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1일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

[이런 공간 어때요?] 출판사, 동네서점, 그리고 북스테이 '산책하는 고래'

등록 2019.07.08 08:12수정 2019.07.08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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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타오른 해가 산 뒤로 자취를 감추며 그을음을 내비치는 시간. 소나무가 호위하는 돌계단을 지나 베이지색 이층 전원주택으로 들어가니 '딸랑-', 중문에 걸린 작은 종이 반갑다는 듯 소리를 내며 반긴다. 한 걸음 내디디니 원목 가구 위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축축이 흘린 땀을 식힐 겸 찬 물을 들이키며 의자에 앉았다.

요즘 책과 술을 함께하는 '북티크'나 북콘서트를 진행하는 '비플러스' 등 이색서점들이 생겨났다. 이곳은 절에서 하룻밤 묵는 템플스테이처럼 서점에서 하루를 보내는 '북스테이'다.
 

'산책하는 고래' 입구 산책하는 고래 전경 ⓒ 김민정

 
'산책하는 고래'는 밤낮이 다르다. 낮에는 동네서점을, 밤에는 북스테이를 운영한다. 집 전체가 서점으로 꾸며져 있다. 침실을 나가면 신발을 벗지 않고도 책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침실 옆 복층의 그림책방에선 아이들이 누워 그림책을 읽을 수 있다. 거실 서점에선 어른들이 보고 싶은 책들을 고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산책하는 고래' 손님들의 90%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족이다.

그들은 왜 양평에서 책방을 차렸을까. 사장님과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산책하는 고래'의 거실 서점 거실 서점에 책들이 진열되어있다 ⓒ 김민정

 
- 서울에서 양평으로 오는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원래 서울에서는 출판사를 했었어요. 그러다가 건강이 안 좋아졌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원에 끌려다녀야 했구요. 학원보다는 자연이 좋잖아요. 서울에 살 때는 답답해서 아이들과 주말마다 이곳 저곳 팬션으로 놀러다녔어요. 그러다가 찾은 곳이 양평입니다. 마침 용문선이 신설되어서 같이 양평으로 내려오게 됐어요. 서울로 통근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한때 남편과 주말부부처럼 지내기도 했어요(웃음)."

- 출판사와 북스테이는 처음부터 같이 시작하셨나요?
"양평에서 출판사를 운영하고 그림책을 판매하면서 작가와 독자가 만날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러다 북스테이가 떠올랐어요. 저희가 전원주택에 살고 있어 자연스럽게 시작할 수 있었죠. 지난 2년 사이에 북스테이를 운영하는 서점들이 강화도, 제주도, 파주 등 전국 각지에 생겨났어요. 저희가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시즌마다 다르긴 하지만 매월 1일 블로그에 신청 페이지를 열면 대부분 한 시간 안에 마감 돼요.

손님들이 티케팅 하는 것처럼 대기하고 계시더라고요. 빨리 마감되는 게 금, 토, 일요일인데 토요일은 올리자마자 바로 마감이 돼요. 언제 한 번은 10시쯤에 올려야 했는데 깜빡해서 30분이 늦었어요. 그때 신청하려고 기다리신 분들에게 연락이 많이 왔죠. 그때부터 부담감이 생겨서 매달 1일마다 긴장하게 돼요."
 

'산책하는 고래'의 그림책방 출판사 고래이야기의 그림책과, 침대방 ⓒ 김민정

 
- 손님들이 다른 북스테이 서점들 중에서 '산책하는 고래'를 선택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책방 공간과 숙박 공간이 같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서점을 내 집처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거든요. 한 공간에 서점부터 침실까지 있어 여럿이 오든 혼자 오든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갇힌 곳보다 밖이 보이는 곳에서 책 읽는 것이 좋아요.

저만 그런지 모르지만 도서관을 가면 그렇게 졸음이 와요. 답답하기도 하고요. 신간 구경을 하러 가긴 하지만 지금은 신간을 골라서 책방에 갖춰놓으니까 요즘은 서점도, 도서관도 안 가게 되네요. 우리 아이들은 저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시험 때는 꼭 도서관에서 공부하더라구요."


