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는 남자들만이 만든 게 아니다"

[야망 있는 여자들을 위한 비밀사교클럽]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 인터뷰 ②

등록 2019.06.26 19:50수정 2019.06.2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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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말하고 꿈꾸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시대, 우리에게는 더 많은 롤모델이 필요합니다. '야망 있는 여자들을 위한 비밀사교클럽'은 사회 곳곳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마음껏 야망을 품고 살아가는 30대 이상 여성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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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작가 은하선 ⓒ 권우성

 
(* 은하선 인터뷰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 은하선토이즈는 프랜차이즈 제안도 왔다고 들었다. 
"섹스토이 프랜차이저에서 연락이 온다. 얼마를 줄테니 매니저를 해달라는 제안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내가 썼을 때 좋은 섹스 토이를 추천해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토이숍을 시작했다. 그런데 프랜차이즈에서 연락이 올 때는, 섹스토이 사업을 여성이 했을 때 따라오는 상업적 효과를 위해서 연락하는 것 아닌가 싶다. 

가끔 사장이 여자인 가게를, 그걸 은근하게 홍보하는 곳을 보면 저 사람이 진짜 저 사업의 주인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성공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드러내고, 편집해서 효과를 보는 게 아닌가. 그 뒤에 누군가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한다. 그렇게 전면에 나선 것이 다 여성인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 프랜차이즈 제안을 받아들이면 돈을 벌었을 텐데. 아쉽지 않은가.
"원래 남의 돈을 뽑아 먹을 줄 알아야 사업을 크게 하는 거라던데. 나는 아닌가 보다. 계획이 없어서 그런가(웃음)."

"악의적 편집, 내가 걱정하는 건..."
 
- 계획은 없어도 수입이나 저축은 중요하지 않은가. 실례가 아니라면 어디서 수입을 얻는지 말해줄 수 있을까.

"신기하게도 그달에 강의가 없으면 사업이 잘 된다. 만약 토이가 안 팔리거나 가게가 안 되면, 갑자기 강의가 들어온다. 이것도 저것도 없네 싶으면 인세가 들어온다. 번 돈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누군가 조율해주는 것처럼. 나도 신기하다. 꾸준히 들어오는 건 그래도 가게 수입이다. 작가로서 정체성은 가지고 있지만, 글쓰기로 먹고사는 건 힘들다. 연재처가 고정으로 몇 개씩 있어도 힘들지 않은가. 여러 가지 일을 복합적으로 하는 시대인 것 같다."

- '일감 사냥'을 특별히 하지 않아도 꾸준히 일이 들어오는 건가. 
"일을 따내기 위해 뭔가 해야 하나? 몰랐다. 그런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일이 많이 들어오지 않나 보다(웃음). 한때는 한 주에 몇 번씩 지방에 내려갈 만큼 강연을 많이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방송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불러줘야 나간다."

- 은하선 대표는 유명하지 않은가. 
"최순실도 유명하지 않나." 

- 최순실과 비교하는 건 좀... 어쨌든 유명세는 별로 돈이 안 되는가 보다. 이슈가 된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섹스 칼럼니스트이자 페미니스트, 바이 섹슈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게 직업적으로 불리하지는 않았나? 
"강의를 할 때마다 밖에서 항의시위를 한다거나 시청에 전화해서 압력을 넣는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 내가 피곤하다기보다는, 나를 부르는 사람들이 피로해진다. 내가 미안해 할 일이 아닌데 미안해지는 순간들이 온다. 이게 커리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특히 방송일은 출연자에게 특별한 일이 없어야 그 사람을 계속 부른다.

EBS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이 방송됐을 때도 반동성애 단체와 일부 기독교 단체가 EBS 앞에서 두 달 동안 시위하고, 나와 방송을 비판하는 전면광고를 <조선일보>에 냈다. 결국 지금은 방송 패널로 나가지 않고 있다(EBS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방영 이후 은하선 대표는 하차했고, 해당 방송은 2018년 2월 종영했다 - 편집자말).

인터넷에서 악의적인 편집으로 나를 욕하는 글도 많다. <까칠남녀>에서 자위를 주제로 다룬 적이 있다. 내가 매일 자위한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고, 잘못된 자위방법을 이야기하면서 참외나 바나나로 자위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 두 개를 편집해서 내가 참외로 매일 자위하는 것처럼 퍼뜨린다.

