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고 가"... 참사 원인 뒤바뀐 호프집 화재

재난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차별을 눈여겨보자

등록 2019.06.30 19:57수정 2019.06.3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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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초입에 들어서자 지난해 한반도를 강타한 폭염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지난해의 살인적인 더위는 가히 재난이라 칭할 수 있었습니다. 약자에게 재난은 더욱 가혹하게 다가옵니다. 작년 폭염의 기억과 더불어 지난 강원산불 당시 기본적인 수어 통역조차 지원되지 않았던 재난방송의 기억을 떠올리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이번 월간평등UP 주제를 '재난과 차별'로 잡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재난 이후 진상규명은 차별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에 대한 글입니다.

재난은 공평할까? 만약 재난이라는 말에서 태풍이나 홍수, 화재나 건물 붕괴와 같은 장면을 떠올린다면 차별이라는 말이 들어설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바람이나 물이 사람을 가리기야 할까. 성별이나 외모, 성적 지향, 출신지역이나 출신국가 같은 것들을 물이나 불이 따질 리가 없다. 하지만 재난은 결코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그간 알려진 화재 사건을 중심으로 재난과 차별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차별은 사고를 재난으로 만들어

2007년 2월 여수의 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과 연기를 피해 빠져나오려는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아 열 명이 죽고 열일곱 명이 부상을 당했다. 국가가 관리하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벌어진 일이다. '도주를 우려'해 이중 잠금장치를 여는 걸 지체한 결과다.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고, 화재경보기 등의 소방시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탈출을 막은 것이었다.

국가는 이들을 죽였다. 체불임금을 받지 못하고 '보호소'에 있다는 사실이 죽어도 되는 이유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피해생존자들도 수갑을 찬 채로 병원을 가야 했고, 충분한 안내도 없이 강제 출국 당했다. 불은 공평할지 몰라도 차별에 길들여진 사회는 누군가를 재난으로 더 내몬다. 

2002년 1월 군산의 한 건물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30분만에 불은 진화됐지만 열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건물의 1층과 2층 출입문이 모두 봉쇄되어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뒤엉켜 계단에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그 중 열네 명은 여성이었다. 한국사회는 이 사건을 '화재'보다 '성매매' 문제로 기억한다. 물론 2000년 대명동 화재, 2002년 개복동 화재는 성매매여성의 현실에 사회가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성매매방지법 제정의 직접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성매매여성이 겪은 불운한 일로만 기억하는 것은 절반만 기억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재난으로 더 내몰리지만 재난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모든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증진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당시 소방 당국은 화재 발생 건물의 문이 밖에서 잠긴다는 점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소방점검 때는 "피난상 장애요인이 없다"고 적었다. 그런데 유족들이 소방서(전라북도)와 경찰(국가)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냈을 때 1심 재판부는 책임을 면해줬다. 다행히 대법원까지 가는 동안 경찰과 소방서의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경찰이 감금을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이었거나 실제 그런 정황을 인식하기도 했다"는 점, 소방관이 잠금장치 때문에 사람들이 나올 수 없는 구조임을 알고 있었지만 "시정 조치를 명하지 않은" 점 등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화재가 발생할 때 건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사전에 충분히 점검하고 시정하도록 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는 말이다. 국가는 탈출을 가로막아서도 안되지만 누구든 탈출이 가로막히는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살필 의무가 있다.  

재난의 진실을 밝히려면 

우리가 재난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란다면 우연처럼 보이는 재난들에서 교훈을 발견해야 한다. 작은 불도 큰 피해를 낳을 수 있고 큰 불도 큰 피해 없이 잡을 수 있다. 화재가 재난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한다. 재난참사의 진상규명은 그 요인들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어떤 지점에서 달라져야 하는지 찾아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재난참사 진상규명은 끝까지 가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대부분 정부나 기업과 같은 권력으로부터 비롯되고 권력은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만연한 차별은 권력에 유리하게 작동하고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가 유예된다. 

재난의 원인과 화재의 원인은 같지 않다. 화재는 여러 이유로 시작될 수 있지만 그것이 언제나 재난이나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불이 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불이 났을 때 그것이 재난이나 참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1999년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발생한 참사는 화재의 원인에만 집중하며 제대로 시설도 갖추지 않은 수련원이 공무원들과의 유착으로 영업을 지속하면서 참사를 낳았다는 점을 흐려버렸다. 화재의 원인조차도 모기향 불이라며 경찰은 서둘러 사건을 덮어버렸다.

