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되기 전에 정리해야 할 친구 유형

[30대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노후 대비만큼 중요한 '우테크'

등록 2019.07.06 14:51수정 2019.07.0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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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에 접어드니 지나온 시간이 이제야 제대로 보입니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방황하던 삼십 대의 나에게 들려주고픈, 지나갔지만 늦진 않은 후회입니다.[편집자말]
고등학교 동창 '단톡방'(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여행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미국 사는 친구가 이번 여름 휴가 때 한국에 올 것 같다 했고, 그렇다면 오랜만에 다같이 모여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장소를 제주도로 정하고 날짜를 조율하는 단계까지 갔지만 여행은 결국 지난주에 무산되고야 말았다. 미국 친구의 귀국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말했다.

"나이 들수록 우(友)테크가 중요하댄다. 내년엔 꼭 보자."

재테크보다 '우테크'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중년들 사이에서 많이 나온다. 우테크는 말 그대로 주위 친구들에게 시간과 돈 그리고 에너지를 투자하라는 말이다. 마흔 후반에 이르고 보니, 노후 대비에 이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데 완전 동의한다. 아니, 노후 대비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금 현재 내 삶의 질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우정이다.

20, 30대 때는 친구가 아쉬운 적이 별로 없었다. 우테크라는 개념도 없었거니와 친한 친구와 오래 함께 할 거라는 막연한 낙관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돈을 버는 것보다 어쩌면 사람을 사귀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그땐 몰랐다.

결혼으로 생활 환경이 바뀌거나, 사소한 오해를 풀지 못해 소원해지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어영부영 연락이 뜸해지면서 멀어지는 관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곶감 빼먹듯 점점 사라졌고, 마흔이 넘으면서는 사람을 새롭게 만날 기회까지 줄어들다 보니 어느 순간, 관계망이 좁아져 있었다. 그러면서 친구 관계를 돌아보게 됐다. 인정하기 싫지만 난 30대 때 우테크에 실패했다.

그녀는 '멘탈 뱀파이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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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 뱀파이어란 책 제목처럼 '내 기운을 빼앗는 사람'을 뜻한다. ⓒ unsplash

  
게으르고 안일한 결과였지만, 특히 후회되는 것이 있다. 정리해야 할 관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그 결과 '귀차니즘'에 빠져버렸다.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의 저자 스테판 클레르제의 표현을 빌리자면, '멘탈 뱀파이어'인 친구와의 관계를 너무 오랫동안 유지하는 바람에 좋은 에너지가 빨려서 만사 귀찮아진 것이다. 멘탈 뱀파이어란 책 제목처럼 '내 기운을 빼앗는 사람'을 뜻한다.

책에서는 인생에서 멀리해야 할 멘탈 뱀파이어를 유형별로 나눴는데, 자기 말은 많이 하지만 내 말은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도 그중 하나다. 저자는 "이들이 말을 들어주는 것은 당신을 이용하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수집할 때뿐이다. 이들은 절대로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남을 생각하는 척 연기할 뿐이다"라고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관계가 오래되면 당신의 관심을 계속 받으며 SNS나 전화로 당신을 붙잡아둔다. 이를 위해 당신의 소식을 묻거나 건강 상태에 대해 묻거나 가족 안부에 관심을 보이거나 당신이 고민하던 최근의 문제가 잘 풀렸는지 묻는다. 그리고 2~5분 동안은 당신의 말을 잘 들어주다가 이후 1시간 동안은 자기 이야기만 한다."

오래 사귄 '베프'라고 생각한 친구가 사실은 멘탈 뱀파이어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진즉에 눈치 채지 못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이어온 우정이기 때문이다.

내게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들어주는 사람, 그는 말하는 사람으로 관계가 설정돼 있었다. 친구는 만날 때마다 내가 모르는 사람에 대한 험담, 외고에 입학한 딸 아이의 고단한 하루, 입시제도의 부당함 등을 쏟아냈고, 나는 흥미가 없는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들어주곤 했다.

반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땐 연락이 닿지 않거나, 이야기를 해도 얼마 안 있다 결국 자기 이야기로 돌아가곤 했다. 할말을 양껏 쏟아낸 친구는 시원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나는 지쳐서 돌아오기 일쑤였다.

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내 발목을 붙잡은 게 오래 이어온 관계라는 거였다. 어느 정도 관계에 선을 긋고 싶어도 그러면 왠지 배신을 하는 것 같아서 그러지 못했다. 몇 번의 진지한 대화 끝에 잘못된 관계설정을 바로 잡고 적당한 선도 만들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고 그만큼 출혈도 컸다.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와 상황만 차이가 있을 뿐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돈 쓰는 데 인색해서 상대가 사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친구, 만나기만 하면 본인 하소연만 늘어놓는 친구, 늘 바쁘다면서 필요한 때만 연락하고 내가 도움을 청할 땐 연락두절이 되는 친구 등. 모두 멘탈 벰파이어인 친구에게 호의를 베풀다 '호구'가 되어버린 경우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저자는 이런 친구와의 우정을 끊지 못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진단한다. 습관의 힘이 무섭고, 과거에 대한 기억은 미화되며, 우정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 인정, 또 인정.

