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의 주역은 노태우?... 민주인권기념관이 중요한 이유

[남영동의 봄 ⑧] 미래 세대가 꿈꾸는 민주와 인권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며

등록 2019.06.25 16:06수정 2019.06.2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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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의 상징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아직 공간은 그대로입니다. 현재 민주인권기념관 조성을 위한 다양한 연구용역 공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맞춰 남영동 대공분실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는 글을 보냅니다.[편집자말]
아이들에게 현대사는 어떻게 다가설까? 생생한 당대 역사를 품고 있는 현대사는 아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선다. 바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 시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현대사는 어른들과 또 다른 차이가 있다. 2002 한.일 월드컵대회를 떠올려보자. 어른들에게 2002 한.일 월드컵대회는 붉은 악마와 4강 신화 등의 기분 좋은 기억으로 다가선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2002 한.일 월드컵대회는 교과서나 가족들의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역사다. 현재 초등학생은 2002 한.일 월드컵 대회 당시에는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초등학교 6학년생은 2007년도에 태어났다. 이런 간극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과의 공통 체험이 달라지는 지점을 살피지 않고서 그저 어른들의 시각에서만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한다면 미래 세대와의 역사적 소통은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전망 모색해보는 민주인권기념관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새롭게 바뀌게 되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변화다. 하지만 이곳은 아이들에게 2002 한.일 월드컵대회보다 더 아득히 먼 역사적 공간이다. 대공분실이라는 낯선 용어만큼이나 아이들이 마주하는 현실과 이곳은 큰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롭게 마련될 민주인권기념관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설 수 있다. 그저 과거의 옛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민주와 인권을 기념하는 장으로 조성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옛날의 모습 그대로 이곳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를 품은 공간으로 거듭나려 하기 때문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역사는 알게 모르게 우리 현대사의 큰 분수령인 6월 민주항쟁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하지만 교과서적인 접근은 감명 없이 수많은 역사 중 하나로 6월 민주항쟁을 무미건조하게 설명하였다.


하지만 영화 <1987>은 기존 교과서와 다르게 6월 민주항쟁을 재조명했다. 교과서에서는 대개 역사적 사건의 원인, 경과, 결과, 의의라는 4단 구조로 역사적 사건을 개괄적으로 안내하는 데 반해 영화는 내러티브를 통해 당대 상황을 입체적으로 살피며 어린이, 청소년도 과거 역사 속 인물들의 행동과 역사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민주인권기념관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해보면 좋겠다.

민주인권기념관,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다가설 수 있을까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있었던 고문 등 극심한 인권 탄압의 문제를 아이들과 어떻게 나누면 좋을까? 이 점은 교육 현장에서 여러모로 함께 고민해 볼 사안이다. 이를 두고 함께 참고해볼 만한 사례가 있다. 바로 독일에서 이뤄지는 역사교육이다.

독일에서는 유치원생에게도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과연 어떻게 이런 교육이 가능한 것일까? 이는 현대사 교육에 천착하며 치열하게 연구하신 최호근 선생님의 저서 <독일의 역사교육>, <기념의 미래>를 통해 그 단초와 마주할 수 있었다. 어린이들에게 홀로코스트 등의 역사를 가르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소재가 주는 비극성과 함께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 중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홀로코스트 교육의 3대 원칙이다. 이 원칙은 만3세에서 10세까지의 어린이들에게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규정한 것이다. 이 원칙에서 가장 핵심은 '아우슈비츠 없는 아우슈비츠 교육'이다. 이는 어린이들에게 아우슈비츠가 초래할지도 모르는 정서적 부담을 배제하면서 아우슈비츠를 교육하는 지혜이다.

홀로코스트 조기교육의 3대 원칙

1.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온정을 베푸는 공감의 능력을 배양한다.
2. 자율성을 육성해서 깊이 생각하고, 양심에 입각한 주관에 따라 행동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3.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집단악의 희생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방조자까지도 자신과 연관 지어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원칙 하에 독일에서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아우슈비츠 교육에서는 아우슈비츠 같은 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평화, 관용, 비폭력, 선입견에 대한 저항, 다양성과 차이점의 존중과 같은 소중한 가치의 중요성을 일상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깨닫게 된다. 홀로코스트 경험과 무관한 사회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홀로코스트 자체가 아니라 홀로코스트가 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독일에서는 아이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되, 아이들이 받을 정서적 충격을 충분히 고려하여 교재를 마련하였다. 더불어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의로운 이웃'에 대한 소재를 나눔으로써 아이들에게 희망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점이다. 이런 통찰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교육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다. 이에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5.18민주화운동, 일본군 '위안부' 교육이 어린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고려하면서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어갈 교육도 이런 점들이 고려되면 좋겠다.

