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신선을 만나고 미륵을 찾으러 가는 길 ③] 장제스의 고향, 장씨고거

등록 2019.06.23 12:43수정 2019.06.23 14:00
0
원고료로 응원

장씨고거 안내도 ⓒ 이상기

  
장씨고거는 계구진 섬계 하천가에 위치한다. 마을 바로 뒤에 무산(武山)이 있고, 그 뒤로 설두산 명승풍경구가 펼쳐진다. 그러므로 설두산에 가는 관광객은 이곳 장씨고거를 들르게 된다. 우리도 장씨고거를 보고, 멀지 않은 곳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다.

장씨고거를 보는데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다. 버스는 무령동로(武岭東路)와 백장로(百丈路)가 교차하는 사거리에서 우릴 내려준다. 여기서 서쪽으로 펼쳐진 도로가 무령서로다. 장씨고거는 무령서로를 따라 1㎞쯤 펼쳐져 있다.


장씨고거는 장제스의 고향마을이다. 무산 아래 함께 모여 살던 5개 성씨 중 장제스가 유명인물이 되면서 장씨고거로 불리게 되었다. 이들 5개 성씨(任, 宋, 單, 張, 蔣)의 조상들을 모시는 사당인 무산묘(武山廟)가 마을 입구에 있다.

1790년 지어진 건물로 그 후 여러 번 수리와 개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무산묘의 중앙에는 장제스의 아버지 장차오총(蔣肇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장차오총은 계구진의 10대갑부 중 하나로 옥태염포를 경영했다.
 

무령문 ⓒ 이상기

  
장씨고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을 입구의 무령문(武嶺門)을 지나야 한다. 무령문은 이문(里門) 역할을 한다. 2층 누각으로 1층이 아치형 문으로, 2층이 세 개의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산의 고개 마루에 있어 무령(武嶺)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다.

무령문을 지나면 길은 하천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그런데 무령문 왼쪽으로 소양방(小洋房)과 문창각이 있어 그곳엘 들르게 된다. 소양방은 1930년 양회(洋灰: 시멘트)로 지어진 집으로 소련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蔣經國)가 1937년 4월부터 그곳에 살았다.

소양방을 지나 언덕으로 오르면, 벽돌과 기와지붕에 유리로 창을 낸 2층 누각이 나타난다. 계구 10경의 하나로 여겨지는 문창각이다. 섬계 언덕에 자리 잡은 누각으로, 물과 자연이 어우러진 별장처럼 보인다.

1927년 12월 장제스와 쑹메이링(宋美齡)이 결혼 후 계구에 오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1층에는 회의실이 있고, 2층에는 이들 부부의 거실과 침실이 있다. 내부를 보기 위해서는 1층로 들어가 섬계쪽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문창각 ⓒ 이상기

  
1층 중앙에 옥황상제로 보이는 인물을 안치했고, 그 뒤에 선계를 표현한 그림을 걸었다. 양쪽으로 주련 형태의 시를 걸었는데, 앞의 시내를 금계수(錦溪水), 문창각을 도원가(桃源家)로 표현했다.


누각 2층에는 문창각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누각 앞쪽으로 나무가 무성하고 그 앞으로 섬계가 흐르고 있다. 정말 좋은 위치에 있어 조망하기 좋다. 하천 건너에는 5A급의 계구진 설두산 풍경구를 알리는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장씨종가 사당과 풍호방(豐鎬房)
 

장씨종사 ⓒ 이상기

  
문창각을 내려오면 현대적인 조형물이 하나 보인다. 피아노 치는 여인이다. 스테인리스로 만들었다. 길 건너 북쪽에는 장씨종사(蔣氏宗祠)로 불리는 사당이 있다. 사당 앞에는 충효전가(忠孝傳家)라 쓴 패방(牌坊)이 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외삼문이다. 그 중 왼쪽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안쪽에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그 앞으로 신사당(新祠堂)이 보인다. 2층 누각으로 1층에는 장씨 가문의 사료가 전시되어 있다. 2층이 제실로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당의 지붕 용마루 위에는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다. 그런데 사당의 창문은 모두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실용성을 추구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산문(山門)이 있고 그 안에 노사당(老祠堂)으로 불리는 옛날 사당이 있다.

노사당은 앞으로는 제대가 있다. 제대 양쪽으로는 우리의 동무와 서무에 해당하는 동상방(東廂房)과 서상방(西廂房)이 있다. 사당은 장씨고거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건물이다.
 

