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평화를 빕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이베리아반도 방랑기] 파티마를 지나 마토지뉴스까지

등록 2019.06.19 09:22수정 2019.06.1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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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서 여기까지 걸어왔어. 도중에 카스카이스에서 하루 잤으니, 이틀 걸렸네."

숙소에서 정성껏 준비해준 아침을 먹는데, 어제 늦게 들어온 옆방 친구가 말했다.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사람들끼리 서로의 여정을 얘기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이 친구의 얘기에 할 말이 없어졌다. 모두 그녀의 여행을 알아내기에 바쁘다.
 

숙소 주인장의 정성스러운 아침 식탁 너무도 예쁜 식탁에 정성스러운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어요. 미국, 캐나다, 독일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서로의 여행을 나눴습니다. 행복한 시간이네요. ⓒ 이창희

 
"며칠이나 걸을 거야? 이게 시작이야, 마무리야?"
"16일 예정이야. 이제 시작이지. 다리가 좀 아프긴 한데, 쉬엄쉬엄 가면 괜찮을 것 같아."



그녀는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왔다고 했다. 키가 크고 신중한 인상이었다. 걸어서 이 나라를 여행하는 방식이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신선했다.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숙소를 나서는 그녀의 행운과 안전을 빌며 아쉬운 인사를 나눴다.
 

햇살 따스한 파티오에 앉았습니다 오랜만에 빨래를 하고는 파티오에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햇살도 바람도, 오랜만에 느끼는 아침의 여유도 정말 행복한 아침이었어요. 언젠가, 이런 멋진 집을 갖고 싶었어요. ⓒ 이창희

 
어제부터 앉아보고 싶던 파티오에 잠시 자리를 잡았다. 더러워진 옷들을 빨아 햇살에 잠시 널어 놓고 오랜만에 아침의 여유를 느낀다. 상쾌한 바람과 세탁 후 빨랫줄에 걸려 있는 새하얀 시트의 냄새가 반가운 아침이다. 가끔은 호텔이나 호스텔과 같은 숙소를 벗어나서,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선택한 숙소는 그동안의 피로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만큼의 좋은 환경이라, 더 적절했다.

아쉽지만 숙소를 정리하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포르투 근처의 마토지뉴스까지 올라갈 예정인데, 가는 길에 파티마의 성녀로 유명해진 '파티마'에 들르기로 했다. 신트라에서 파티마까지는 잘 닦인 이 나라의 1번 국도를 따라 2시간 정도 운전하면 되는 거리에 있다.
 

한 가족이 성당을 찾았어요 이들에게 가톨릭은 종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듯 했어요. 성당으로 걸어가는 길, 할어버지, 엄마와 딸의 뒷모습이 편안하게 보였어요.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이 파티마 대성당의 종탑입니다. ⓒ 이창희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의 양치기 소년, 소녀들에게 나타난 성모 마리아는 그들에게 이 세계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20세기에 발현한 기적은 기록을 남겼고, 세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전해졌다. 공학을 전공한 사람인지라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들에만 속해왔기 때문인지, 기적은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여전히 세상을 채우고 있고, 나 자신의 의지로 '기적의 공간'을 찾았다.
 

성지의 예배당에서 예배가 진행중이었어요. 신부님과 신자들, 성모가 발현하신 공간 주변으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의 진지한 기원이 가득한 시간이었네요. 그 안을 가득채운 기도와 찬송이 성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당신의 평화를 빕니다. ⓒ 이창희

 
모든 것이 놀라웠다. 성모의 발현을 목격한 양치기 소년, 소녀들의 무덤이 있는 성당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결혼식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을 행복을 기원하며 성당 밖으로 나왔더니, 갑자기 넓은 광장이 나타났고 광장의 여기저기에서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성모가 발현한 작은 예배당에서 진행 중인 미사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공간을 가득 채우는 찬송과 기도문의 낭송이 아름다웠다.

"당신의 평화를 빕니다."

미사를 마치시며, 신부님의 기도에 따라 주변의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눴다. 오늘 처음 만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로의 평화를 기원하는 시간이다. 인사를 나누던 사이,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여행 내내 낯선 곳에서의 불안이 일상적이었기 때문인지, 모든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공간에서의 온전한 위로는 그 자체로 평화로웠다.
 

예배당까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대성당으로 가는 길의 일부에 대리석이 깔려 있었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그 곳을 무릎으로 기어서 기도를 올리며, 성모발현 성지까지 가시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 이창희

 
나는 일순간 마음이 놓였고,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위로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안심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위협하지 않고도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켜낼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 무한한 신의 사랑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마주하는 사람들을 끝없이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현실이 불안했다. 나는 손에 쉰 것도 없으면서 무언가를 잃을까 봐 항상 조심해야 했다.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고, 남이 가진 것을 끝없이 빼앗으려 했다. 이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살아남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 채, 그것이 인간의 삶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삼위일체 성당으로 가는 유리문에 한글이 보였어요. 기적은 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의심을 받는 것도 사실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 안에서 신의 기적을 믿는 그들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 평화를 빌어주었습니다. 우리, 이렇게 살면 안될까요? ⓒ 이창희

 
"신이여, 사람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광장의 다른 한쪽에 새로 지어진 '성삼위일체 대성당'의 입구에서 반가운 한글을 만났다. 세계의 모든 언어로 쓰인 입구의 유리 문에 쓰인 한글이었는데,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배려의 근원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아마, 모두의 답은 다르겠지만 '인간의 탐욕'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마을의 축제에는 정어리가 한창이었어요. 동네 장날이었어요. 동네 중심부의 넓은 광장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관심을 끄는 물건들과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들이 정말 많았어요. 게다가, 정어리의 철인지 그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연기는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더라구요. ⓒ 이창희

 
다음 목적지인 마토지뉴스에 도착했다. 마토지뉴스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인 포르투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해변 마을이다. 포르투에서 숙소를 구하기 어려워 하루 머물기로 했는데, 운이 좋게도 마을 축제로 도시가 들썩이고 있었다.

마을 중심에 펼쳐진 장에서는 대서양에서 잡아들인 정어리 구이가 한창이었다. 우리가 전어를 구워 먹듯이 여기저기에서 그릴에 생선을 굽고 있었는데, 광장은 이미 냄새와 연기로 가득했다.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에 끌려, 시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계 어느 곳이든 그 마을의 축제에 참여하는 것은 여행을 전혀 새롭게 한다. 이방인을 반갑게 맞아준 그들의 친절에 감사한 밤이었다.
 

'해변의 비극'이라는 작품이었어요. 이 곳 출신의 작가가 그려놓은 작품을 토대로 만들어 놓은 작품을 배경으로, 오늘 이 곳의 태양과 작별 인사를 나누네요. 아름다운 바다였어요. 감사합니다. ⓒ 이창희

 
#이베리아반도 방랑기 #포르투갈 #파티마 #마토지뉴스 #성모발현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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