만약 화재의 원인이 방화라면 그것으로 사건의 모든 책임을 몰아가려는 경향도 강해진다. 화재 원인이 방화일 때 사람들은 방화범에 시선을 집중하게 된다. 그가 외국인이라면, 치매가 있거나 우울증이 있다면 마치 재난의 원인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이런 경향으로부터 벗어나는 만큼 재난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2018년 10월 고양 저유소 유증기 폭발 사고에서 사회가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로부터 시선을 거둔 만큼 화염방지기와 경보시스템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피해자가 더 많이 말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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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중구 학생문화회관에서 열린 '인천 인현동 화재사고 15주기 추모식'에서 유족이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인천 인현동 화재사고는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거리의 한 호프집에서 불이 나 57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부상한 대형참사다. 2014.10.30 ⓒ 연합뉴스

 
진상규명 자체가 흐지부지되는 데에도 차별이 영향을 미친다. 1999년 인천 인현동의 한 상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지하1층에서 시작된 불이 2층 호프까지 올라왔을 때 그곳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학교 축제가 끝나고 뒤풀이를 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불길과 연기를 피하려던 학생들을 여기서는 호프집 주인이 가로막았다. 돈을 내지 않고 갈까봐 주출입구 문을 잠갔다. 사망자만 57명, 부상자가 87명이 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청소년의 일탈'이 마치 참사의 원인인 것처럼 다뤄졌다. 청소년이 술을 마시러 호프집에 갔고 호프집 주인은 불법 영업을 한 것이 사건의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시선 때문에 유가족은 깊은 상처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기도 힘들어졌다. 

수많은 재난들에서 진실을 밝힌 힘은 피해자로부터 나왔다. 유가족이나 피해생존자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변화의 과제를 찾아낸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언제나 '말할 자격'을 따지는 시선에 노출된다.

2014년 장성의 요양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스스로 이동하기 어려웠던 노인들이 희생된 사건이었다. 유가족이 대부분 자녀다 보니 "부모를 모시지 않고 요양병원에 맡겼다"는 비난이 말하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돌봄이 가족의 책임으로 전가되고 그 안에서도 여성의 책임으로 떠넘겨지면서 공적인 돌봄 시스템 마련이 주변적 의제가 되는 현상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누군가는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요양병원에 맡겨져야 했지만 그 책임을 개인에게 물을 수는 없다. 누군가 요양병원에 부모를 모셨다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당한다면 진실과 안전에 이르는 길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구조적 차별로부터 기인한 문제는 개개인의 일상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장성 요양병원 참사에서 인근 지역에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할 수 있는 소방관이 두 명밖에 되지 않았던 재난대응체계의 불공평함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재난 피해자들은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시선에 둘러싸이게 된다. 이때 '피해자다움'은 대체로 차별적 시선과 결부된다. 사람의 어떤 정체성이나 특징에 사회적 역할을 부과하며 그것이 자연스럽다 여기게 만드는 것이 차별이므로, 재난 피해자는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시선과 함께 차별에도 맞서야 하는 상황이 된다. 피해자가 더욱 많이 말할 수 있도록 일상에서의 차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약자가 안전한 사회여야 모두가 안전할 수 있다

재난과 평등의 문제를 단선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큰 틀에서는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지만 구체적인 사건들에서는 늘 다른 문제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통계를 잊어서는 안 된다.

2018년 1월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망자 50명 중 39명이(78%), 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망자 29명 중 24명이(82.7%) 여성이라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사실을 눈에 보이는 차별의 결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우리가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재난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란다면, 여성이, 청소년이,  장애인이, 이주민이 재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2014년 한 중증장애인이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불이 났는데도 탈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출할 수 없었던 이유를 그가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과 사회가 그를 탈출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누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구조할 수 있는 역량을 사회가 갖출 때 우리 모두가 안전해질 수 있다.

재난의 발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가 더 위험에 처하게 되는가, 누가 더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는가, 누가 더 구조로부터 배제되는가를 질문할 때 재난의 진실이 드러난다. 진실과 안전을 바란다면 평등에 대한 감각을 내장해야 한다. 

[지난 기사 보기]
재난 일어나면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에... "가만히 있다가 죽어야지"
장애인은 재난에서 제외? 누구에게나 '살아나올 권리'가 있다
재난 그 이후, 생존자의 권리
덧붙이는 글 글쓴이 미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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