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는 왜 인권 활동가 워크샵 도마 위에 올랐을까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 역사는 한번에 바뀌지 않는다

등록 2019.07.09 16:49수정 2019.07.0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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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유엔 가입국들은 9개 유엔 핵심 인권 조약 중 최소한 하나 혹은 2개 이상을 비준하며 국제규범을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대부분 국가에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국제규범은 구속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각 국가의 자발적 동참을 필요로 한다. 

호세 라모스 호르타 전 티모르 레스떼 대통령은 28년 전, 호주 사우스웨일즈대학 로스쿨과 함께 인간 존엄성 유지를 위한 국제규범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외교훈련프로그램(DTP, Diplomacy Training Program)을 창립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까지 3천여 명의 인권 옹호 활동가들이 역량을 강화해 왔다. 

DTP는 특별히 다국적기업의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며 호주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 각국에서 활동하는 인권 활동가들에게 인권 훈련과 교육 기회를 제공해 왔다. 

국제 인권규범 중 '이주노동자 권리보호'는 중요한 부분이다.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는 지금, 이주노동은 세계 경제의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그들의 인권과 노동권은 광범위한 유린과 착취에 노출돼 있을 정도로 취약하다. DTP는 국제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의 취약점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하고 활동가들을 독려한다. 

이 훈련의 주요 강사들은 인권과 국제규범에 관한 교육을 20년 이상 진행한 전문가들이다. 그중 유엔 조약과 OECD 가이드라인 등에 해박한 전 DTP 대표이자, 전 사우스웨일즈 로스쿨 학장인 폴 레드몬드(Paul Redmond)는 DTP 창립 때부터 함께 한 산 증인이다. 그는 한국 정부와 기업, 인권 활동가들이 인권 경영, 책임 경영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6월 22일부터 25일까지 DTP가 진행한 '책임 있는 경영과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지역 역량 강화 워크숍 후 폴레드몬드 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DTP. 참가자들 두바이에서 6월 22일부터 25일까지 외교훈련프로그램에 참석한 인권활동가들 ⓒ 고기복

 
- 인권 경영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날 국제사회는 기업 규모와 분야, 소유권과 구조 등과 관계없이 인권을 존중하는 윤리적이며 책임 있는 경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주요 인권규약을 통해 인권보호 원칙과 행동강령을 제시하고 있는 유엔은 물론이고, 국제노동기구(ILO)의 다국적기업 및 사회정책에 관한 선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 기업에 관한 가이드라인 등에 반영되어 있다.  

그 밖에 유엔 글로벌 콤팩트(2000)는 유엔과 기업 간의 자발적 협력을 선언한 것으로 8천 개가 넘는 기업이 인권보호를 지지하고 존중할 것과 인권 유린에 연루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2011년 유엔인권위원회는 기업의 인권 보호, 존중, 구제 체계 원칙을 승인했다. 이런 원칙들을 지키지 않았을 때 경영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국적 기업의 주식은 그들이 갖고 있는 실제 자산보다 과도하게 고평가되고 있다. 주식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경영 실적이 우선이긴 하나, 경영진 혹은 대주주 등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등락을 좌우하기도 한다. 기업의 평판 리스크 관리는 책임 있는 인권 경영이 핵심이다. 다국적 기업들에는 기업의 평판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데, 아쉽게도 포스코 같은 한국 기업들은 그런 인식이 부족하다."

포스코는 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걸렸을까
 

포스코는 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걸렸을까 노르웨이와 네델란드 정부 연금이 포스코에 투자한 부분에 대한 책임 추궁이 있었다. ⓒ 폴 레드몬드(ppt 일부 변경)


 
- 포스코를 특별히 언급한 이유, 구체적 사례가 있나?

"사실 유엔 인권규약이나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는 포스코만이 아니다. 포스코는 소액 투자를 결정했던 노르웨이 정부 연기금(GPFG)과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으로부터 투자를 철회 당한 사례가 있다. 그 사례는 세계 주요 투자자들이 기업 평판을 투자 기준으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노르웨이 정부 연기금은 2015년에 내부 윤리 위원회 인권실천 점검 실사(HRDD, Human Rights Due Diligence) 결과를 수용해 포스코대우와 모회사인 포스코 모두를 투자대상에서 제외했다. 같은 이유로 네덜란드 공적연금 역시 2015년에 포스코대우에 대한 투자 철회를 결정했다. 사실 이들 기금의 투자 철회는 세계 1, 2위 연기금이라는 규모로 볼 때 소액 분산 투자금의 일부이기 때문에 해당 기금 입장에서는 큰 금액은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왜 투자를 철회했는가'다. 포스코는 인도 오디샤 제철소 건립 추진 과정에서의 심각한 환경파괴와 지역 주민 주거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파푸아 팜유 농장에서 역시 삼림 훼손과 토착민과의 토지 분쟁이 있었고, 경영 투명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자국민들에게 투자 철회를 요구받았다. 

