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광주 캠퍼스를 홀린 여자, 이번엔 인천이다

[명랑한 중년] 인천평화창작가요제 세미파이널에 진출하다

등록 2019.07.06 20:05수정 2019.07.0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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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SNS를 살피다 '인천 평화 창작 가요제' 공모전 포스터를 봤다. 대상 오백만 원. 캡처해서 바로 싱어송라이터인 친구에게 보냈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라 존댓말을 하는 사이다. "이거 어때요?" 그는 바로 "오, 좋아요. 내가 곡을 쓸 테니 가사를 써 줘요"라는 답을 보냈다. 그간 나는 간간이 작사를 해 온 터라 흔쾌히 승낙했다. 친구에게 정보를 주려던 것인데 어쩌다 보니 나도 숟가락을 얹게 생겼다.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와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이 주관하는 평화창작가요제 포스터. ⓒ 평화창작가요제 조직위원회

 
여담이지만 작사로 저작료를 받으려면 음악 저작권협회에 이십만 원 남짓을 내고 등록해야 한다. 작사가의 저작료는 5%. 곡 하나 스트리밍 받으면 700원의 저작료가 발생하는데, 작사가는 그중 5% 30원 정도를 받는다.


히트곡이 아니고서야, 작사로 들어오는 저작료는 만 원도 안 된다. 물론 등록비는 단 한 번 내지만, 발표한 가사가 엄청나게 쌓이거나, 아이유 정도는 불러줘야 밑지는 장사를 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작사는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장르다.

내가 애정하는 글쓰기 장르, 작사

나는 글을 쓸 때 항상 클래식이나 재즈를 틀어놓는데, 쓰다 말고 멍을 때릴 때면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들리는 곡에 가사를 붙인다. 비발디 사계를 듣다가도 가사를 붙여 흥얼거리고, 피아노 소나타, 교향곡에도 들리는 대로, 닥치는 대로 가사 붙이기를 좋아한다. 음표가 내 귀에 닿는 순간 문자화되는 몹쓸 병을 앓고 있다. 곡에 심려를 끼쳐드려 베토벤씨 죄송합니다.

아무튼, 며칠 후 그에게 연락이 왔다. 건반을 하는 친구와 팀을 이뤄 퀼리티 높은 곡을 만들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나도 팀원으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즉흥적으로 나는 그럼 우린 세 명이니까 팀명을 트라이앵글로 가자고 했다. 그는 유치하다고 웃었다. 기분이 살짝 상해서 다 때려치우자고 할 뻔했다. 팀이 생기자마자 찾아온 해체 위기. 어른스럽게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고 일단 팀 이름을 트라이앵글로 가기로 마무리를 지었다.

삼 주 후, 곡이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파일을 열어보았다. 일단 곡이 잔잔하고 평화롭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면서 무한 반복으로 곡을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귀에 들리는 대로 가사를 적어나갔다. 너무 가사가 마구 떠올라 손이 못 따라갈 지경이었다(출처: 엘튼 존, 악상이 너무 빨리 떠올라 손이 못 따라갔다).


쓰다 보니 두 가지 버전으로 글이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두 개 가사의 우열을 가릴 수가 없어 작곡팀에게 가사 두 개를 다 보냈다. 그에게 만나서 같이 불러보자는 답이 왔다. 어떤 발음이 더 자연스러운지, 곡 감성에 적합한지 제대로 불러 봐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예술의 전당 뒷산에서 트라이앵글의 첫 회의가 소집되었다. 이곳은 평소에도 사람이 없고 조용한 곳이라 내가 자주 가는 장소다. 기타리스트 친구가 기타를 메고 왔고, 우린 그의 반주에 맞춰 가사를 넣어 흥얼거려 보았다. 역시나 우열을 가릴 수 없어 우왕좌왕했다. 마침내 하나를 선택했고 나는 강아지를 다른 집에 분양하는 심정으로 나머지 가사 하나를 가슴에 묻었다.

