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구한 월세 신혼집, 시어머니께 차마 못한 말

[맞춤형 결혼] 처음 시작하는 두 사람에게 부모의 지원보다 더 필요한 것

등록 2019.07.02 13:49수정 2019.07.0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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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도 내 맘대로 맞춤 주문하는 시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결혼 제도에 끼워맞춰 살아야만 할까? 좋은 것은 취하고 불편한 것은 버리면서 나에게 꼭 맞는 결혼 생활을 직접 만들어가려 한다.[편집자말]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도움을 받는 고마운 경우도 있지만, 때로 어떤 호의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정말 착한 아이구나'라는 칭찬이 '착한 아이여야만 하는' 부담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좋은 의도로 행한 일이 항상 좋은 결과에 닿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조언은 '오지랖'이 되기도 한다. 내 생각과 기준으로 상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떠맡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할 때 원하는 도움을 주는 것이 정말로 고마운 일로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결정과 능력으로 결혼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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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빚 없이 원룸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는데 둘이서 산다고 해서 갑자기 엄청난 빚을 짊어지는 것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 unsplash

결혼 준비를 할 때 남편은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었고 나는 5평짜리 원룸에서 살고 있었다. 결혼할 때 돈이 많이 든다는 말은 들었지만, 결혼이라는 하나의 이벤트를 우리의 능력 내에서 실행하면 된다는 생각에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웬만한 건 줄이고 생략한다 해도 정말 가감할 수 없는 큰 비용이 들어가는 항목은 다름 아닌 집이었다.

나는 지인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 동네가 마음에 들어, 예비 신랑과 얼마 뒤에 부동산을 찾아갔다. 거실 하나와 방 하나가 있는 집으로 두 사람이 살기에는 충분할 것 같았다. 다만 20대였던 우리 두 사람의 전 재산을 탈탈 털어 보증금으로 쓸 수 있는 돈은 약 2000만 원 정도였다. 즉 우리의 능력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주거 형태는 적은 보증금에 비싼 월세를 사는 것뿐이었다.

보증금이 1000만 원만 더 있어도 월세를 5만 원쯤은 내릴 수 있을 것 같아 고민해 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부동산에서는 몇 개의 선택지를 더 권하더니 그만큼의 돈이 없다고 하자, "부모님한테 좀 도와달라고 하면 되지?"라고 슬쩍 물었다.

하지만 가능하면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고, 웬만하면 대출도 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빚 없이 원룸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는데 둘이서 산다고 해서 갑자기 엄청난 빚을 짊어지는 것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그 조건으로 우리가 2년 동안 거주하게 될 신혼집을 계약했다. 결혼 후 부모님은 우리를 만날 때마다 "얼른 전세로 옮겨야지"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고, (받진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돈을 보태준다는 제안도 흔쾌히 해주셨다. 하지만 주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우리의 결혼생활이 오로지 전셋집이나 내 집 마련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마라톤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집을 사려고 결혼한 것은 아닌데…

우리나라에서는 젊은 서민 부부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집을 마련하는 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살았다 해도, 또 충분히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왔다 해도 그런 인격적인 장점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어차피 우리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막 시작한 신혼부부에게 중요한 건 우리가 어디에 사느냐보다 둘이 함께 살기 위해 어떻게 새로운 규칙을 정하고 적응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거에 대해 반쯤은 도전 의식으로, 또 반쯤은 체념한 마음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의 도움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는 나름대로 밥벌이는 할지언정 살림 능력은 부족했다. 부모님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린 애들이 살림을 차린 것처럼 어설프게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많은 신혼부부들이 모든 것을 초기 세팅하는 결혼 준비 과정뿐 아니라, 생활의 문제에서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결혼 초반에 양가에 방문하면 부모님들은 마치 명절처럼 먹을 걸 한가득 챙겨 주셨다. 시어머니는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천연 조미료부터 시작해 세제와 고무장갑까지 안겨 주실 정도였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초보 부부에게는 주부 9단인 어머니의 도움보다 파와 달걀부터 시작하는 백주부의 레시피가 더 실용적이었다.