풍호방 정원 ⓒ 이상기

  
풍호방은 장제스의 아버지 장차오총이 살던 집이다. 주 문왕이 세운 수도 풍경(豐京)과 무왕이 세운 수도 호경(鎬京)의 이름을 합쳐 풍호방이 되었다. 이처럼 주나라 수도 이름을 당호로 사용한 데는 사연이 있다.

장차오총의 형제가 셋이었는데, 그들의 집이 하방(夏房), 상방(商房), 주방(周房)이었다. 장차오총이 막내라 주방이라는 이름의 집에서 살았다. 주방은 장차오총 사후 장제스와 그 동생 장루이칭(蔣瑞青)에게 상속되었다.

주방 중 장제스가 살던 방은 풍방이라 불렀고, 장루이칭이 살던 방은 호방이라 불렀다. 그러나 장루이칭이 일찍 죽음으로서 집의 이름이 풍호방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풍호방은 장제스의 어머니 왕차이위(王采玉)가 주로 살았던 집이다. 장제스는 아버지가 일찍 죽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더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풍호방은 앞쪽으로 정원이 잘 가꿔져 있고, 뒤쪽으로 건물이 들어서 있다.

소금가게의 이름이 옥태염포다 
 

옥태염포 ⓒ 이상기

  
옥태염포는 장제스의 할아버지 장쓰치엔(蔣斯千)이 1871년 문을 연 소금가게다. 1887년 장제스가 이곳 누방(樓房) 2층에서 태어났고, 1894년 장쓰치엔 사후 아들 장차오총에게 상속되었다.

1895년에는 다시 장제스의 형 장지에칭(蔣介卿)에게 상속되어 운영되었다. 그러나 1919년 장지에칭이 다른 사업을 벌이며 문을 닫게 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장제스가 1948년 다시 지은 것이다. 그때 장제스는 문간채 문 위와 벽에 청려(淸廬)라는 글자와 옥태염포원지(玉泰鹽鋪原址)라는 글자를 써 넣었다.

2층 누각형태의 집과 단층집으로 되어 있다. 각 층이 3칸으로 되어 있다. 주방과 화장실은 별도의 건물로 되어 있다. 이곳에는 장제스의 삶과 업적을 알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상가로 지어진 건물이어서 정원 같은 공간은 거의 없는 편이다. 1984년부터 일반에 개방되었다.
 

장씨고거 ⓒ 이상기

  
1949년 4월 24일 중국공산당의 인민해방군이 남경을 점령해 인민정부를 세움으로서, 장제스는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해 10월 1일 중국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고, 12월에 장제스는 눈물을 흘리며 대만으로 퇴각하게 되었다.

그 후 장제스는 더 이상 고향땅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어머니 왕차이위의 묘는 설두산 입구에 있는데, 공산당 정부에 의해 잘 관리되고 있다.

장제스는 진멘도(金門島)를 찾아 대륙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국제연합은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승인함으로써, 대만은 국가의 자격을 잃게 되었다. 장제스는 1975년 4월 5일 세상을 떠났다. 4월 7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신화사> 통신의 발표를 인용해, "국민당 반동파의 우두머리, 중국인민의 공적(公敵) 장제스가 4월 5일 타이완에서 병사했다"고 발표했다.

총통부를 재현해 놓고 돈을 번다
 

재현된 총통부 ⓒ 이상기

  
이곳 장씨고거 주변에는 학교, 상가. 예술원, 기념품점, 체험관 등이 형성되어 있다. 체험관에는 장제스 관련 건물, 유산 등이 진열되어 있고, 사진 등이 벽에 붙어 있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이들을 만져보거나 입어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더 특이한 것은 장제스와 비숫한 모습을 한 사람이 체험관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는 사실이다. 관광객은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한때 중국 최고의 지도자였던 장제스가 희화화되고 있는 것이다.

체험관에는 총통부 건물, 육군군관학교 건물이 있는데, 입체적인 그림으로 재현되어 있다. 탱크와 기관총, 소총과 군복 그리고 철모 같은 것은 실물이다. 그렇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의아한 것은 중국 공산당 정부에서 이러한 것을 허용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중국공산당 정부에게 장제스와 대만은 더 이상 적이나 경쟁상대가 아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요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양안간의 대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다. 그 때문에 동아시아 정세가 불안하다.
#장씨고거 #장제스 #문창각 #풍호방 #옥태염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