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두려운 건..." 50대 대기업 중년 남자들의 고민

[내 인생의 하프타임] 그들의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등록 2019.06.26 19:52수정 2019.06.26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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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경기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삶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50대 남성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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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이야기하며 우리 또래 남자들의 불안을 읽곤 했다. 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하는 문제, 즉 돈벌이에 대한 불안이다. ⓒ unsplash

 
'내 인생의 하프타임'을 연재하면서부터 내 또래 남자들을 관찰하곤 한다. 핑계를 만들어서 지인들을 만나거나 통화하기도 하는데, 그들과 이야기하며 우리 또래 남자들의 불안을 읽곤 했다. 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하는 문제, 즉 돈벌이에 대한 불안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마다 그 불안의 모습은 결이 달랐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높은 연봉과 좋은 복지 환경에서 일하니 큰 걱정이 없으리라 짐작하는 시선이 있다. 그렇지만 내가 오래도록 지켜봐 온 대기업 소속 지인들은 나름의 불안을 안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중년 남성의 불안을 주제로 기사를 쓸 거라고 하자 언론에 노출되는 자체를 꺼렸다. 혹시라도 회사에서 알게 되면 불편해질까 해서다. 회사 이름과 직책을 소개하는 것조차 망설였다.

"갑자기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에 나와야 할까 봐 불안"

자격증과 전문 기술을 갖춘 A(53세, 파트장, 건설 부문, 20년 근속)와 B(55세, 부장, 건설 부문, 25년 근속)는 대기업에서도 특수한 업무를 맡고 있다. 두 사람 모두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해서 고용이 불안정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선택의 폭은 넓어 보였다. 특히 A는 "까짓거 내 회사 차리면 되니까요"라고 말한다. 그만큼 A가 맡은 업무는 그의 노하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B는 독립이 정답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대기업에 맡기는 일과 개인회사에 맡기는 일은 규모가 다른 데다 그 일이라도 따려면 영업을 해야 한다"라는 게 그의 우려다.

두 사람 모두 "그래도 회사에 남아 있는 게 여러모로 유리한 건 사실"라고 강조한다. 그들의 가장 큰 불안은 "재계약 시점에 언질 없이 연장이 안 돼서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에 나와야 하는" 상황이다.

20여 년 동안 해외 영업을 해온 C(54세, 부장, 전자 부문, 26년 근속)와 D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달라지는 직무 때문에 불안하다고 한다. 10년 넘게 해외에서 근무했고 이후에도 해외 영업만 했는데 회사에서 갑자기 국내 B2B(Business to business) 업무를 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C는 몇 년 전 인사발령 때문에 한동안 갈등한 적도 있다. "(지시를)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면 다른 길을 걸어야 하나 고민했었죠." 물론 그는 회사가 하라는 대로 했다.

비슷한 길을 걸어왔던 D(53세, 부장, 전자 부문, 24년 근속)는 최근 자회사로 발령 났다. 평생 해온 해외 영업이 아닌 생산 관리를 맡아야 했다. 그 역시 다른 길을 고민했지만, 회사에 남는 쪽을 선택했다. "준비해둔 게 없어서 단 몇 년이라도 시간을 벌고 싶었거든요."

입사해서 27년을 사업 전략과 기획 업무만 해온 E(53세, 금융 부문, 27년 근속)는 주요 업무에서 배제되는 느낌을 떠안은 채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한때는 소속 팀원도 많았지만, 지금은 보직은커녕 뒤로 물러난 위치다.

"앞만 보고 달렸는데 뒤에 확 처지니까 내가 달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마라토너가 된 느낌이에요."

그는 오래도록 다닌 회사지만 자신의 효용 가치가 떨어졌다는 불안을 느낀다. 특히 퇴사한 회사 선배들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기도 한다.

"자리가 바뀌고 업무가 바뀌는 게 그 신호의 시작이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저도 잘 알죠. 그렇지만 해 온 업무밖에는 모르니까 회사를 나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두려운 거죠."

"그래도 급여가 밀리는 불안은 없잖아요"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듣고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대기업에 다니면 급여가 밀리거나 안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없잖아요."

