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 투성이인 아빠... 나는 그 말이 서글프다

[나를 붙잡은 말들] 자식에 대한 무한한 신뢰

등록 2019.06.20 14:03수정 2019.06.2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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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를 붙잡은 말들'은 프리랜스 아나운서 임희정씨가 쓰는 '노동으로 나를 길러내신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퇴근길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에 계신지 장소를 묻고, 뭐 하고 계신지 안부를 묻고, 식사는 하셨는지 허기를 묻는다.

"집."
"그냥 있어."
"밥 먹었다."


짧은 대답을 들으며 생각한다. 오늘 아빠가 일을 안 나가셨고, 집에 혼자 계시고, 밥은 안 드셨겠구나. 나는 가끔 부모처럼 묻고 자식처럼 해석한다.

"아버지, 오늘은 왜 일을 안 나가셨어요?"

"지난번에 하던 일은 일주일짜리였고, 며칠 있다 또 연락을 준다고 했어. 이제 힘들어서 큰 건 못하고 째깐한 것만 겨우 한다. 힘들어 죽겄다."

"아버지, 아픈 데는 없나요?"

"이제 나이가 있응께 다 아프지. 엉치뼈가 아프고, 오늘은 하루 종일 잠만 자서 허리가 아프다. 아파 죽겄다."

"아버지, 식사는요?"

"아까 아침 먹고, 엄마는 어디 갔는지 나가서 안 들어오고... 이따 먹어야지. 배고파 죽겄다."


짧은 대화 속에서 아빠는 세 번이나 '죽겄다'를 내뱉었다. 일을 해도 아프고 안 해도 아픈 날들.

아빠는 일이 없어 쉬는 날이면 잠을 오랜 시간 주무신다. 습관 때문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셨다가 일이 없다는 것을 몸이 알아차리면 다시 주무신다. 그렇게 잠시 주무셨다가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들어와 낮잠을 주무신다. 오후 늦게 내가 전화를 하면 멍청이같이 하루 종일 잠만 잤다며 멋쩍게 웃는 아빠.

"아버지, 왜 주무시는 게 멍청이 같나요. 피곤해서 그런 거지요."

"그래도. 멍청이같이 잠만 잔다. 일이 없응께. 멍청이같이 잠만 잔다."


아빠는 자신의 피곤이 멍청하다 생각한다. 일이 없고 잠만 자는 자신이 멍청한 것이라고 자책한다. 일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 자꾸 멍청해지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 ⓒ

아무것도 모를 수밖에 없는 아빠

시끄러운 공사 현장이 아닌 조용한 집에서 통화를 하니 오랜만에 내 말귀도 잘 알아 듣고 속 마음도 얘기하는 아빠. 그렇게 대화가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문득 얼마 전 엄마에게 한 질문이 생각나 아빠에게 똑같이 물어본다.
 
"아버지, 다시 태어나면 뭐 하고 싶나요?"

"뭘 뭐하냐. 몰라. 그런 거 몰라."

"아버지, 왜 모르나요. 다른 일 하고 싶은 거 없나요?"

"몰라. 왜 묻냐. 그런 거 모른다."
 

다시 태어나면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엄마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했는데, 아빠는 모른다고만 한다. 안 하고 싶은 마음과 모르겠는 마음은 같은 마음. 둘 다 낯설다는 것이다. 지금의 삶, 지금의 일 외에 다른 것들은 생각해 볼 겨를도, 마음도, 여유도 없었다는 것이다.

재차 물어도 모른다고만 하는 아빠의 대답이 조금 서글프다. 나는 그 질문을 그만 묻기로 한다. 아빠와 주거니 받거니 오랜만에 대화가 되는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말할까 싶어 내 마음을 전한다.
 
"아버지, 너무 고생 많이 했잖아요..."

"아야! 부모는 원래 다 그런 것이야. 너한테 더 못 해준 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지."
 

결국 나는 운다. 아빠도 원래 부모는 아니었잖아요. 원래 다 그런 게 아니잖아요. 나는 울고야 만다. 귀가 안 좋은 아빠는 대화가 길어지면 말귀를 못 알아듣고 자주 딴소리를 하는데 오늘따라 또박또박 내 말도 잘 이해하고 대답도 한다. 왜 그러는 걸까. 정말 하고 싶은 말이라 그런 걸까. 나는 아빠와 대화가 되니 눈물이 난다. 더 슬퍼지기 전에 엄마에게 했던 똑같은 질문을 한 마디 더 보태본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 이야기 글 쓰는 거 괜찮나요?"

"글로 쓴다고? 책 보는 거? 그려, 네 알아서 해라!"


네 알아서 해라. 평생 수 없이도 많이 들었던 아빠의 그 말이 오늘따라 유독 든든하게 들린다. 자라오며 내가 무언가를 한다고 했을 때도, 무언가를 그만한다고 했을 때도 아빠는 항상 나에게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알아서 했고, 알아서 잘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땐 그 말이 자신의 삶도 버거워 그저 나를 내버려 두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보니 믿음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믿지 못할 때 자꾸만 끼어들지만, 믿음이 생기면 지켜볼 수 있게 되니까.

암시롱 안 해!

자식에 대한 신뢰. 든든한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이 멈춘다. 기분이 좋아져 한 번 더 물어본다.
 
"아버지 이야기 책으로 나오는 거 정말 괜찮나요?"

"그거 뭐. 암시롱 안 해!(아무렇지 않다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엄마와 똑같은 대답이 들려온다. 암시롱 안 해. 엄마와 아빠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암시롱 안 한다. 엄마는 딸을 위해 사는 것이 암시롱 안 하고, 아빠는 자식을 위해 자기가 고생하는 것이 암시롱 안 한다. 그리고 나는 부모에게 그 어떤 것을 해도 암시롱 안 한 존재다. 다 괜찮아지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이제 웃음이 난다.

"암시롱 안 해!"

내가 가끔 부모 생각에 마음이 어두워질 때 곱씹어야 하는 말, 글을 쓰다 부모의 기억 앞에 슬퍼질 때 새겨야 하는 말, 내가 나를 생각할 때 다짐해야 하는 말이다.

"아버지, 저도 다 암시롱 안 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www.brunch.co.kr/hjl0520)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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