- 창을 크게 만드신 것도 그 이유에서인가요?
"네, 맞아요. 약간 한옥식 구조를 본따서 집을 지었어요. 한옥은 여기저기에 창이 있고 열어놓으면 바람이 다 통해요. 그 점이 좋아서 큰 창을 많이 만들었어요. 문이 사방팔방 다 뚫려서 다른 데보다 시원한 편이에요. 그런데 겨울에는 한기가 돌아 벽난로를 설치했어요. 손님들 중에는 장작 타는 소리와 장작이 빨갛게 타는 불빛이 인상깊었다 하시는 분들이 되게 많으세요.

손님들 대부분은 조용히 책을 읽고 공간을 즐기는 편이세요. 물론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죠. 카페인 줄 알고 커피만 마시고 가는 분도 계세요. 아예 팬션처럼 이용하는 분들도 있고요. 단골도 생겨서 요즘은 책을 읽고 조용히 지내다 가시는 분이 더 많아요. 개구리만 아니면 소음이 없어요. 그게 '산책하는 고래'의 강점이죠."

- 북스테이와 동네서점을 운영 하면서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처음엔 차도 같이 팔았어요. 비용은 얼마 안 되는데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손님이 오시면 하던 일을 멈추고 주문 받아야 되고, 치워야 되고… 어느 날 '한 달에 이걸 벌자고 내가 이걸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즐거운 게 먼저인데도 말이죠. 그 이후로 음료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셀프 서비스로 바꿨어요. 또 북스테이 방문해주시는 손님과 사진을 찍고, 전화번호도 저장했는데 그런 일들이 저를 옭아매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그 이후 손님의 시간과 공간에서 저를 분리했어요. 이제 손님도 편하게 책을 읽으시고 저도 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손님이 오시면 좋고, 안 오셔도 괜찮아요. 낮에 '무인 책방' 안내문을 걸어놓고 외출하면 이웃들이 봐주시기도 하고 구매를 원하는 손님은 따로 연락을 주세요. 요즘에는 2층 인테리어 때문에 손님이 온 줄도 모를 때가 많아요.(웃음)

모두가 함께 지내는 공간인 만큼 규칙을 만들었어요. 입장료는 책 한 권을 꼭 구매하는 걸로, 음료는 셀프로. 스쳐지나가는 손님은 줄었지만 그만큼 책에 애정을 갖고 있는 분들이 오세요."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 북스테이 옆 출판사 '고래이야기'
 

산책하는 고래 주인장 부부 좌: 이봉용 / 우: 강이경 ⓒ 강이경

 
강 대표 부부가 운영하는 출판사 '고래이야기'는 자아존중감, 장애, 어린이 인권, 양성평등, 환경, 학교폭력 등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부모 된 입장에서 아이들이 공부만 하게 되면 같이 사는 삶을 잃게 될까 걱정되어 시작한 출판사이다.

출판기획자인 남편 이봉용씨는 '어른들도 자기 연민만을 가지고 있어서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타인의 삶에 공감하지 못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그는 자신이 기획한 그림책을 통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러 모습을 책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타인을 공감 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삶을 보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그림책을 보며 우리가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사장님이 출간한 책들 중에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고래이야기'의 책 무엇이 있을까요?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책이에요. 책 전체가 검은색입니다. 책의 표지를 넘기면 왼쪽에는 하얀색으로 쓴 짧은 글이 있습니다. 그림은 투명한 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눈으로 봐서는 쉽게 알 수 없죠. 빛을 이리저리로 비추면 언뜻 언뜻 보입니다. 볼록하게 튀어나오는 효과를 주는 에폭시라는 재료로 인쇄했습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세상을 어떻게 느끼는지 비장애인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만든 책입니다.

