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운동은 나에게 처절한 실패를 선사했다

[운동하는 여자 22] 트레일 워크

등록 2019.06.19 15:40수정 2019.06.1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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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모든 걸 잃은 것과 마찬가지인 셰릴이 장장 4300km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를 완하려 한다. 그 끝엔 무엇이 있으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나는 변해야만 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예전 모습을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강한 의지와 책임감, 맑은 눈을 가진 사람.' 

셰릴 스트레이드가 쓴 에세이 <와일드>는 미국 서부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3대 트레일 중에서도 가장 길고 험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PCT)을 완주한 여성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엄마의 죽음과 약물 중독, 이혼 등으로 길을 잃게 되자 26세에 돌연 4285Km나 되는 산길을 걷기로 한다. 배고픔과 부상, 악천후, 동물의 습격, 강간의 공포 등에 맞서서 몸집보다 큰 배낭을 메고 사막과 황무지, 낭떠러지를 지나던 주인공의 뒷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이 남았다. 

애석하게도 나는 이 책과 동명의 영화를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없는 처지다. 그것은 이 작품이 실패의 기억을 들추기 때문이다. 포장되지 않은 자연의 길을 걷는 아웃도어 스포츠인 트레일 워크(Trail Walk), 이 운동은 나에게 처절한 실패를 선사했다. 여정의 시작은 절친한 친구 네 명이 팀이 되어 지리산 둘레길 100㎞를 38시간 안에 완주하는 대회에 나를 팀원으로 초대하면서였다. 완주를 목표로 훈련했으나 나는 대회가 열리는 지리산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불운한 앞날을 알지 못하는 초심자는 무턱대고 팀원들을 따라나섰다(그들은 나와 달리 모두 산행 고수였다). 나는 첫 번째 훈련에서부터 아웃도어 스포츠란 이런 것임을 호되게 배웠다. 이른 아침의 오대산은 눈에 잠겨 있었고 국립공원 초입을 걷는 동안 가벼운 눈발이 날렸다. 겨울 산을 오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배 속은 텅 비었고 강원도의 칼바람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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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앞날을 알지 못하는 초심자는 무턱대고 팀원들을 따라나섰다. 본격적인 등산로에 들어서면서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체념이 걸음마다 쌓여갔다. 원래는 계단이던 가파른 비탈에 눈이 쌓이면서 단단한 얼음길이 만들어졌다. 나는 첫 번째 훈련에서부터 아웃도어 스포츠란 이런 것임을 호되게 배웠다. ⓒ Pixabay

 
본격적인 등산로에 들어서면서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체념이 걸음마다 쌓여갔다. 원래는 계단이던 가파른 비탈에 눈이 쌓이면서 단단한 얼음길이 만들어졌다. 미끄러운 경사면을 아이젠과 지팡이로 찍으면서 정상까지 올라갔다. 패딩으로 감싼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지금도 눈꽃이 활짝 핀,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것처럼 생경하고 환상적인 풍경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보다 한층 더 생생한 것이 있으니 바로 '백색의 분노'다. 그날 나는 노르딕 누아르 혹은 스칸디나비아 누아르라 불리는 소설 장르의 기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평화롭기만 할 것 같은 북유럽의 설원을 배경으로 잔혹한 스릴러가 넘쳐나는 이유가 뭐겠는가. 하얀 눈을 적시는 피가 미학적으로 완벽하기도 하지만 지독한 추위와 눈이 평범한 한 인간을 극으로 내몰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오대산 등산로가 짧은 탓에 팀원들을 산 아래로 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훈련은 계속됐다. 계절이 바뀌고 추위와 눈 등의 훼방꾼이 사라지자 반사회적인 인격도 자취를 감추었다. 이때부터는 주말마다 모여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다. 봄에 산길을 걷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힘에 부치기 전까지만 걷는다면 말이다. 등산은 이보다 더 고생스럽긴 하지만 역시 성취감과 함께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모두 결승점이 있을 때의 일이다. 끝이 없는 길이 펼쳐지고 훈련 때마다 열두 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모든 운동은 조금씩 자학적이다. 그러나 트레일 워크는 다른 운동과 달리 자학의 끝을 보여줬다. 손가락이 붓거나 발이 아프거나 머리가 어지러운 것보다 미지의 지형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어떤 지형이 어디서 어떻게 펼쳐질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쉴 새 없이 오르막길을 올라왔는데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인생을 등산에 빗대는 표현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도 깨달았다. 오르막을 오르면 보상으로 내리막과 평지가 나온다고?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현실은 평지나 내리막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하산하는 코스에도 오르막이 있기 마련이고 비교적 완만한 평지를 걷는 것도 몸이 완전히 지친 다음에는 고통스럽다. 그렇다면 고통은 언제 끝나는가? 길이 끝나야 고통도 사라진다. 

대회를 한 달여 앞둔 주말 총 42.1Km, 약 6만 2천9백 걸음, 497층 높이를 걷고 나는 장렬하게 낙오했다. 며칠이면 가실 줄 알았던 무릎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무릎에 염증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고 이유를 묻는 의사에게 '너무 많이 걸었다'고 대답했다. 소염 주사를 두 번 맞고 통증은 사라졌지만 훈련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나를 대신해서 트레일 워크의 초고수를 영입한 우리 팀은 완주에 성공했다. 특히 내 절친한 친구는 여성 참가자 중에서 8위를 기록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다시는 트레일 워크에 도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음에도 내가 그 고생스러운 운동에 매혹됐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엄청난 고통과 인내로 점철된 트레일 워크의 단점을 뒤집으면 그것은 그대로 장점이 된다. 

트레일 워크의 장점이자 단점은 육체와 정신을 남김없이 쏟아붓는 운동이라는 데 있다. 덕분에 어려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사실 PCT도, 지리산 둘레길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성공은 못하더라도 시도는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출발점으로 가서 한 걸음이라도 떼면 된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도전하지 않는다. 성공이 보장된 쉬운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려운 것은 왜 어려운가. 우리는 왜 어떤 일을 어려운 것으로 분류하고 감히 넘보지도 않는 걸까? 그 일이 대단한 능력을 요구해서인가 아니면 접근과 시도 자체가 커다란 장벽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인가? 하나의 장벽을 넘지 못하면 제각각의 이름이 붙은 장벽이 빼곡히 들어선다. 취약함이나 공포, 무지, 불안이라는 이름의 장벽이.  

수많은 장벽을 넘은 셰릴 스트레이트는 '와일드'의 서문에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고 썼다. 나는 이미 길을 잃었고 단단히 겁을 먹었다. 그렇다면 언제 다시 길을 만들 것인가. 쉽지 않은, 어려운 무엇이 너무 간절할 때, 그때 다시 길을 만들 것이다.
#트레일워크 #아웃도어 #페미니즘 #운동하는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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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여자>를 썼습니다. 한겨레ESC '오늘하루운동', 오마이뉴스 '한 솔로', 여성신문 '운동사이' 연재 중입니다. 노는 거 다음으로 쓰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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