가사만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노래를 하라고?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중 한 장면. '여자가 가사를 쓴다'는 것 말고는 나랑 아무 관련 없는 영화다. ⓒ (주)해리슨앤컴퍼니

 
가사를 무사히 전달하고 돌아서는데, 둘이 짰는지, 노래를 셋이 하자고 한다. 나는 써야 할 글이 산더미라 안 된다고 했지만, 셋이 작업하고 둘만 나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우긴다. 이걸 어쩐담. 어렸을 때는 가요제에 나가보는 게 꿈일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뜬금없이 이뤄질 줄은... 전국노래자랑 말고는 설 무대가 없을 줄 알았는데.

바로 그다음 날, 녹음 스튜디오를 잡았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송사리 뜰채처럼 생긴 마이크 앞에서 노래하고 녹음했다. 셋이 같이 노래를 부르는 줄 알았는데, 한 명씩 따로 녹음했고 톤을 맞춰야 하니 누구도 튀지 않게 조용조용 불렀다. 곡 자체도 솜사탕처럼 달콤해서 듣고 있으면 귀가 간질간질할 판인데 노래도 간질간질 부르려니 속이 메슥메슥했다.

옛날 노래들은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클라이맥스가 있어 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한데, 요즘 곡들은 기승승승 하다가 끝이 난다. 그러니 부르고 나도 덜 부른 것 같고 약간 멀미 비슷한 게 느껴진다. 나는 슬며시 작곡가에게 이렇게 웅얼웅얼 부르지 말고 속 시원히 한번 질러보자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세상 근엄한 얼굴로 단박에 거절했다. 이 바닥에서는 작곡가가 갑이라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한 마음으로 녹음을 끝냈다.

녹음파일을 접수 시키고 한 달 후, 세미파이널에 진출할 팀이 발표됐다. 올해에는 총 124팀이 지원했고 25팀을 먼저 뽑았는데, 거기에는 위풍당당하게 트라이앵글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박, 이거 실화냐. 프로, 아마추어 할 거 없이 모두 지원할 수 있는 대회라서 대부분 참가자가 음악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기대는 했지만 우려도 했는데, 너무나도 기뻤다. 세미파이널은 7월 초, 인하대 강당에서 공개오디션으로 열린다. 총 25개 팀 중에 열 팀이 선발되며 최종 뽑힌 열 팀은 9월에 공개 방송한다고 한다.

세상에, 잘하면 텔레비전에 내가 나오게 생겼다. 그런데 노래보다도 뭘 입어야 할지 걱정이다. 반짝이 의상을 하나 사야 할까. 작년 봄, '화양연화를 꿈꾸며'라는 글을 써서 엄청난 응원과 사랑(?)을 받았는데(관련기사 : 5월의 광주 캠퍼스를 홀린 여자, 그게 바로 나였다), 그 무대가 다시 내 앞에 왔다.

아직은 별 감흥이 없고 담담한데, 무대에 서 봐야 알 것 같다. 내 안에 아직 뜨거운 뭔가가 남았는지, 아니면 크게 기쁠 일도 크게 슬플 일도 없는 '이제는 거울 앞에선 누이'처럼 미지근할는지 말이다.

나의 절친인 친오빠랑 통화하는데 오빠는 나더러 '글 쓰더니, 노래하고, 이제 춤만 추면 되겠다'라며 뜬금없이 지루박(지르박)을 추천했다. 그런데 지루박은 뭘까. 이름이 맘에 안 들어서 싫다고 했지만, 그 이름 때문에 궁금하긴 하다. 이름과 달리 고품격 춤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곧 출판될 책을 목전에 두고 있고, 또 다른 책도 준비 중이다. 그걸 아는 오빠는 내게 '그간 고생하더니 이젠 선물 같은 날들이 생겨 보기 좋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렇지. 선물 같은 날.

내겐 이번 가요제도 당선 여부를 떠나 내게 선물 같은 날이다. 그리고 만일 당선되면 각종 행사에 초청된다고 하니 일명 행사 가수가 되는 거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인생이 종합선물세트 되시겠다. 그렇게 되면 진지하게 춤도 고려해 봐야겠다.

무대 전 설렘과 무대 위 흥분, 무대 후 떨림으로 한참 동안 행복할 거 같다. 잊고 지냈던 꿈을 다시 떠올리며 이렇게 나는 다시 화양연화를 꿈꾼다.
덧붙이는 글 이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인천평화창작가요제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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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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