처음엔 시어머니가 검은 봉투에 넣어 안겨주신 게 고등어라는 말을 듣고, 열어보지도 않고 냉동실에 몇 개월을 그대로 넣어둔 적도 있었다. 한 번도 직접 선택해 요리해본 적이 없는 생선을 부엌에서 갑작스레 마주할 마음의 준비가 좀처럼 되지 않았다. 남편이 혼자 시가에 갔다가 또 이름도 모를 고급 채소나 어떻게 먹는지 모를 식재료를 잔뜩 받아오면, 솔직히 감사한 마음보다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그렇게 먹지도 못한 식재료를 버리게 되는 악순환을 몇 번 겪고 나서, 당분간은 양가에서 아무것도 받아오지 않기로 남편과 단단히 약속을 했다. 부모님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일단 백지 상태에서 우리 나름대로의 살림을 하며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야 부모님이 주시는 도움 중에서도 어떤 것이 정말 유용하고 필요한지, 어떤 것은 감사하지만 불필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지금은 굳이 주시면 우리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조금씩 받기는 하지만, 그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으려고 한다. 어쩌다 한 번씩 배부른 먹거리로 마음이 오가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부족하고 어설프더라도 우리 부부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님이 더 이상 다 큰 자식들을 위해 고생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부모님이 바라는 만큼 능숙하게 집밥을 해먹지도 못하고, 또 기대하시는 만큼 빠르게 내 집 마련을 하지도 못할 테지만, 사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렇게 서툰 모습이 어울린다. 우리에게도 어쩌면 부모님이 젊은 시절에 겪었던 시행착오와 실수들이 필요한 것이다.

진정한 두 사람의 독립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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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오히려 '아들 부부의 독립적인 삶과 결정을 인정해주시는 시부모님'이 '좋은' 어른이라고 느껴진다. ⓒ unsplash

 
주변을 보면 결혼을 했는데도 여전히 부모님의 자식으로, 혹은 자식의 부모님으로만 살고 계신 분들이 많다. 내 지인 중에는 시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해서 고민이라는 경우도 있었다. 자주 연락하고 방문하라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직장인 부부에게 뜬금없이 같이 가게를 차려서 시부모님과 아들, 며느리가 함께 일하며 매일 얼굴을 보고 살자는 제안을 하시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어른들은 결혼 과정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을 먼저 겪어 경험이 풍부하고, 더 지혜로운 해답을 가지고 계신 경우가 많다. 신혼집을 부모님과 함께 보러 다니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하자를 발견하거나, 집을 고를 때 감안해야 할 중요한 사항을 알려주시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는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우리가 스스로 고민하기 이전에, 먼저 겪은 어른들의 가치관에 따라 우리의 앞날이 달린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기도 한다.

부모님과 자식은 더없이 끈끈하고 가까운 관계지만, 독립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 뒤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 두기도 필요하다. 지나친 간섭이나 의존은 결국 우리를 여전히 독립하지 못한 자식으로서 살아가게 한다.

특히 며느리 입장에서는 맛있는 반찬을 해주시거나 설거지를 시키지 않는 시어머니도 좋은 시어머니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가능하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도록 지켜봐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나로서는 오히려 '아들 부부의 독립적인 삶과 결정을 인정해주시는 시부모님'이 '좋은' 어른이라고 느껴진다.

결혼 후 가부장제가 원하는 며느리로서 살아가지 않겠다는 주장을 하면 꼭 '그러면서 나중에 시부모님 유산은 다 챙길 것 아니냐'는 둥 '시부모가 집 해주니 이기적으로 군다'는 둥 하는 댓글이 달린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지만, 결혼은 금전과 의무를 교환하는 거래가 아니다. 혹 무언가를 베풀기 위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바라고 있다면 상대의 의사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옳다. 내가 받는 도움과 내가 해야 하는 의무를 저울질했을 때 누구나 도움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나 역시 가능한 독립적인 결혼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간섭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도 일맥상통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서로의 동의하에 도움을 주고받기에 가장 진심이 오가고 편한 상대가 가족인 것은 사실이다.

아이를 키우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예전에는 한 마을이 필요했다는 육아를 지금은 두 사람이 전부 도맡기란 쉽지 않으니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필연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또 은혜를 갚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 서툰 신혼부부이기에 오히려 할 수 있는 만큼만을 직접 선택하여 우리의 힘으로 해나가고 싶다. 결혼 초에는 더더욱 부모님의 자식이기 이전에 이제는 성인 부부라는 것을 서로가 충분히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고 나면 부모님과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도움 역시 당연한 것이 아니라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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