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하는 일을 마음이 모르게 할 수는 없다

[쓸고 닦으면 보이는 세상④] 청소는 육체노동을 넘어서는 일

등록 2019.06.20 09:35수정 2019.07.1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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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원은 육체노동자다.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것은 몸이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허리를 쓰고 무릎을 굽히고 어깨를 돌리고 팔에 힘을 주며 손목을 움직인다. 물론 머리도 쓴다. 무엇이 제일 급한 일인지, 일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더 좋은 방법은 무엇인지, 혹시 빠뜨린 일은 없는지 등 여러 가지를 머리로 생각한다. 그렇기는 해도 실제로 일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역시 몸이다.


내가 청소 일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골치 아프게 머리 쓰는 일 없이 몸만 쓰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여서 일한 만큼 결과가 그대로 나타나기에 머리 싸맬 일도 속 끓일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다섯 명의 고객을 만나 영업을 한다고 해서 판매가 모두 성사되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미화원은 다섯 개의 변기를 닦으면 변기가 모두 깨끗해진다는 게 나에겐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청소가 몸과 더불어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청소일은 몸만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청소한 곳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 Pixabay

 
면접관에게도 큰소리 쳤듯 나는 청소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있었다. 열심히 청소한 뒤 깔끔하고 청결하게 변화된 공간을 바라보면 보람과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집이 아닌 아트센터를 청소하면서는 그 보람과 기쁨을 느낄 새가 없었다.

다섯 개의 변기를 닦으면 정확히 다섯 개의 변기가 깨끗해지기는 했지만, 한 시간도 채 못 돼서 다시 더럽혀지는 일이 허다했다. 힘들여 솔로 문지르고 수건으로 닦아서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청소하자마자 누군가 곧장 들어가 온통 배설물로 도배를 해놓고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드넓은 로비 바닥을 밀고 닦아서 얼룩과 먼지가 하나도 없는 완벽한 상태를 만들어놓으면 금세 누군가가 흙 발자국을 도장 찍듯 선명하게 남겨놓고 갔다.


어느 순간 나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내가 아트센터를 청소하는 이유는 그 곳에 사람들이 오기 때문이고,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이 오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청소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오는 게 싫어졌던 것이다.

내가 청소한 곳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직원도 관객도 아니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꼭 청소 시간에 와서 화장실을 사용한 뒤 요란한 흔적을 남기고 가는 사람을 볼 때면 얄미운 마음이 들어서 '청소 중 사용금지'라는 팻말이라도 걸어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변기를 닦는 이유는 변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매일 아침 자기 집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아트센터에 들러야 하는 그 사람의 사정은 얼마나 딱할지를 헤아려 보았다.

청소란 사물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인데, 나는 잠시 착각하고 있었다. 새하얗게 빛나는 화장실을 보며 뿌듯해 할 것이 아니라, 급한 볼 일을 보러 들어가는 사람들, 더러워진 손을 씻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뿌듯해 해야 한다고 나 자신을 타일렀다.

마음을 담아야만 몸도 제대로 움직인다
 

미화원들의 몸짓과 손길엔 해주려는 마음, 돌보는 마음이 들어가 있다. ⓒ Pixabay

 
오랫동안 미화원으로 일했던 분들은 이미 마음을 써서 일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아니, '터득했다'는 표현은 사실 적합하지 않다. 힘써 몸으로 하는 일에 마음이 함께 쓰이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잠시 동안은 내가 내 몸을 속여 우러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머리를 속이는 일은 가능하다. 머리를 반복해서 속이면 속는 줄도 모르고 속아 넘어간다. 그러나 몸은 속일 수가 없다. 오히려 머리를 속이거나 감정을 속이다보면 결국엔 몸이 말해준다.

그래서 그 분들의 몸짓과 손길엔 해주려는 마음, 돌보는 마음이 들어가 있다. 요청한 비품의 결제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아 필요한 세제가 없으면 자기 돈으로 사가지고 와서 쓴다.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으니 청소밖에 더 하겠냐며 무겁게 몸을 일으키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가끔 불합리해 보이는 지시가 내려올 때가 있다. 미화원들은 모두 그 불합리를 알고 있고 불평도 한다. 하지만 초짜인 내가 그 불합리를 어떻게 고칠까 궁리하는 동안, 다른 분들은 불합리한 지시에 어떻게든 마음을 욱여넣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이렇게 해놓으니 좀 다르네... 뭐, 안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물론 이런 자세는 부조리하고 부당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무력화시키기는 한다(이 주제는 다음에 다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그 누구도 '돈 벌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별 수 있나?'와 같은 신세 한탄을 하지 않는다. 내 뜻과 너무도 다른 일을 해야 할 때에도 그 일에 마음을 담기 위해 애를 쓴다. 마음을 담아야만 몸도 제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몸을 낮추려면 마음도 낮추어야

감정노동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는 다른 감정을 표현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내면의 불화로 고통 받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몸도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게 된다면 무척 고통스러워진다. 그런데 미화원 같은 3D업종의 경우,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처음부터 몸이 원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마음을 담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러운 곳을 치우면서 마음 없이 기계처럼 몸만 움직일 순 없는 일이다. 밑바닥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낮추지 않으면 몸도 충분히 낮춰지지 않는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할 수는 있어도 몸이 하는 일을 마음이 모르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육체노동 #3D업종 #미화원 #청소원 #몸과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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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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