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모르는 시지프스처럼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평전 42회] 정의당만으로는 정국돌파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등록 2019.06.25 16:06수정 2019.06.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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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개가 등 뒤에서 짖었다.
나는 결연히 돌아서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이 권력의 주구야!", "헤헤" 하며 개는 웃었다. 그리고 계속했다.

"어떻게 모셔드릴까. 사람같이 생기지 않았네요", "어떻다고", 나는 울컥 화가 났다.

"오! 치욕스런 일입니다. 나는 아직 구리와 은도 구별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목면과 비단도 구별하지 못합니다. 나아가…"

나는 도망쳐 나왔다. - 루쉰.

"루쉰은 전사이고 사상가이자 문학가다. 동시에 살아 숨 쉬며 길을 찾는 사람이다. 그의 일생에는 모순과 방황이 가득 차 있고 내면에는 애증이 얽혀 있다."

중국인 왕후이(王暉)의 『절망에 반항하라』는 책의 서두에 나온 글이다. 책의 주인공은 루쉰이다.

여기서 '모순과 방황'의 글자만 바꾸면 노회찬이 그려진다. 괄호 안에 정의감과 저항을 삽입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절망을 모르는 시지프스형이다. 콩도르세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프로메테우스적 능력이야말로 역사의 진보를 이끄는 동력"이라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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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부인 김지선씨 노원병 보선 출마 선언 ⓒ 연합뉴스

 
노회찬의 곁에는 가슴 뜨겁고 두뇌는 냉철한 '유목인 동지'들이 많이 있었다. 그는 동지들 곁으로 달려가기 전에 우선 자신의 재판과 아내의 선거로 흐트러진 가정사를 정리하는 일이 시급했다. 일반적으로 사회운동가와 정치인들은 가정에 충실하지 않을 것이란 선입견이 따른다.

아내가 국회 정론관에서 출마 선언을 한 날, 돌아오면서 정색하며 내게 말했다.

"이제부터 당신이 집안일을 해야 해. 그동안 내가 해 온 만큼만 해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 그동안 가사노동에 좀 더 많은 역할을 해두는 건데….'(주석 4)


노회찬은 대단히 가정적이었다. 가사노동을 즐기고 음식 만들기를 좋아했다. 조리도구에 관심이 많아 해외여행 갔다가 현지에서 구입한 생선회 칼을 기내로 반입하려다 소동을 벌인 적도 있었다.

결혼하고 한 달쯤 지난 어느 일요일, 처남이 예고없이 찾아왔다. 아내는 바깥행사에 참가하느라 집에 없었다. 마침 그때 나는 방안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알타리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전날 사다가 다듬고 절여놓았던 알타리에 젓갈을 듬뿍 넣어…처남은 이 낯선 광경에 다소 놀라는 눈치였고 소문은 빠르게 처가 식구들에게 번졌다. 이 효과는 한 3년 간 것으로 기억된다!(주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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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한국사회 한 축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노회찬 대표. ⓒ 이대용

 
본인의 의원직 상실과 아내의 낙선으로 큰 상처를 입었지만, 당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즈음 정의당은 상당히 곤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원내대표를 맡은 강동원 의원이 탈당 의사를 밝힌 것이다. 유일한 호남 출신인 그는 지역구의 실정과 지역주민들의 탈당 권유를 언제까지 외면할 수 없다며 5월 2일 탈당과 함께 당분간 무소속으로 남겠다는 뜻을 전했다.

노회찬은 정의당만으로는 정국돌파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진보신당과의 합당을 추진하기로 한다. 5월 23일 최고회의에서 7월 26일 제2창당대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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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지방선거 선대위 발족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지방선거 선대위 발족 및 전체회의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노회찬 전 대표, 천호선 대표, 심 원내대표, 조준호 전 대표, 박원석 의원, 이정미 대변인. ⓒ 남소연

 
당명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당시의 공식 당명은 진보정의당이었다. 당내 일각에서는 사회민주당, 복지당 등이 거론되고 노회찬은 사회민주노동당을 제시했다.

7월 23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명을 정의당으로 확정하고, 원내대표에 심상정 의원을 재선출하는 한편 안철수 세력과의 연대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주석
4> 『노회찬의 진심』, 320쪽.
5> 앞의 책, 321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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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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