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왜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좋아하나요"

[그리스 문학기행 2]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삶을 찾아서

등록 2019.07.12 19:40수정 2019.07.1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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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크레타 섬에 도착했다. 전날 저녁 '크노소스 왕궁'이란 이름을 가진 미노아 항운의 배를 타고 밤잠을 자고 나니 도착이다. 크레타 제1도시인 이라클리온 도심으로 걸어갔다. 크레타식 샐러드와 무사카, 여기서 흔한 오렌지 주스와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아침부터 햇빛이 강렬하다. 남편과 나는 백팩을 멘 채 약간 언덕 쪽에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무덤으로 향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 그의 아내 엘라니 무덤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그의 아내 엘라니 무덤이 함께 있다. ⓒ 조은미

 
일주일 남짓한 이번 그리스 여행에서 우리의 목적은 두 가지, 그리스 비극 공연을 보는 것 그리고 크레타 섬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 삶의 궤적을 찾아보는 것이다. 요즘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누구인지 이름조차 모르는 이들도 흔하다지만, 우리에겐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로 각별하다. 비단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 한 권 때문만은 아니다. 점차 알게 된 그의 삶이 우리에게 많은 자극과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무덤가에서 본 아내의 흔적


멀리 크레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한적한 언덕배기에 그의 무덤이 있었다. 올라가는 길 양 옆으로 주차된 차들이 빼곡하지만 그것은 카잔차키스 무덤 방문객들의 차가 아니라, 주차장이 부족한 인근 주민들의 차였다. 
 

카잔차키스 무덤 앞에서 카잔차키스 무덤 앞에서 잠시 묵념했다. ⓒ 조은미


네모지게 만들어진 그의 무덤가는 부겐베리아와 히비스커스 꽃으로 둘러싸여 아늑했다. 인적은 드물고 바람도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우선 우리는 묘비 앞으로 다가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당신의 삶과 글이 다 고맙습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술 한 잔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님 꽃이라도 사왔어야 하지 않을까."

무덤가를 찾아오면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것이 내처 아쉬웠다. 나중에 꽃을 사고 다시 올까. 그러나 무덤가에 꽃은 이미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남편은 들고 온 카잔차키스의 책을 올려 사진을 찍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이것이 그의 유명한 묘비명이다. 우리는 금세 내려가기가 아쉬워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책을 펼쳤다. 책 몇 줄 읽다가, 졸다가, 그의 무덤의 나무 십자가 너머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시간도 멈춘 것 같은 고요. 한참 나른한 정적 속에 있는데, 두 여인이 올라 왔다. 그들은 무덤 돌을 아무렇게나 밟고 돌아다니고 가까이서 묘비명을 읽었다. 그리고는 조금 떨어져 옆에 있는 카잔차키스 아내 엘리니(Eleni N. Kazantzakis)의 무덤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엘리니 사진 카잔차키스 박물관에서 본 그의 두번째 아내 엘리니 사진 ⓒ 조은미

 
엘리니의 무덤을 보고서야 그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카잔차키스 평생의 동반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엘리니는 그의 두번째 아내. 스물한 살에 그녀보다 스무 살이 더 많은 카잔차키스를 만났다.

엘리니는 그에게 절대적인 조력자였던 모양이다. 그가 <오디세이아>를 쓸 때는 8번에 걸쳐 전체를 타이핑해줬다고 한다. 이 책은 33,333행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카잔차키스는 아내를 전기제품에 흐르는 전류에 비유하며 아내가 중요하다고 했고, 또 자신의 집필에 아내가 절대적으로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의 삶의 조력자로, 절대적인 헌신으로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

"한국인들은 왜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좋아하나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는 스스로를 크레타인으로 부르길 좋아했다. 그가 태어날 당시 크레타는 터키의 식민지였다. 그의 조부와 부친도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니 그 저항의 의지가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 없다.
 

