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전달하나

[저널리즘특강] 장해랑 전 EBS 사장 - 주제 ① 가짜뉴스 시대의 진짜뉴스, 다큐의 새로운 실험

등록 2019.06.24 17:29수정 2019.06.2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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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9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장해랑 하상윤 김준일 김태동 조홍섭 이태경 성일권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 기자 말

"다큐멘터리를 이야기하면, 여기 앉아있는 여러분이 "나는 기자인데 나와 다큐가 무슨 관계가 있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큐멘터리가 무엇이냐 하면 기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언론인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그것으로 얘기를 풀어가야 하는 직업입니다."

2017~2018년 EBS 사장으로 잠시 떠나 있다가 이번 2학기부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로 복귀할 예정인 장해랑 교수는 '가짜뉴스 시대의 진짜뉴스,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실험'이라는 주제의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다큐멘터리를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정의했다. 

다큐멘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눈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다큐는 기록하는 것이어서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의문을 표한다. 다큐를 국내에 도입할 당시 방송사에서 그것을 제작하는 PD에게 "우라까이를 심하게 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우라까이'는 일본말을 변형한 기자 사회의 은어로, 다른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적당히 바꾸어 자기 기사로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앞선 맥락에서는 'PD가 자기 마음대로 딴 짓을 한다'는 뜻이 된다. 
 

장해랑 교수는 다큐멘터리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라고 정의한다. ⓒ 김지연

 
장 교수는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라며 "객관적 주관이라는 특성을 띠고 있는 것이 다큐멘터리"라고 말했다. '객관적 주관'이란 말은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주관을 표현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내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주장을 하는 것이 객관적 주관이다. 장 교수는 "글쓰기에서 글 재료가 많아야 하듯이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하려는 주제를 설명하려면 주제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아야 하고, 그런 이야기는 사회적 상황, 개인 인터뷰, 팩트, 다른 사례, 온갖 실험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큐는 '오늘'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

"우리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는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들여다 보는 건 오늘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과거를 보지 않으면 오늘이 안 보이는 거죠. 예를 들어 동학운동부터 이승만을 거쳐서 전두환까지 넘어와야 지금 5.18이 제대로 보인다는 거죠. 아니면 이해 안 돼요. 대한민국 역사를 보지 않고는 왜 저런 짓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예요. 5.18은 일맥상통하게 진행되고 있는 역사의 맥락이거든요."

장 교수는 다큐가 주목해야 할 대상으로 '오늘'을 강조한다. 다큐멘터리는 현재를 기록한다. 그것을 직시하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무엇이 문제이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들여다봐야 하는데 역사적 맥락 등으로 현상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장 교수는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1929년 작품인 '이미지의 반역'을 예로 들었다. 
 

장 교수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통해 현상에 가려진 이면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장해랑

 
이 작품에는 '어떤 그림'과 함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문장이 들어 있는데, 한편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은 영락 없이 담배를 피울 때 사용하는 파이프 한 개다. 장 교수는 이 작품을 보여주며 "파이프 이후에 다른 것이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현상 뒤에 가려진 부분은 없느냐"는 것이다. 
 

장 교수는 다큐를 만들려면 치밀하게 현상의 이면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김지연

   
다큐의 본령은 현상의 이면 파악


그는 또 철거민과 경찰 6명이 희생된 '용산참사'를 추적한 '두 개의 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소개했다. 이는 용산 재개발 보상 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을 경찰이 새벽에 진압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작품에 피해자의 인터뷰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경찰 이야기만 나온다. 진압에 참여한 특공대원 진술에 따르면, 어느 날 위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는데 그것은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있는 철거민들을 진압하라는 것이었다. 특공대원은 '칠흑 같이' 어둡고 '유독가스와 화염에 싸여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의 현장은 '생지옥과 비교될 정도'라고 진술한다. 

"불이 더 크게 퍼지며 두세 명 대원이 불에 타면서 비명을 지르고 '안에 사람이 있어'하고 외쳤습니다. '못 빠져 나온 동료가 죽었겠구나', '철거민 농성자도 상당이 죽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경찰특공대 진술서는 결국 국가폭력 안에서 특공대는 가해자이며 철거민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은 의미가 없으며 경찰도 역시 국가 공권력의 피해자이며 공권력이 실제 어떻게 행사되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현상의 이면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일들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다큐멘터리가 필요한 이유다. 장 교수는 설명한다.