지난 20년간 벤처 회사 네 곳을 옮겨 다닌 김아무개(52)씨의 말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1990년대 말 벤처 붐이 일 때 작은 IT 기업으로 옮겼다. 창업투자회사에서 투자를 받은 회사는 그 돈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했고, 그도 대기업 연봉을 웃도는 대우를 받았다. 그렇지만 벤처의 꿈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매출은 없는데 계속 투자만 하더라고요. 3년쯤 되니 급여일이 밀리기 시작했고 그 상황이 몇 달 이어졌어요."

김씨는 헤드헌터를 통해서 대기업 계열사에 다시 들어가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망한 벤처에 다닌 직원을 뽑아 주는 곳은 더 작은 벤처 회사밖에 없더라고요." 그는 그 후 비슷한 상황을 겪으며 네 번째 회사인 현 직장에 다니고 있다.

업무는 원래 하던 기획 파트에 더해 마케팅과 홍보는 물론 자금 유치와 재무관리까지 맡고 있다. 직급이 부사장이라 회사 사정을 잘 아는 만큼 다음 급여일에 월급이 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

"대기업에 다니면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없잖아요."

서비스를 중지한 어느 인터넷 금융 회사 강아무개(53) 상무의 말이다. 그는 현재 소수의 직원과 회사 청산 업무를 하고 있다. 그는 대형 광고대행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벤처 붐이 일 때 게임 회사로 옮겼고, 그 후 마케팅과 홍보 업무를 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는 급여가 나오지만, '청산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라는 단서 때문에 미리 떠나갈 곳을 찾아야 하는 처지다.

"이리저리 인맥과 헤드헌터를 통해서 회사를 알아보고 있지만, 나이가 걸리네요."

그들의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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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례들을 들으며 50대 남성 회사원들이 느끼는 불안을 유추해 봤다. 그 불안은 왜 생기는 것일까. ⓒ unsplash

 
주위 사례들을 들으며 50대 남성 회사원들이 느끼는 불안을 유추해 봤다. 그 불안은 왜 생기는 것일까. 회사에서 달라진 자신의 효용가치 혹은 회사의 어려운 상황으로 돈벌이에 불안을 느끼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대체로 은퇴 후에도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걱정 때문에 오는 것이었다. 모아 놓은 재산도 별로 없기도 하고.

"저축이요? 대출 갚기도 급한 걸요."
"퇴직금이요? 얼마 안 돼요. 이미 중간 정산하기도 했고요."


우리 윗세대의 일반적 노후 준비는 은퇴까지 열심히 일하면서 자식을 잘 키우는 거였다. 그때까지 모아 놓은 재산과 자식들의 부양으로 노후를 사는 거였다. 그렇지만, 어느새 사회구조와 환경이 바뀌었다.

내가 만나본 우리 또래 남자들 대부분은 70대까지는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퇴 생활을 하기엔 정신과 육체가 건강할 거라고 믿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계속 벌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대학에 안 들어간 자식이 있어서요. 그 아이가 대학 졸업하고 취업도 하고 결혼할 때까지는 벌어야 할 텐데 말이죠."
"부모님이 지금은 건강하시지만, 혹시라도 크게 아프실까 걱정이죠."


한국은 이미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었다고 한다. 어쩌면 본인만큼이나 건강한 부모를 계속 부양해야 할 수 있고, 어쩌면 또 오래도록 독립하지 못하는 자녀들까지 계속 부양해야 할 수도 있다. 윗세대라면 이미 은퇴했을 나이에도 경제 활동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들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결국 머지않은 미래에 닥칠 경제적 상황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예측할 수 없기에. 그렇다면 회사에 쭉 다니다가 정년퇴직하는 게 그들의 소원일까? 물론 행복한 상상이라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뿐더러,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입을 모았다.

"정년을 다 채우고 나오면 이미 60살인데 그 나이에 뭔가 새로 시작하기에는 늦는 건 아닌가요?"
"차라리 더 늦기 전에 뭐라도 시작해야 좋지 않을까요?"


고민으로 되물어 왔다. 내가 들어본 그들의 불안은 고민을 낳았고, 고민은 계획을 낳았다. 50대 남성 직장인들의 불안과 고민 속에 나오는 그들의 미래 계획은 어떤 모습일까.
덧붙이는 글 '내 인생의 하프타임'은 격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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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전을 위해 하프타임을 보내는 50대 남자. 월간문학 등단 수필가이자 동화 공부 중인 작가. 그리고 여러 매체에 글을 연재 중인 칼럼니스트.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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