카잔차키스 박물관 앞에서 카잔차키스 박물관에 선 필자 ⓒ 조은미

 
크레타섬에 와서 사흘째에는 버스를 타고 카잔차키스 박물관을 다녀왔다. 버스 편이 많지 않아 갈 때는 어떻게 갔는데 오는 버스편이 없어 난감했다. 그러자 입장 티켓을 팔던 남자가 자기가 5시면 일을 마치고 이라클리온 시내로 가니 태워주겠다고 한다. 남편이 불쑥 돈을 내겠다고 했지만, 그가 호의로 그런다는 것을 느꼈기에 나는 남편의 팔을 잡아당겼다. 박물관 직원인 크레타 남자가 우리에게 물었다.

"왜 한국인들은 그렇게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좋아하나요? 이곳 박물관에도 많이 찾아오거든요."

나는 웅얼웅얼 대답했다.

"글쎄요.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리스인 조르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고... 또 유명인들이 조르바 책 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럴까요?"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제 생각엔 크레타 사람들이나 한국이나 식민 지배의 경험이 있고 핍박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카잔차키스는 평생에 걸쳐 세계 여행을 많이 했다. 1907년부터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녔다. 저항과 자유에 대한 희구에 더해서, 여행은 그의 삶의 동력이었다. 카잔차키스 박물관에서 다시금 느낀 것은 그의 필생의 대작은 역시 <오디세이아>라는 것. 호메로스의 서사시처럼 행수를 똑같이 맞췄다. 오디세우스처럼 그는 세계를 떠돌며 인간 정신의 궤적을 탐구한 것이리라.

우리를 크레타 섬으로 이끈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실제 그의 친구였던 조르바를 소재로 쓴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던지는 책이다. 소설 속 화자가 사는 아폴론적인 이성적 삶과 조르바가 사는 디오니소스적 삶, 그 대비를 통하여 어떤 삶을 살아보면 좋은가 생각하게 한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삶의 순간을 살고 행복을 즐길 줄 아는 즉흥적 인간 조르바. 그에 비해 늘 머뭇거리고, 자제하고, 이런저런 잣대로 억누르게 되는 게 소설 속 화자와 같은 우리의 삶이다.

세상이 더욱 복잡해지고, 사람들은 시스템 안에서 조용히 돌아가게 되니, 소위 '튀는' 충동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크레타 섬에서 조르바와 카잔차키스가 속삭이는 말을 들어보고 싶어 왔다.
 
두목, 돌과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어쩌면 우리를 부르고 있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두목, 언제면 우리 귀가 뚫릴까요? 언제면 눈을 떠서 볼 수 있을까요? 언제면 우리가 팔을 벌리고 만물 – 돌, 비, 꽃, 그리고 사람들-을 안을 수 있을까요?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크레타 거리 곳곳에 핀 히비스커스 ⓒ 조은미

 
크레타섬을 돌아다니다 보니 지천에 협죽도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능소화, 히비스커스, 부겐베리아가 농염한 빛을 발산한다. 들판에는 올리브 나무가 끝없이 이어지고, 무화과, 석류나무가 뜨거운 태양 아래 열매를 키우고 있다. 바다는 또 어찌나 푸르고 시원하고 아름다운지… 이런 곳에서 조르바와 카잔차키스가 자연에 대해 찬탄하는 것이 당연하다.
 

크레타 하니아 바다 ⓒ 조은미

 
고작 크레타섬에서의 며칠, 그리스에서의 일주일여 시간으로 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무한한 수평선과 올리브 평원, 히비스커스 거리를 걸으면서도 나는 서울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과 집에서 기다리는 고양이와 늙어가는 엄마를 근심했다.

그래도 뭐 어떠하랴. 카찬차키스처럼 호기롭게 '나는 자유다'라고 외치지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크게 구애 받지 않고 살고 있지 않은가. 또한 내 삶에서 좋은 것들, 그러니까 다정다감한 내 식구들, 격려와 우정을 나누는 귀한 친구들, 누릴 수 있는 자연과 문학과 영화 같은 것들이 많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2019.6.28~7.5까지 그리스를 여행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크레타 #문학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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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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