결국 상대를 탓할 것도 없다. 멘탈 뱀파이어의 표적이 되도록 허용한 내 책임이 크다. 오래 알았다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 에너지를 쏟고도 성장은커녕 기운만 빠지는 관계를 허락한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며칠 전, 친한 언니가 3주 동안 미국과 멕시코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만났다. 미국에 가족이 있어서 보러 간 줄로만 알았는데, 친구 부부와 함께 다녀왔다고 했다.

언니와 그 친구는 직장생활하며 만났으니 이제 30년도 더 넘은 관계. 언니는 회사에 남았고, 그 친구는 중간에 회사를 그만두고 밑바닥에서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50대 초반에 명예퇴직을 하고 혼자 사는 언니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언니의 친구는 고생을 많이 하다가 10년 전 사업이 꽤 성공해서 지금은 건물주인 상황. 퇴직한 언니가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도움을 구하자, 그 친구가 자신이 했던 일을 함께할 수 있도록 알아봐주고 있다고 했다. 며칠 후에 관련업계 사람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도 그 친구가 동행할 예정이란다.

이야기를 들으니 꽤 든든하겠다 싶어 "그런 친구가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라고 물었더니, 언니가 한 마디 했다.

"그래서 내가 이번 여행 갔을 때 여기저기 좋은 데 데려가면서 얼마나 잘해줬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어."

'기브 앤 테이크'라는 말이다. 맞다. 우정도 분명히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한다. 그게 경청이든, 시간이든, 밥 한 끼나 커피 한 잔이든, 연락이든, 사소한 도움이거나 큰 도움이든, 좋은 기운이든. 그래야 오래 간다.

계산적으로 굴라는 뜻이 아니다. 진짜 어려운 상황이거나 불행이 닥쳐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주되, 그 이외에는 내가 받고 싶으면 그만큼 대접하라는 황금률이 친구관계에서도 영락없이 적용된다는 뜻이다. '친하니까' 소홀하거나 무례해서는 안 된다. '친하니까' 더욱 조심하고 배려해야 한다.

성공적 우테크를 위한 황금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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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관계는 부부나 연인이 나눌 수 있는 연대감만큼, 아니 그것과 다른 차원의 강력한 힘이 있다. ⓒ unsplash

 
신뢰는 한 번에 만들어지지도 않지만, 한 번의 사건으로 깨지지도 않는다. 깨질 만한 사건이 여러 번 반복됐기 때문이다. 30대로 돌아간다면, 친구관계를 다시 정리하고 회복하고 싶다. 아마 나도 누군가에는 멘탈 뱀파이어가 된 적이 있었을 텐데, 그랬던 모습을 바로잡는 것도 포함한다. 신뢰가 깨지기 전에 적당한 선을 만들거나 이미 신뢰가 깨진 관계는 인생에서 빼버리고, 좋은 에너지를 축적해서 나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친구들을 좀더 사귀고 싶다.

나이 오십을 앞두고 보니 좋은 친구들을 많이 둔 사람이 제일 부럽다. 너무 늦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지금 내 곁에 남은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려 한다. 누군가를 만나려면 예전보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서 '노는 것도 젊어서 놀아야지 이제 노는 것도 힘들다'는 말을 실감하지만, 나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친구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관계를 계속 이어가길 원하는 사람과는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종종 안부를 챙기며 일 년에 한두 번은 만나려 한다. 그리고 어느 모임에 가든 친구 한 명은 사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요즘 나는 낯선 모임에도 참여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주변머리 없고 내향적인 나로서는 꽤 어려운 미션이다. 그래도 미래를 위해 적금도 드는 마당에 가장 든든한 노후 적금을 붓지 않을 수 없다.

같이 여행 가는 친구, 술 한 잔 마시고 싶을 때 부를 수 있는 친구, 함께 맛있는 걸 먹으러 갈 수 있는 친구, 그냥 좀 많이 웃고 싶을 때 만나고 싶은 친구, 용기가 바닥났을 때 찾으면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 때로는 '안티'처럼 쓴소리해주는 친구, 연애 상담을 잘 해주는 친구, 같이 노화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수다 떨 수 있는 친구, 급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구 등.

이런 친구들과 기쁨과 위안을 나누는 것은 나를 가치 있게 만들고,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친구 관계는 부부나 연인이 나눌 수 있는 연대감만큼, 아니 그것과 다른 차원의 강력한 힘이 있다. 성공적 우테크를 위해 다시 한 번 황금률을 되뇐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 적당히 베풀고 제대로 존중받기 위한 관계의 심리학

스테판 클레르제 지음, 이주영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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