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 제안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평전 35회] 기득권에 연연한 두 거대 정당체제에서 수용되지 않았다

등록 2019.06.18 16:29수정 2019.06.1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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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통합진보당 의원은 25일 올해 대선에서부터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시민사회와 학자, 정치권 등의 요구를 반영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 최경준

노회찬은 재선에 성공하여 노동자ㆍ농민과 도시 서민들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갖가지 법안을 구상하고 정책을 다듬어왔는데, 당내 분란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가 꿈꾸는 정치는 건강한 진보정당을 육성하여 한국 정치가 진보ㆍ보수의 두 바퀴로 운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통진당사태'는 비극적이었다.

동지들 간의 불화와 암투, 극심한 이념대결을 극복하지 못한 채 결국 분당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에게는 국민의 대표로서 의정활동을 충실히 해서 이명박 정권의 각종 비리와 적폐를 파헤치고 바로잡는 일과 난산 끝에 간신히 새로 출범한 정의당의 대표로서 진보세력을 통합하고, 건강하게 육성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노회찬은 19대 국회 때인 2012년 11월부터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미 노동자들과 진보적 의료 단체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산업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에 노회찬은 '한국형 기업살인법' 제정을 2013년도 사업 계획에 포함시켰지만, 2013년 2월 14일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이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주석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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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진보신당 대변인의 <노회찬과 삼성X파일-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운 7년의 기록> 출판기념회가 10일 오후 노원구민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조국 서울대 교수가 초청돼 '북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 신원경

 
노회찬은 각종 재해로부터 시민과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법안을 준비하는 등 국회 활동에 열과 성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목줄을 죄는 쇠줄의 법망이 서서히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비록 정의당은 소수에 불과한 의석이지만 원내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한나라당 정권이 연장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사업가 출신이라는 이명박 집권 5년간의 각종 비리와 적폐를 지켜보면서, 그 당의 정권연장은 곧 나라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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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30일 오후 부산 진구 부전시장을 찾아 상인들로부터 꽃다발을 건네받고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가 대선 후보로 되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굳혀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의정활동을 하면서 지켜봐왔기 때문에 '박근혜의 실상'을 너무 잘 알게 되었다. 노회찬은 2012년 7월 29일, 18대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안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서 대선 후보들의 출마 선언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각 당의 대선후보 선출 방식이 아직 완전하게 결정되지도 않은 상태이고 각 세력들의 후보가 단일화되고 정리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거의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그림의 떡처럼, 볼 수는 있으나 가질 수 없었던 대선 결선투표제를,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방식으로 전면화시키기 위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해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입법안을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유효 투표의 과반수를 얻은 후보자가 없을 경우에는 다수 득표를 한 2인을 대상으로 대통령 선거일 후 14일째 되는 날 대통령 결선투표를 실시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시 노회찬은 1987년 민주화 이후 20여년간 "국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선호를 반영하는 대통령 선거제도가 도입되지 못한 결과, 정치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예측 가능성은 낮아졌으며, 사회경제적 균열을 반영한 정당정치의 안정적 발전이 가로막혀 왔다"고 평가했다.

또한 역대 선거를 예로 들면서 "1987년 대선과 1997년의 대선의 경우 결선투표제를 도입했다면 결과가 뒤바뀔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결선투표제가 특정 세력에게만 유리하거나 불리한 제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주석 8)


노회찬의 혁신적인 주장과 개혁안은 기득권에 연연한 국회의 두 거대 정당체제에서 수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얼마 뒤 의원 배지를 빼앗겨야 했다.


주석
7> 『노회찬, 함께 꾸는 꿈』, 286쪽.
8> 앞의 책, 292~293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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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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