내 걱정보다는 가게에서 섹스토이를 산 고객이 이렇게 생각할까 봐 걱정이다. '은하선, 저것이 나한테는 10만 원짜리 기구를 팔았으면서, 자기는 싸구려 바나나로 해?' 그런 소리 들을 때면 야채 장사를 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그랬으면 더 잘 팔았을까? (웃음) 유명해지는 게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최근에 낸 앨범만 해도 그렇지 않나. 내가 낸 앨범에 별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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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작가 은하선 ⓒ 권우성

 
- 그럼 이참에 앨범 홍보를 해보자.
"음악을 만드는 건 오보에를 하는 것과는 별개로 계속해 왔던 활동이다. 예전부터 '인민보녕이'라는 밴드를 했었다.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부르기도 했다. 밴드가 더 이상 모이지 않게 된 후부터는 혼자 노래를 만들어서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리곤 했다. 그러다 최근에 앨범을 내게 된 거다(은하선 대표는 최근 앨범 <나도 모르는 나>를 발표했다 - 기자말).

사람들은 그게 뜬금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다고 상상하지 못한다. 학교에서 여성운동을 할 때도 내가 음대라고 생각하지는 않더라. 운동하는 애들이면 사회학과나 철학과, 국문학과라고 상상하지 음대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는다. 이번 앨범도 제가 불렀다고 생각하지,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직위 말고 사람

- 인터뷰 '야비클럽'은 야망 있는 여자들을 위한 비밀사교클럽의 준말이다. 40대가 넘어서 직업적으로 투명 인간이 되는 여성들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나이 든 여자가 직접적으로 생존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뭘까?
"나이 든 여자에게 주고 싶은 롤이 있는 것 같다. 그게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직위를 갖지 않으면 그 사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남성은 가장이나 사장 같은 지위로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지 않나. 그래서 은퇴하고 더 힘들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직위 같은 게 사라지니까. 본인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보니 당연히 타인도 그런 식으로 본다.

그런데 여자가 아이를 낳거나, 다른 일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거나, 1인 사업자로 일하면 그건 어떤 '지위'나 '직위'로 보지 않는다. 네이밍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치밀하게 봐야 하는데, 그만큼 사람들을 자세히 보지 않는다."

- 이전 인터뷰에서 울프소셜클럽의 김진아 대표는 여성연대를 주장했다.
"나는 어떤 공동체나 연대가 한 사람에게 주는 힘을 믿지 않는다. 물론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나 여성 퀴어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무조건 희망찬 내일과 에너지, 원동력을 줄 거라는 생각은 판타지다. 오히려 연대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을 때, 더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다."

- 여자에게 돈을 쓰자는 말은 어떠한가? 사소하게는 여성 대표가 운영하는 가게에 가거나, 여자 직원을 추천하는 방식이 있다. 
"너무 쉬운 생각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남성들이 더 많이 일하는 곳에서, 추천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여자를 추천하는 건 의미 있다. 그러나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내가 지금 여성 사장한테 가서 돈을 쓴다고 해서 여성 연대가 강화되는 것일까? 한 사람이 대기업을 안 사용한다고 해서 큰 변화가 있을까? 현상 뒤에 너무 많은 것들이 얽혀 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발언권을 가지려면 사회에서 주목을 해줘야 하고, 주목을 받으려면 또 어딘가에 소속돼 있는 게 편하고. 나도 답을 잘 모른다(웃음). 그렇지만 너무 쉬운 운동 방법은 진짜 문제의 원인을 가리는 역효과를 내거나 어쩌면 또 다른 여성 혐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 가부장제라는 건 남자들만이 만든 게 아니다."

- 이 인터뷰를 읽는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나는 멘토가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좋지 않은 롤모델인 것 같다. 인생을 어떻게 계획하고 어떤 식으로 행동해서 이렇게 잘 됐다라고 말해줘야 할 텐데, 그걸 하기가 어렵다."

은하선 대표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다시 답변을 이어나갔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삶이 허망하다. 굉장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20대 중반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었다. 그 일을 겪었을 때 너무 허망했다. 요새도 주변에 죽음이 심심치 않게 있다.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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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작가 은하선 ⓒ 권우성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은하선 대표가 참 특이하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대담하고 재치 있는 말 덕분에 많이 웃었지만, 그가 한 말은 오래 남아 한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서 계획하는 걸 멈췄다.'
'직위나 직함 대신 그 사람이 사는 삶을 치열하게 보아야 한다.'
'성공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편집해서 효과를 보는 이가 있지 않나.'
'야망이라는 단어는 너무 신자유주의스럽지 않은가.' 
  
답을 얻으려고 시작한 야비클럽 인터뷰는, 보다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분명 목표한 바와 멀어지고 있는데 묘하게 만족스럽다. 답을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한다.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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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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