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 "악플도 반기는 웹툰계... 정말 위험합니다"

[제정임의 문답쇼, 힘] 이현세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등록 2019.06.29 16:20수정 2019.06.3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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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방송 SBS CNBC는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 2019 시즌방송을 3월 14일부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1시부터 1시간 동안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방송 영상과 주요 내용을 싣는다. - 기자 말

"웹툰(인터넷만화) 작가들도 굉장히 유행에 민감하죠. 인기작 (만들려고) 어떻게 하면 댓글을 많이 받을 수 있는가 (경쟁하죠). 심지어 '악플(악성댓글)'이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겁니다. 웹툰 사이트에서는 조회수 순서대로 광고료가 나오고, 그런 식으로 인기 순위가 짜여 버리잖아요. 이건 정말 위험한 거죠. 그러니까 (조회수 기준으로) 인기 있는 만화가 좋은 만화가 된다는 거, 다양성이라는 게 실종돼 버리는 겁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로 꼽히는 <공포의 외인구단>을 그린 이현세(63)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가 27일 SBS 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한국 웹툰 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1978년 <저 강은 알고 있다>로 데뷔한 후 40여 년간 <아마게돈> <남벌> 등의 화제작을 발표하며 대한민국 대표 만화가로 꼽혀 온 이 교수는 한국만화가협회장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도 지냈다.

만화를 '문화'로 보지 않고 '산업'으로 보는 시선

이현세 교수는 국내에선 만화를 '문화'로 보지 않고 '산업'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경제적 효과, 일자리 창출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만화계 내에서도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떤 게 유행이고 대세인가'를 좇는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한국 웹툰 시장이 지나치게 산업화해 문화적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이현세 교수.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힘>


"웹툰들의 주요 소재가 일단 몇 개 안됩니다. 일단 '생활툰', 가장 쉬운 자기들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 '타임 슬립', 휴대폰 들고 목욕탕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로마시대로 가는 거... 아니면 좀비 이야기. 다 자극적입니다. 

그런 콘텐츠가 꼭 나쁘다는 건 아닌데요. 너무 그러다 보니 작가들이 공부도 적게 하고, 치열한 작가정신 투쟁정신이 없어지니까 걱정입니다. 얼마나 단단하게 한국의 웹툰 시장을 만드느냐는 작가와 플랫폼(유통기업)의 몫인데 현재는 너무 돈과 밀착돼 서로 산업으로 움직이니..."


이 교수는 웹툰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저작권 논란이 종종 빚어지는 것과 관련해 작가들이 만화가협회의 지원을 받을 것을 제안했다. 지난해 한 온라인 웹툰 서비스 업체는 미성년 작가의 저작권을 편취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이 교수는 "하도 (저작권 착취가) 심해서 협회에서 표준계약서를 만들었다"라며 문제가 있을 경우 작가들이 협회에 문의해서 해결할 것을 당부했다.


'빨갱이 가족'과 '색약'의 굴레에서

이현세 교수가 1982년 발표한 <공포의 외인구단>은 야구와 로맨스를 버무린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로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던 만화를 남녀노소가 즐기는 창작물로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만화방에 수십 명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볼 만큼 인기를 모았고 영화와 주제가도 '대 히트'를 기록했다. 만화가로서 드물게 여러 건의 광고 촬영을 했고 '집이 바뀌고 차가 바뀔 만큼' 경제적 성공도 거뒀다. 이 교수는 그러나 이런 날이 있기까지 '절망적인 성장기'를 지났다고 고백했다.

"어릴 때 빨갱이 집안으로 낙인 찍혔어요. 북한하고 남한이 전쟁 일으켰을 때 북한 편을 든 가족(삼촌)이 있었으니까. 심심하면 한 번씩 형사들이 집을 방문했었죠. 최근에 북한에서 누가 오지 않았는지."

그는 이런 '연좌제'로 인해 공무원도 군인도 될 수 없다는 좌절감 속에 미술공부에 몰입했다. 그러나 미대 입시를 앞두고 '적록색약(붉은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장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게다가 어렸을 때 큰아버지 집에 양자로 가서 자랐다는 사실을 20여 년 만에 알게 돼 더 깊은 좌절에 빠졌다. 방황 끝에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갔고 '낡아서 고구마 껍질 같은 선배들의 속옷을 빨며' 인고의 시절을 보낸 후 '까치'라는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어 내면서 인기작가 대열에 들어섰다.
 

연좌제, 적록색약, 출생의 비밀이 만화가라는 운명으로 자신을 이끌었다고 말하는 이현세 교수.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힘>

  
<천국의 신화>로 고초... '할아버지 동화작가' 꿈꿔

이 교수는 1998년 창세기 이야기를 다룬 작품 <천국의 신화> 때문에 '음란물 제작 혐의'로 기소된 일이 있다. 6년 법정 투쟁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아내긴 했으나 그 기간 동안 거의 창작활동을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나오는 선사 시대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1심에서 300만 원 벌금형이 나왔어요. 2심에선 전혀 음란하지도 폭력적이지도 않으니 무죄라고 나왔고요. 대법원에선 근거법인 미성년자보호법이 청소년보호법으로 대체됐기 때문에 근거법이 없다, 심리할 가치가 없다 해서 최종 무죄가 나왔습니다.

(1심에서) 얼마 안 되는 벌금형이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싸운 것은 아이들에게 아빠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이현세가 다치면 우리 모두가 다친다'고 지지해준 만화가 동료들을 위해서였죠."


최근 개인 화실을 정리하고 '70세 이후'를 고민한다는 이 교수는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화'를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가 잃어버린 것, 사라져간 우리 것을 복원하는 내용의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근 개인 화실을 정리하고 ‘70세 이후의 삶’을 고민하고 있다는 이현세 교수는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화를 그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문답쇼 #제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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