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중첩된 한국 사회... 공론장, 왜 필요할까?

[칼럼] 오현철 전북대학교 교수

등록 2019.07.04 18:25수정 2019.07.0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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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는 여러 모순이 중첩되어 있다. 남북 간의 대치를 둘러싼 이념 갈등, 개발이익과 생태 보존이 대립하는 가치갈등, 영남 패권주의와 그에 저항하는 지역갈등, 신자유주의가 구조화되면서 고조되는 빈부갈등, 박정희 개발독재 이래로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아 곪아진 노사갈등, IMF 이후에 정규직·비정규직 등 노동자들의 신분의 차이에서 야기되는 노노갈등, 노년층과 청년층의 세대갈등, 최근 가파르게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젠더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중첩되어 있다. 

중첩된 갈등들의 원인을 추적하면 공통적인 요인은 바로 '돈'이다. 신자유주의 논리에 충실한 천민 자본주의가 특정 산업과 계급, 계층, 지역에 편중되게 부를 분배함으로써 갈등이 구조화된다. 개인의 일상의 삶을 규정하는 노동문제를 보자.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인 노동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용자들의 봉건적 태도가 노사갈등을 고질적인 사회 병폐로 만들었다. 노동자의 사회적·정치적 권리를 억압하는 노동 관련 법규와 이를 강제하는 행정부의 비민주적 태도, 사용자 편향적인 사법부의 친자본적인 행태가 더해지면서 노사갈등을 더 깊은 적대적 모순 속으로 구조화해왔다.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의 갈등과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갈등은 아직 전면적으로 표출되지 않지만 장차 노동계급 내부에서의 계급투쟁과 전면적인 사회 분열을 야기할 폭발력을 내재하고 있다. 이 갈등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역대 정부가 재벌에게 국가자원을 몰아주어 성장시킨 반면 중소기업에 정책적 배려를 소홀히 하여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다. 생산성과 이윤율이 낮아서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 수준은 낮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 위에 정부가 IMF 극복과정에서 IMF와 사용자들의 요구를 전면 수용했지만, 노동계급의 요구를 배척하고 비용 절감의 고통을 비정규직자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은 공간에서 동일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현실은 필연적으로 노동자 간의 적대감으로 발전한다.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은 장기실업자가 되거나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청년의 80%는 5년 후에도 비정규직에 머무는 현실을 보여주어, 이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이동이 불가능한 노동시장 단절 현상이 구조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을 소유한 기성세대들이 부동산 투기로 자산을 모으고 자산가치 상승의 혜택을 누리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연예,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청년들은 천정부지의 집값과 주거비 때문에 더 좌절하고 생애 전 기간 동안 렌트푸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갈등 해결 방안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이처럼 중첩된 갈등을 풀어가야 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치체계'에 있다. 경제는 돈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만 정치는 권력을 따라 작동한다. 권력은 다수 시민의 지지에서 나오므로, 정치 권력은 시민들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철학이다. 정치란 한 사회와 국가가 직면한 삶의 문제를 집단으로 해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체계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한 적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없던 문제도 만들어낸다. 한국에서 권력은 다수 시민의 뜻이 아니라 소수 대자본가의 이해관계에 더 충실했다. 1988년의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과 정호용 등 쟁쟁한 권력자들을 몰아세우던 국회의원들은 정주영 현대 회장을 '증인님'으로 부르며 깍듯한 예우를 보였다. '권력이 돈을 섬긴다'는 명백한 증거를 만천하에 드러냈고, 그 이후에도 돈에 굴종하는 정치 권력의 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 지도층들은 돈과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가? 돈 버는 것만을 지상 목표로 생각하는 재벌들은 자신들에게 억만금의 돈을 벌게 해준 노동자들의 목숨과 권리를 너무나 가벼이 여긴다. 그런데도 한국에는 재벌들에게 성심을 다해 충성하는 '지도충'들이 각 계에 넘쳐난다. 2017년 삼성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에게 자신의 인사청탁이나 자녀와 친인척의 취업 청탁했던 사람들은 내노라하는 지도층들이었다. 전∙현직 경제부처 수장들, 대학 총장과 교수, 대기업과 금융기관 고위 간부, 전∙현직 국회의원, 국가정보원과 사정기관 인사들, 현직 검사장과 법원 고위 간부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핵심라인으로 지목된 학자와 경제관료도 빠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시민들도 있지만, 아이돌 스타를 추앙하는 사생팬처럼 인기 정치인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지지자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거느리는 정치인들을 위해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나 집단사고(group think)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그에 의해 조종된다. 이들이 투표를 통해 선택한 결과가 오늘날의 한국 정치체계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갈등 해결 방안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공론장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권력이 만든 빨갱이 이데올로기와 지역주의로 사회가 갈등하고, 돈이 만든 무한경쟁 때문에 시민들이 개인들로 분화되고 연대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타락한다. 민주주의가 팬덤 정치와 금권정치로 의해 타락하는 동안, 생활 세계는 권력과 돈에 의해 침식되고 식민화되었다. 

한국에서 대의민주주의는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은 유권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한 표가 시민들을 주권자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주권이란 시민들이 법을 만들거나 수정하거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권한을 의미한다. 한 표를 행사하는 행위는 주권자의 권리가 아니라 나를 대신해서 법을 만들고 정책을 결정하는 대리인을 선출하는 유권자 권리에 불과하다. 

지금과 같은 파괴적인 패러다임을 바꿀 방법은 시민들이 정치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집단으로 의사결정 하는 것이다. 선거일에 기표소 가림막 뒤에서 투표용지에 혼자 도장 찍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집단으로 의사결정 하는 정치가 필요하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활성화된 공론장'을 구성해야 한다. 공론장 속에서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비교하고 지금보다 더 좋은 방안을 찾기 위해 토론하고 그에 따라 공적 사안을 결정해야 한다. 

과거의 갈등 해결 방법이던 전통, 관습, 법, 명령 등이 아니라 다양한 갈등의 당사자인 시민들이 함께 모여 자유롭고 평등하게 토의할 때, 얽히고설킨 중첩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공론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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