이런 시민사회의 요구가 노르웨이와 네덜란드에서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뉴질랜드 노후펀드와 정부 펀드에 대해서도 포스코에 대해 같은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 글로벌 연기금은 유엔 글로벌 콤팩트(UNGC) 조항에 근거해 투자한다. 이 말은 다국적 기업은 당연히 국제규범을 지키면서 사업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향이 그렇다. 평판 리스크 경영이 중요한 이유이며, 시민운동은 윤리적이며 책임 있는 경영을 요구함으로 이주노동자 권리를 증진할 수 있다. 월드컵과 같은 국제 이벤트마저 이주노동자 권리 등과 관련하여 그런 규정 준수를 요구받고 있다." 

피파는 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 지적받았을까
 

피파는 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 지적받았을까 카타르 월드컵 건설 현장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등에 대해 FIFA는 묵인했다. ⓒ 폴 레드먼드( PPT 일부 변경)

 
- 이주노동자 권리와 FIFA, 어떤 관계가 있는가?
"2015년 10월 OECD 가이드라인은 세계축구연맹 FIFA를 OECD 지침에 따라 다국적 기업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OECD는 FIFA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관련하여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주노동자가 거론된 이유는 카타르 내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의 95%를 이주노동자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노동, 주거 환경 개선 외에도 계약 시스템의 변화는 인권 개선에 꼭 필요한 사안이다. 

OECD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FIFA는 카타르가 인권정책이 결여돼 있음에도 인권실천 이행 의무를 준수하는지 실사(HRDD)를 진행하지 않았다. FIFA는 걸프만 국가들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함에 있어서 스폰서를 두도록 하는 카팔라(Kafala) 시스템으로 인해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있어 왔다는 공공연한 사실에도 실사를 하지 않아 OECD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
  
물론 FIFA는 회사가 아닌 비영리 단체이며 스위스 법에 의거한 단체라는 주장과 함께 이주노동자의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카타르 당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FIFA는 카타르의 노동 조건, 즉 카팔라(Kafala) 시스템 등에 대해서는 FIFA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FIFA의 태도에 책임 있는 경영을 촉구하는 건 OECD만이 아니다. 카타르 월드컵 유치 결정 과정에서의 역사상 최악의 부패 스캔들에 휩싸인 FIFA 집행부에 대한 수사 촉구는 책임 있는 경영을 요구하는 세계 시민의 목소리다.

비영리 단체라고 주장하는 FIFA에 경영 윤리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주노동자와 연결하면 간단하다. 월드컵 개최에 대비한 경기장 건설과 도로 확장 등과 같은 제반 인프라 건설에 제대로 권리를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가 투입되고 있다. 지금까지 카타르 월드컵 건설 현장에 투입된 50만 명에 가까운 이주노동자 중 몇 명이 죽어갔는지를 살펴보면 OECD가 카타르 월드컵 개최가 인권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 점은 타당하지 않은가?"

네팔 외국인 고용 촉진위원회(FEPB)가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네팔 이주노동자 1326명이 카타르에서 사망했다. 

역사는 한번에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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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켄은 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 지적을 받았나 다국적 기업의 윤리적 책임 관할권에 대한 해석이 본국에서 해외로 넓어지고 있다. ⓒ 폴 레드먼드(PPT 일부 변경)

