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잘 팔릴까?" 걱정한 책

'보리 세밀화 큰 도감'을 만든 사람들... 200여 명이 25년 동안 제작

등록 2019.06.23 11:20수정 2019.06.2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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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한 편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호기심이 생겼다. 이런 방대한 역작을 탄생시킨 윤구병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농부철학자의 삶이란 어떤 걸까? 이 부분은 이미 오마이뉴스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관련기사 : 소년농부에서 철학교수, 다시 농부로 "제 몸을 움직여라, 절망할 틈이 없다" http://bit.ly/8nVqfz

글을 읽다 보니 사연이 궁금했다. 윤구병 선생님은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을까? 그들은 책을 만들 때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을까? 인터넷으로 얻는 정보만으로는 제 성에 차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캡쳐2019.05.19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에는 보리출판사의 '보리 세밀화 큰 도감'을 추천하는 글이 올라왔다. ⓒ 문재인대통령 페이스북

 
앞뒤 재지 않고 일단 머리부터 들이밀어 곧바로 보리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기획편집자를 만나 궁금해 했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생명체들과 교감하는 느낌으로' 25년간 진행해 온 거대한 작업의 끄트머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남달랐다.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 도감 시리즈는 수천 년 동안 우리 땅에서 살아온 동식물을 기록하고 있다. 세밀화와 함께 학명, 우리 이름, 북녘 이름, 영명, 분류 등 다양한 정보를 함께 담고 있는 이 도감은 △바닷물고기 도감(158종) △동물도감(223종) △민물고기 도감(130종) △새 도감(122종) △버섯도감(125종) △식물도감(366종) △약초 도감(151종) △나비 도감(219종) △나무 도감(137종) △곤충 도감(144종)까지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마다 책의 특성에 따라 천연기념물같이 보호해야 할 동식물 목록과 어려운 용어 풀이도 덧붙였다. 생명체마다 지닌 다양한 특성과 꼭 알아야 할 정보들도 알차게 담았다.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 도감>을 만든 보리출판사는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낼 가치가 있는지 생각하고 책을 만든다. 문 대통령이 추천한 이 도감 안에는 200여 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25년 동안 걸어온 세월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보리출판사에 펴내는 책들은 아이들이 자연을 통해 생명을 존중하고, 자유롭게 평등한 삶을 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지난 5월 말, 보리출판사의 김용란 기획실 대표와 김소영 기획실 과장을 만나 큰 도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리 세밀화 큰도감. ⓒ 보리출판사

 
- 사진과 세밀화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식물 세밀화를 예로 들면 잎, 꽃대, 줄기, 열매의 모습을 한 장에 모두 담을 수 있어요. 숨겨진 뿌리 부분까지도 보여주죠. 하지만 사진은 각각 포커스를 맞춘 사진들이 필요해요. 자세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 수많은 개별 사진들을 봐야 해요. 사진은 포커스를 맞춘 부분만 자세히 볼 수 있다면, 세밀화는 모든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자세히 그려내요. 넓은 시야로 관찰할 수가 있는 거죠. 찰나처럼 한순간에 포착한 사진으로는 미처 담아내지 못한 부분을 따뜻한 시선으로 정밀하게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이 그림을 봤을 때 따뜻한 감성을 전달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 도감> 10권을 펴내며 보리출판사를 만든 초대회장 윤구병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

"카메라 화소가 늘어나고, 컴퓨터의 기능이 향상되면서 이제까지 사람 눈으로, 사람 손으로 이루어지던 세밀화 작업은 막바지에 왔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기계적인 작업은 아무리 정밀해지고 오차가 없어지더라도, 그리고 '공조'와 '공명'의 효과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은 다른 생명체들과 하나가 되는 느낌에서 오는 '공감'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보리출판사 인터뷰보리 세밀화 큰도감을 만든 보리출판사 기획실 대표 김용란 ⓒ 백하연

      
보리가 처음 세밀화 작업을 시작할 때는 참고할 수 있는 국내 자료가 거의 없었다. 책에 담을 동식물은 우리나라에 사는 종인데도 참고할 자료는 유럽, 미국, 일본 자료가 다수였다. 우리 것과 어떻게 다른지 확인할 길도 없었다. 온 나라 산과 들로 바다로 돌아다니며 직접 사진을 찍고 취재할 수밖에… 보리 세밀화는 발로 뛰면서 하나하나 취재한 결과다. 그래서 세밀화마다 언제 어디서 채집했는지 밝혀 두어 사는 곳을 알 수 있게 했다.

"한 종만 파고 계신 화가분들이 말씀하시기를 도감은 자료만 보고서는 그릴 수 없다고 해요. 기본이 현장 취재예요. 특히 <새 도감> 같은 경우 동물의 뼈 구조를 알지 못하면 정확히 그릴 수 없기 때문에 취재가 반드시 필요했어요. <바닷물고기 도감>을 그리신 조광현 선생님 같은 경우는 물고기가 바다에 담겨 있는 빛깔과 밖에 나와 있는 빛깔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 스킨스쿠버를 배워서 취재를 하셨죠. 어항에서 직접 물고기를 기르기도 했고요."