"유우성.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원이 간첩을 조작해버렸거든요. 가짜 간첩을 만들어버린 거예요. 그런 일이 21세기에도 진행되고 있었고 이것을 파헤친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판결 전말' 편이 못 나가다가 한 주 뒤에 나갔어요. 방송 못 낸다고 해서 싸우다가. 그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렇게 만든 게 '자백'이라는 작품이고. '추적 60분' 같은 것을 탐사 다큐멘터리라고 말하는데, 표피적 흥미 위주로 접근하고, 과장해석하고, 사생활 침해하고,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심층분석, 대안, 소재 다양성, 객관성 중시, 지속성 등이 갖춰져야 합니다. 강력한 주장을 이야기하고 진실의 이면을 가리고.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진실을 찾을 것이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PD 지망생뿐 아니라 기자 지망생도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다. 언론계가 영상도 다룰 줄 아는 기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 김지연

 
다큐 제작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실험

그는 다큐멘터리에 일어나는 새로운 실험을 이야기했다. 다큐가 전통적으로 현실에 접근하던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형식이 아닌, 장르의 경계를 넘어 다큐가 제작되고 있다. VR을 삽입하거나 드라마를 도입하고, 체험, 리포트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진다.

"다큐멘터리는 팩트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 관한 메시지를 던지고 싶을 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는 방법도 있다는 거죠. 메시지는 다른 형태라는 거죠. 중요한 것은 팩트만이 아니라, 내가 말하려고 하는 부분을 어떤 도구에 담아 전달할 것인가로 바뀌고 있다는 거죠. 진짜와 가짜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어요."

그는 "BBC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통해 딱딱한 이야기도 감정을 동원해 쉽게 표현한다"고 말했다. 나영석 PD의 예능은 상황을 던져주고 관찰한다는 점에서 대개 다큐멘터리와 비슷하다. 다큐는 다른 장르와 결합하기 시작하면서 무거움을 벗고 가벼워졌다. 그는 새롭게 등장한 유형으로 1인칭 다큐, 체험 다큐, 페이크(모크) 다큐, 퓨전 다큐, 애니메이션 다큐 등을 제시했다.

1인칭 시점 제작은 90년대 캠코더가 널리 보급돼 누구나 영상을 찍게 되면서 이뤄졌다. 이전에는 전문교육을 받은 이들의 전유물이었다면, 개인이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카메라에 담는 비디오 일기처럼 제작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장 교수는 영화 '디어 평양'을 예시로 사적 다큐멘터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북한을 가족이나 내 사연을 통해 작품 속에 담아낸다. 개인 삶 속의 현장을 의제로 등장시킨 것이다. 이 밖에 체험 다큐는 메시지 목표를 설정하고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시청자를 설득한다. 페이크 다큐에는 '이것이 다큐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허구와 사실의 경계에서 형식의 변화로 어떠한 메시지든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이 고민해야 하는 집단참여형, 즉 크라우드소싱 다큐멘터리가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전세계에 띄우는 거예요. 가장 행복한 순간을 찍어 보내, 너희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찍어 보내라 한 뒤 그걸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거예요."

그는 다큐멘터리 세상에 기술혁명이 일어나면서 전통적 제작 방식이 무너지고, 집단창작도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상적인 일뿐 아니라 역사도 공동으로 기록하는 일반인의 참여가 늘어난 것이다. 박찬욱, 박찬경 감독의 '고진감래'와 HBO의 '9.11을 추모하며'(In Memoriam: New York City, 9/11/01)가 그 예다. 다큐멘터리 정신을 기술적 실험과 연계해서 다른 형태로 드러낼 수 있는 방법도 계속해서 고민한다. 장 교수는 웹 다큐멘터리, 유튜브 다큐멘터리,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 등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상호작용 또는 참여성이 더해진 방식들도 소개했다.

가짜뉴스, 언론인 책임 크다

"가짜 뉴스 시대, 기자와 PD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이렇게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방송이 세상을 담아내고 있나요? 사람들은 (언론에) 세상을 제대로 봐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에 벌어지는 많은 일에는 본질과 핵심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 의도를 갖고 자기이익을 우선하는 언론에 의해 버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언론인이라면 그런 단편적인 부분만 봐서는 안 되고, 그 이면의 진실과 실체를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론사들은 보도하고도 책임을 안 져요. 언론은 책임지고 확인해야 하는데, 피해자를 가해자처럼 만들기도 하죠. 그 후엔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전세계 모든 언론이 가짜뉴스와 전쟁중이다. 팩트체크를 전문으로 하는 직종이 생길 정도다. 그는 언론이 어떻게 조작되고 있는지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짜뉴스에는 역사적, 동기적 모든 맥락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이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장 교수는 언론의 역할을 잘 수행한 대표적 작품들을 소개하며 언론인이라면 스스로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 장해랑

 
그는 다큐멘터리 정신으로 인간정신, 시대정신, 작가정신을 꼽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11/9'를 제작한 마이클 무어 감독을 소개하며 "현재 이슈에서 절대 도망가지 않고, 오늘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언론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치를 갖고 추구해야 할 방법들을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킬을 배우려 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좋은 언론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장해랑 #가짜뉴스 #언론 #다큐멘터리 #단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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