거창한 것 같지만 당장 우리 아이들이 꼭 봐야 할 책이라 한국 출판 시장에서는 많이 선택되지 않는 멕시코 저자의 책을 번역했습니다. 책이 깜깜하죠? 그림이 튀어나와 있으니까 손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도 있고, 베스트 셀러는 단연 <짧은 귀 토끼>, <두근두근> 요즘은 <ㅊ-할아버지>죠...(웃음)"

- 그래도 출판사를 운영하려면 서울이 편하지 않나요?
"파주출판도시나 홍대 앞에 출판사들이 많이 모여 있죠. 사업 면에서 사무실 임대료가 높은 편입니다. 사무실 공간도 작은 데다가, 작은 출판사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금액이에요. 도시에 있는 출판사 사무실은 책이 산처럼 쌓여 있는 창고 같아요. 그래서 출판사 직원들이 카페나 도서관으로 피신을 가기도 해요.

남편도 주로 카페에서 원고를 교정했어요. 임대료와 커피값, 잘 아끼면 양평살이도 해볼 만할 것 같더라고요. 서울에 있는 작가나 기획자와는 메신저로 회의를 해요. 요즘은 택배도 빨리 가니 원고나 자료 전달도 계획성 있게 준비만 하면 급한 상황은 없습니다. 가끔 서울에 저자를 만나야 하지만 서울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독립서점이나 북스테이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신다면?
"경제적인 이익에 대한 기대를 접고 편하게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잘 안 되어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조언은 아니고요. 제 정신 승리법입니다."

- 북스테이 '산책하는 고래'의 향후 계획이 있다면?
"목표를 세우기보다 자연스럽게 흘러 가는 대로 살고 싶어요.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죠.(웃음) 그저 '산책하는 고래'가 자연스럽게 기분 좋은 만남이 이뤄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가족이 살던 2층을 개조해서 조금은 다른 공간으로 제공하고 싶어졌어요. 세미나나 워크숍을 할 수 있게 하려고요. 요즘은 가구 배치 때문에 고민이 많네요.(웃음)"

출판사 대표, 서점 주인, 북스테이 운영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 이 모든 걸 감당하는 그녀의 원동력은 가족이다. 매일 북스테이와 서점 청소를 담당하는 남편은 불평 한번 없이 해낸다. 벌써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도서관과 학교를 다니며 꿈을 키우고 있다.
 

'산책하는 고래'의 조식 거실 옆 식탁차림 ⓒ 김민정

 
강 대표 부부의 밝은 웃음은 북스테이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으며 확인할 수 있다. 일단 맛있고 깔끔하다.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북스테이의 동업자, '한 마리'가 더 있다. 근처 집을 다 돌아다니면서 식사와 간식을 먹어 이름만 다섯 개 이상을 가진 고양이 '엘리제'다.

'산책하는 고래'에서 잠을 깨면 엘리제가 문밖에서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문을 열어주면 조르르 들어와 집사 부부가 차린 아침을 먹고 책방을 거닌다. 아침을 먹거나 책을 읽고 있으면 다리 사이로 엘리제가 얼굴을 내민다. 산책하는 고래에서 엘리제와 한 컷은 필수다.
 

산책하는 고래의 귀염둥이 엘리제 만져주라냥 ⓒ 김민정

 
흐르는 시간을 잊은 채 책을 만들고 책방을 운영하고 누군가의 잠자리를 준비하는 부부. 그리고 언제나 새롭게 찾아오는 손님들과 독자들. 누군가는 차를, 누군가는 모빌을, 또 다른 누군가는 꽃을. 1층 서점의 인테리어는 그동안 서점을 방문했던 수 백명의 정성으로 따스하게 물들어 있다. 손님들이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를 바라면서 '산책하는 고래'는 오늘도 바닷속 고래처럼 묵묵히 헤엄치고 있다.
덧붙이는 글 글: 김민정 김우정
사진: 김민정 김우정
#북스테이 #산책하는고래 #고래이야기 #양평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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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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