- 많은 작가들이 참여했을 것 같아요.
"그림, 글쓰기 작가만 해도 대략 58명 정도예요. 감수자와 편집자를 합하면 200명 가까이 됩니다. <곤충 도감>만 해도 한 사람이 모든 곤충을 알고 그리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각종 곤충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자문을 구했어요. 지방에서 살고 계신 분들 가운데에 저희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까지 치면 굉장히 많은 숫자가 저희에게 도움을 주신 거죠.

1994년 <달팽이 과학 동화>에 세밀화를 처음 선보였는데요, 그때 같이 작업한 다섯 분의 화가들이 모여 도감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도감> 동식물 도감을 펴냈고 작가들의 전공 분야를 세분화해서 큰 도감 작업을 진행했어요. 일러스트 수업을 진행하고 공모전도 열면서 작가들을 개발하고 한 분 한 분 찾아 나서기도 했습니다."

- 약초 도감의 지식은 어떻게 얻으셨나요?
"우리 몸을 의학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약초도감>이에요. 이 도감을 그리신 이원우 선생님은 작업을 할 때 약초를 그려야 하는 마음으로 약초원을 가셨어요. 보통 약초는 보기 드물고, 못 보던 것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보니 우리 주변에 흔하게 심어진 들풀 같은 것들이 약초원에 심겨 있다고 해요. 이렇게 약초는 정말 전문 분야이기 때문에 한의사나 의학 관련 종사자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나비는 워낙 취재가 어려워서 처음부터 학자들과 호흡을 맞춰갔어요." ⓒ 보리출판사

 
- 나비는 계속 움직이는 곤충이라 그리기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작업을 진행하셨나요?
"저희는 원래 작업 방식은 취재하고 채집하고 직접 길러왔는데, <나비 도감>에서 방식을 좀 바꿔봤어요. 나비는 워낙 취재가 어려워서 처음부터 학자들과 호흡을 맞춰갔어요. 기본 사진자료, 취재자료와 표본자료들을 중심으로 도감을 완성했죠. 오히려 표본을 활용하니까 보다 정확하고 풍성한 취재가 가능했어요. 수많은 특징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죠.

나비는 날개를 폈을 때와 접었을 때 모양이 달라요. 암수컷의 무늬도 다르고요. 또 완전탈바꿈을 하는 종이기 때문에 알 모양도 개체마다 다 달라요. 계절에 따라 무늬가 달라지는 종도 있고요.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하나의 개체에 그림이 많으면 8종까지 들어갈 정도로 넣을 것이 많아졌죠. 새로운 방식은 시간이 단축되고 훨씬 더 많은 양의 정보를 담을 수 있었기에 효율성이 높았어요."

- 작가들마다 고유의 그림체가 있을텐데, 한 책으로 엮어내려면 어려우셨겠어요.
"아무래도 작가마다 그림체가 다르기 때문에 결을 하나로 맞추긴 힘들어요. 터치가 강한 분이 있는가 하면 여리여리한 분도 있고 또 선을 중심으로 그리시는 분도 계시죠. 통일성을 갖기 위해 각자 작업해 온 그림을 놓고 합평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공통점은 있어요. 있는 것을 보고 그리고 정확하게 정보가 들어가도록 묘사를 하는 것이죠. 세밀화의 큰 장점 중 하나가 계속 사람이 지켜보며 그리기 때문에 감정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림마다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것도 그 이유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인 틀, 예를 들면 선이나 테두리를 쓰지 않는 것은 지키고 작가들 저마다의 화풍은 존중하고 있어요."

-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떤 방식으로 책을 전달한 건가요?
"도감은 전 보리출판사 사장님이셨던 윤구병 선생님이 직접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걸로 알고 있어요. 보리에서 자연과 아이들을 위해 이런 도감을 만들었으니 관심 있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내신 거죠. 회사에서 수익을 목적으로 한 홍보수단으로 보낸 건 아니었어요. 문재인 대통령의 글을 보고 홍보팀을 비롯한 저희 회사 직원들도 깜짝 놀랐죠. 이왕 대통령이 홍보한 책으로 알려졌으니 앞으로 도서관이나 공공 교육기관에서 보리 세밀화 큰 도감을 교육자료로 많이 활용해 줬으면 좋겠어요."
 

보리출판사보리출판사 2층 보리책방 ⓒ 백하연

   
동식물 세밀화 한 점을 완성하는데 수많은 시간이 걸린다. 기획에서부터 자료를 수집하는 사전 작업을 제쳐두고, 강아지풀 하나를 그린다고 했을 때 화가는 하루 8시간에서 꼬박 그려도 3주 넘게 걸린다.

여기에 글, 그림 전문 학자에게 감수를 받아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 도감 한 권을 만들게 된다. 그 기간이 적게는 5년, 많게는 7년까지 걸린다. 이렇게 보리출판사가 도감 편찬을 시작한 까닭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의 기초 정보이고, 아이들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고 나아가는 길에 징검다리를 놓자는 뜻에서였다.

"아이들이 자연으로 나가 놀면 좋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책으로나마 보면서 도감 속의 생물에 호기심을 갖고 친밀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생물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고 최상의 것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이 땅에 사는 동식물을 기록하고 보전하는 일은 우리 미래를 위해 나아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언제라도 해야 할 일이다. 누군가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누구도 하지 않고 가지 않은 이 길을 보리는 30년 가까이 한 길로 걸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글 : 백하연, 이정아, 조혜미, 조희신
사진 : 백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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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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