 
- 국제규범이라고 하지만 당사국이 아닐 경우 강제할 수 있겠는가?
"중요한 지적이다. 중동에 와서 그런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다국적기업들이 하청에 하청, 하청을 주는 관행이 건설업계에 만연해 있다. 어떤 건물을 짓는데 원청이 어디인지 알 수 있는 곳이 없다 할 정도로 하청에 하청, 재하청 관행은 어디에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르게 한다. 게다가 중동은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과 같은 국제규범을 지키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하지만 역사는 한꺼번에 바뀌지 않는다. 영국에서 설탕 산업에 필수라고 여겼던 노예제도가 어떻게 폐지되었는가? 누군가는 인도주의적 이유로 폐지 당위성을 주장했고 그에 따라 누군가는 설탕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가며 산업 환경이 바뀌고 시민 인식이 변하자 폐지되었다. 이처럼 인권 가치는 계속 주장해야 한다. 한 번에 안 바뀌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의 책임 있는 기업 행위를 규정하는 OECD 가이드라인 역시 처음에는 소수 국가가 동참했지만 점차 많은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채택 초기에는 OECD 회원국만이 참여하다가 현재는 비회원국까지 포함하면 48개국이 함께 하고 있다. (한국 NCP는 산업통상자원부 투자정책관을 위원장으로 정부위원 3인 및 민간위원 4인, 정부와 민간이 함께 하는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각국은 국가연락사무소(NCP, National Contact Point)를 두어 이행체계를 갖추었다. 국가연락사무소는 다국적 기업에 기업 정보공개, 인권, 고용 및 노사관계, 환경, 뇌물방지, 소비자 보호, 과학과 기술, 경쟁, 조세 분야 등 기업이 반드시 준수하여야 할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 지침과 관련하여 국가연락사무소는 해외 진출 기업들이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는지, 위반하는지를 살피고, 가이드라인 위반에 따른 이의제기·진정 사건이 발생하면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가이드라인 준수와 관련된 분쟁에서 콩고민주공화국(DRC) 하이네켄 해고 노동자 진정 사건은 OECD 국가 밖에 진출한 기업 분쟁에도 국가연락사무소가 개입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  

2015년 말 콩고민주공화국에 있는 브라리마(Bralima) 하이네켄 공장에서 일하다가 해고된 3인은 내전 중 해고된 168명의 전직 직원을 대표해 하이네켄 본사 등이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며 네덜란드 국가연락사무소에 진정했다. 이의제기를 한 당사자들은 브라리마와 하이네켄이 가이드라인 제1장(개념 및 원칙), 제2장(일반정책), 제5장(고용 및 노사관계), 제7장(뇌물공여, 청탁, 강요)을 위반했다.
 

한국 국내연락사무소 (National Contact Point, 한국 NCP)는 OECD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따라 2000년에 설치되었다. ⓒ 폴 레드몬드(ppt 일부 변경)

 
이에 대하여 하이네켄 본사 측은 콩고민주공화국이 내전 중이던 1999년~2003년 당시 해고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목적으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신중하게 이뤄졌고, 해고 당사자들은 콩고민주공화국 브라리마 관할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린 가운데 네덜란드 국가연락사무소는 하이네켄이 콩고민주공화국C 브라리마 지분을 95% 소유하고 있으며 긴밀한 사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들어 네덜란드 국가연락사무소가 진정 사건을 다룰 수 있다고 결정했다. 네덜란드 국가연락사무소는 지분, 경영권 간섭, 자회사 여부 등을 살펴 다국적기업이 관할권을 빌미로 분쟁을 떠미는 행위를 제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당사국이란 개념은 다국적 기업이 진출한 모든 국가로 확대 해석해 나가야 한다. 그게 옳은 방향이다." 

국가를 넘어선 협력, 지지, 연대가 있어야 한다

- 기업이나 국가의 이주노동자 고충 처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책임 있는 기업은 고충 처리 메커니즘을 갖고 있어야 하고, 정부는 원청과 하청 계약에서의 계약 윤리는 정부가 HRDD(인권실천 점검 의무)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문제 해법을 제시하고,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을 압박하는 방식은 불매 운동이나 투자 철회 촉구 등이 있다. 반면 정부 시책에 대한 압박은 쉽지 않다. 아쉽게도 정부는 실제로는 기업 이해에 집중하면서도 기업과 이주노동자의 이해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고 착각한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주노동자 급여에서 20%를 매달 강제 적립하도록 하고 있다. 귀국할 때 목돈을 쥐여준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이탈 방지를 목적으로 한 실질적인 압류 행위로, 강제노동 금지 규정 위반이다.
 

DTP 강의 중인 폴 레드먼드 교수 다국적 기업의 책임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설명하고 있다. ⓒ 고기복


두바이 체류 이주노동자는 건설업에만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사회간접자본, 산업, 가사노동자 등으로 기여하고 있지만 이들의 송출 비용 절감과 계약 변경 고충 처리, 국적에 따른 임금 차별 철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철저히 기업 중심이다. 이처럼 균형은 내부에서 잡기 어렵다. 

이주노동자 관련하여 현대 노예노동방지법(호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유럽연합, 미국) 등과 같은 국제인권 규범을 어떻게 적절하게 국내법에 적용할 것인가 하는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국가를 넘어선 협력, 지지, 연대가 있어야 한다. 네트워킹을 통해 문제를 공유하고 다국적 기업을 감시하여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단어 하나에 담긴 철학, 왜 불법체류자가 아닌가">로 이어집니다. 
#인권 #이주노동자 #포스코 #하이네켄 #FI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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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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