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에그 타르트인데, 포르투갈에서는 아니다

[이베리아반도 방랑기] 리스본에서 '파스텔 데 나타'를 배우다

등록 2019.06.23 11:20수정 2019.06.24 08:11
2
원고료로 응원
[기사 수정 : 24일 오전 8시 11분]

아침 일찍 일어났다. 렌터카를 예약할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시간을 엉망으로 정해 놓아서 10시까지 리스본에 도착해야 한다. 포르투에서 리스본까지는 세 시간이 걸리는 길이라, 아침 일찍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6시 반에 운전을 시작했는데 300여 킬로미터를 가야 했다. 월요일 아침인데 고속도로에 차가 많은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휴일을 마치고 복귀하는 인파려니 했다(나중에 리스본 공항에서 오늘이 국경일인 '포르투갈의 날'이라는 얘기를 듣고서야, 의문은 풀렸다).
  
아무것도 못 먹고 출발했으니,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기로 한다. 포르투갈의 도로 시스템은 우리와 매우 비슷하다. 휴게소도 무척이나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꽤 괜찮은 식사도 가능하다.

다른 날보다 단체 여행객이 많아서 줄을 서는 데 한참 걸리기는 했지만, 주문한 메뉴는 마음에 들었다. 커피와 토스트, 오렌지 주스에 포르투갈에 가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파스텔 데 나타(Pastel de Nata, Pastry with Cream)'를 추가했다. 바로 구워주는 토스트와 갓 뽑아진 에스프레소는 정말 마음에 든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일까요? 구글맵이 숙소까지 가는 길을 이렇게 알려주네요. 가방을 끌고 가는 길을 알려주면 편할텐데, 하필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 길이라서 그대로 주저앉아 울 뻔 했답니다. 그래도, 결국, 계단은 끝이 났고, 숙소까지는 무사히 도착했어요. ⓒ 이창희

       
다행스럽게도 차량 반납을 약속한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고, 리스본에서의 온전한 하루가 허락되었다. 숙소까지 가는 길이 온통 계단이라 힘들긴 했지만, 지나치며 만난 수많은 친절 덕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주인장이 친구들 몇몇과 함께 사용하는 '공용 주택 (Share house)'의 방 하나가 나에게 허락되었다. 예쁘고 깨끗한 방이었다. 마음에 든다. 아직 체크인을 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일단 짐가방만 맡겨두고 거리로 나왔다.
 

눈부신 풍경이예요! 주황색 지붕과 눈부시게 하얀 벽이, 멀리로 보이는 옥색의 대서양과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라니, 놀라웠어요! 게다가, 여기저기 만개한 화려한 색의 꽃들의 향기까지 더해지니, 비현실적이더라구요. 꼭, 가보세요! ⓒ 이창희

 
여행자의 가장 큰 적은 '나의 짐'이다. 짐을 숙소에 버리고 나왔더니 마음도 훨씬 가벼워졌다. 다시 만난 도시의 표정은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이름 모를 꽃들이 뿜어내는 향기는 도시의 곳곳을 더욱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서 처음 만난 풍경이, 광장을 채우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여유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는 친절이 좋았다. 멀리로 보이는 테주강의 옥색 물빛은 주황색 기와가 올려진 하얀 집들과 대비되어 선명한 풍경을 만들어냈다(바다로 보이던 넓은 물이 강이라는 것이 놀랍다). 풍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길거리 카페의 커피까지 근사하다니, 반칙이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뻔했다. 다행이다.
 

리스본의 다양한 교통수단도 유명하죠? 트램, 버스, 툭툭도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저기 보이는 전차일꺼예요. 가끔 고장도 나지만 기사가 내려서 뚝딱 고치고는 그대로 운행을 하더라구요. 골목골목을 거침없이 달리는 전차가 리스본의 상징인 이유를 알겠더군요! ⓒ 이창희

  
리스본에서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파스텔 데 나타'를 만드는 수업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시내의 빵집에서 진행되는 수업에 신청을 하고, 그전에 포르투갈 어로 쓰인 어린 왕자를 사기 위해 서점을 몇 군데 찾아다녔다. 오늘이 공휴일이라서인가 서점이 몇 곳이나 문을 닫았길래, 아쉬워 하고 있었는데 간신히 한 곳을 찾았다. 1732년부터 서점이었다는 그들의 역사가 부러웠고, 수많은 판형의 어린 왕자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어려웠다.

"이 수업에 왜 참가하게 되었어?"
"얼마 전에 마카오에 갔던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포르투갈 식으로 만들어진 '에그 타르트'를 먹었어. 정말 맛있었어. 그래서, 리스본에서 한 번 배워보고 싶었어."



약속 시간이 되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소개를 끝낸 후, 선생님이 수업 참가 이유를 묻길래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는 이때까지도 '에그 타르트'가 그들의 '파스텔 데 나타'와 다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후로 계속 '너의 에그 타르트'라며 놀려댔다.

내게 익숙했던 에그 타르트는 기존 타르트에 커스터드 크림이 채워진 것이고, 오늘 배우기로 한 것은 프랑스 식 페이스트리를 파이지 대신 사용한 것이 다르다면서 말이다. '파스텔 데 나타'라는 이름도 '크림이 채워진 페이스트리 (Pastry with cream)'라는 뜻이란다. 

수업은 모두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단계는 밀가루, 소금, 물에 마가린을 섞어서 반죽을 하여 페이스트리를 만들었고, 두 번째 단계는 우유에 설탕, 시나몬, 레몬 껍질을 섞다가 계란 노른자를 섞어서 달콤한 크림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는 파이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파이 틀에 넣고 성형을 한 후 만들어 놓은 크림을 채워서, 오븐에 구웠다. 갓 구워진 '파스텔 데 나타'는 정말 고소하고 달콤했으며, 커피랑 정말 잘 어울렸다.

"오늘 수업에 참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잘 알겠지만, 가장 맛있는 '파스텔 데 나타'는 막 구워낸 것이에요. 즐겁게 즐기세요!"
 

'파스텔 데 나타'를 배웠어요! '에그 타르트'가 아니라고 어찌나 구박을 하시는지요. 패이스트리 지를 사용하여 바삭하게 부서지는 느낌이 '파스텔 데 나타'의 상징적인 맛이라고 하셨어요. 수업을 통해 만들어낸 '내가 만든 파스텔 데 나타'를 베어무는 그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아요. ⓒ 이창희

수업을 마치고 났더니, 이번 여행이 정말 끝난 것만 같다. 이베리아반도를 떠돌아다니는 동안 지치지도 않고 즐겼으면서도, 이렇게 여행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또 다시 서운해졌다. 아쉬움에 포르투갈의 날을 맞아 밤을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 포트와인을 한 잔했다. 이 밤이 조금은 더 길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날 밤의 풍경이 아쉬워요. 국경일의 밤이어서 그랬는지, 사람들이 늦은 밤에도 거리를 떠날 줄을 몰랐어요. 저도 이 풍경 안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오늘이 가는 것이 이렇게나 아쉽네요. ⓒ 이창희

  

여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번 여행도 무척이나 특별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창희

 
덧붙이는 글 - 6월 11일, 몇 번의 경유가 필요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6월 1일)을 시작으로 네이션스 리그 결승전 (6월 9일)으로 이어진 이번의 여행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부족한 여행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베리아반도 방랑기 #포르투갈 #리스본 #파스텔 데 나타 #수업참관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