새로운 전형 열어가는 기념관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며

1987년에 펼쳐진 6월 민주항쟁의 역사는 공식적 지식으로 자리하며 2007년에 태어난 현재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학교 현장에서 교과서로 마주하는 역사가 되었다. 현재 아이들이 마주하는 교과서 서술을 통해 민주인권기념관의 과제를 모색해보자.

 

6월민주항쟁교과서 1 ⓒ 배성호

 
올해 새롭게 바뀐 초등 사회교과서에서는 6월 민주항쟁을 이전 교과서보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본문에서는 6월 민주항쟁의 역사를 다루고 박종철 사망 사건과 고문 추방 및 민주화를 요구한 시위와 이한열 추모 집회 사진을 통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유의 깊게 살펴볼 지점이 있다. 바로 국민들의 민주화 노력이 6.29선언으로 종결된 부분이다. 이는 민주화운동 관련 역사교과서 분석 및 서술방향 연구보고서에서 최근 지적하였던 부분이 고스란히 반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민주화운동의 성과가 국가의 양보와 시혜로 가능했던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2009 개정 교육과정 교과서에서는 6월 항쟁의 주역은 노태우이고 민주화의 내용은 대통령 직선제로 축소되었다. 또한 '국민대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선언'이라는 국가주의적 색채가 또렷한 선언을 '6·29선언'도 아니고 '6·29 민주화선언'이라 부르고 있다. '6·29 민주화선언'이라는 용어는 2000년대 초부터 초등 사회 교과서에 등장했다. '6·29 민주화선언'은 주체로서의 시민의 힘보다는 정부 혹은 국가의 결단 혹은 시혜에 의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국가주의적 시각에서 나온 용어라 할 수 있다.

- 김정인 외(2017), '초등 <사회>교과서의 민주화운동 서술 분석', 민주화운동 관련 역사교과서 분석 및 서술방향 연구보고서(2017),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월 민주항쟁교과서 2 ⓒ 배성호

 
이런 서술이 2015개정 교육과정 교과서에서도 고스란히 되풀이된 점이 아쉽다. 이는 학계 연구 동향이 교과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현실을 대변해준다. 역설적으로 이런 사례는 앞으로 새롭게 문을 열 민주인권기념관이 풀어갈 과제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민주와 인권에 기초한 초, 중, 고등학교 교과서 및 교육과정 연구다. 공식적 지식을 이룰 학교 역사교육에 대한 종합센터로써 민주인권기념관의 위상 확립이다. 사실 이는 민주인권기념관의 전시와 교육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다.

더불어 민주인권기념관에서는 6월 민주항쟁 이후 오늘날 어린이, 청소년들이 발 디딛고 사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에 대한 비전을 함께 모색해가는 장을 모색하길 바란다. 이는 2015개정 초등 교과서에서도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역사적 회고로만 돌이켜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현재 오늘날의 삶을 비추며 미래를 열어가는 창으로 접속하는 것이다.

 

6월민주항쟁교과서 4 촛불 ⓒ 배성호

   

6월민주항쟁교과서 5 ⓒ 배성호

 
우리나라 교육의 목표는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하는 것이다. 앞으로 문을 열게 될 민주인권기념관은 이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곳이다. 민주시민 교육을 열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성장과 발달을 고려한 연구가 실천적으로 펼쳐지면서 발 딛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평화 감수성을 키우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열어갈 수 있는 장을 모색할 수 있도록 민주인권기념관이 담대한 길을 열어가길 바란다. 민주인권기념관의 출발이 신영복 선생님 말씀처럼 새로운 시작을 열어가는 마중물이 되길 기원하면서!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덧붙이는 글 배성호 기자는 서울삼양초 교사입니다.
#민주인권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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