살다가 자유가 주어졌을 때 막막한 심정이 바로 은퇴자의 심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한동안은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며 "은퇴 후 비틀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가족들도 '병원에 가 보라' 등 재촉하지 말고 기다려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박사는 또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노인들에 대해 "사회에서도 가족 안에서도 소외되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없는 사람 취급당하는 데 대해 존재 자체가 갖는 분노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을 인정해주는 보수단체의 활동에 몰입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분들도 살아온 얘기에 귀 기울였더니 세월호 유가족에게 행패 부린 것을 스스로 반성하더라"며 "(이분들에게)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하루하루 어떻게 지내는지 묻기 시작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조현병 환자 격리 앞서 인권침해 폐쇄병동 해결해야

최근 조현병 등 중증정신질환자의 범죄가 문제가 되면서 '가둬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 정 박사는 '격리가 능사는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정신질환자의 실제 범죄율은 비질환자보다 크게 낮은 수준인데도 알 수 없는 병이란 이유로 공포감이 증폭되고 있다"며 "인권침해가 심각한 폐쇄병동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조현병 환자를 인간 흉기로 보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폐쇄병동의 인권침해가 심각한데 이를 해결하지 않은 채 조현병 환자를 격리하고 보자는 발상은 위험하다고 지적하는 정혜신 박사. ⓒ SBSCNBC

 
정 박사는 조현병의 경우 약물치료를 꾸준히 안정적으로 하면 통제가 되고 어느 정도 사회생활도 가능한 병인데 관리가 잘 안되고 가족들이 힘드니까 장기입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침해가 심한 일부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나온 환자가 재발해 다시 입원시키려고 하면 당사자는 '고문실에 다시 끌려가는 심정'이 되어 저항하다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국가에서 환자 일인당 상당한 금액을 지원하기 때문에 폐쇄병동이 굉장히 늘어났다"며 "환자를 가두면 나머지는 모두 편안해지면서 환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그는 "북유럽에서는 이런 문제가 거의 다 해결됐다"며 국내에서도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세월호 #은퇴 #정혜신 #우울증 #조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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